지난 3일 HD현대중공업 노조의 4시간 파업 현장 모습 (사진=HD현대중공업 노조)
지난 3일 HD현대중공업 노조의 4시간 파업 현장 모습 (사진=HD현대중공업 노조)

[서울파이낸스 김완일 기자] 국내 철강 및 조선 업계에 추투(秋鬪)의 전운이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다. 일각에선 최근 국회를 통과한 '노란봉투법'이 사용자 범위 확대와 쟁의 대상 확장에 따라 파업의 불씨를 더욱 키운다고 보고있다. 노사 간 갈등이 장기화됨에 따라 업계는 납기 및 생산에 막대한 차질이 빚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4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철강, 조선 업계 전반에서 노조들의 파업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임금 및 단체 협상, 구조조정, 노사 간 소통 문제 등 다양한 이유가 배경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관측된다. 더욱이 지난달 24일 국회를 통과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에 비정규직, 하정업체 노조들도 원청을 향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노란봉투법은 내년 초 시행을 앞두고 있다. 해당 법안은 근로조건에 실질적·구체적으로 영향력을 미치는 자를 사용자 범위에 포함해 하청·비정규직의 원청 상대 교섭 가능성을 열게된다. 쟁의 대상도 임금·근로조건에서 구조조정·정리해고 등 경영상 결정까지 넓어졌다. 법 취지는 '책임 있는 교섭'의 확대지만, 기준의 모호성과 손배 제한에 따른 교섭력 비대칭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법안은 시행 전이지만, 파급효과는 벌써 업계 전반에 나타나고 있다. 노조들의 파업 수위과 범위가 넓어지며 국내 철강 및 조선 업계에 장기적 악영향으로 작용할 것이라 우려가 나타난다.

철강업은 공정 특성 때문에 한 번 멈추면 피해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고로·제강·압연 라인이 일시에 서면 재가동 비용과 품질 리스크가 중첩된다. 전방 산업(조선·자동차·건설)에 미치는 연쇄 충격은 불가피하다. 

포스코 노조는 사측에 7.7%를 요구하며 교섭을 중단, 창사 57년 만의 첫 파업 가능성을 열어뒀다. 노조 측은 5일까지 회사가 실직적 대응을 내놓을 것을 요구한 상태다. 현대제철에선 지난달 27일 비정규직 지회가 원청 직접고용과 교섭권을 요구하며 경영진과 그룹 총수를 고소했다. 노란봉투법의 사용자 범위 확대가 현장 쟁점으로 전이된 상징적 사례로 업계는 보고있다. 노조는 '해외 투자와 국내 고용유지의 균형'을 회사는 '사업 재편의 불가피성'을 내세우는 상황이다. 갈등이 길어지면 투자 유보, 생산거점 재배치 같은 장기 의사결정에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HD현대중공업 야드 전경 (사진=HD현대)
HD현대중공업 야드 전경 (사진=HD현대)

조선업계에선 HD현대중공업 노조가 임단협 난항과 HD현대미포 합병 문제를 이유로 부분 파업에 돌입한 상태이다. 다른 계열 노조와의 공동 행동까지 예고했다. 노조는 합병 과정에서 노조 측 의견의 배제, 고용 보장 불확실성 등을 문제 삼고 있다. 회사는 "인위적 인원 감축은 없을 것"이란 입장을 전했으나 현장의 긴장은 이어지고 있다. 수백 개 협력업체가 얽힌 공정 특성상, 연대 파업이 현실화하면 납기 차질은 곧장 수주 신뢰 하락으로 직결될 수 있다.

특히 한미 조선협력인 마스가(MASGA) 프로젝트 등 대형 글로벌 사업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파업 장기화는 기술연계·현지 협력의 속도를 떨어뜨릴 수 있다. 또한 친환경·고부가 선종에서 한국 조선의 존재감이 커지는 시점인 만큼 일정 차질과 이에 따른 납기 문제는 국내 조선업의 슈퍼사이클을 멈추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해외 기업과 여론의 시선도 매섭다. 주한외국기업연합회(KOFA) 조사에선 3분의 1이 넘는 기업이 '투자 축소·철수 검토'를 언급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대한상공회의소 국민 인식조사에선 응답자의 76%가 "법 개정 후 노사 갈등이 심화될 것"이라고 답했다. 노조법 개정이 곧바로 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투자 리스크와 발주처 신뢰 저하에 영향을 미칠 것이란 반응이다.

파업과 노란봉투법에 관해 시각은 엇갈리고 있다. 노동계는 법 개정이 그간 소외됐던 하청 노동자들의 교섭권을 보장하고 노동권을 강화하는 긍정적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반면 산업계는 노조의 쟁의 행위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가 제한되면 '파업 만능주의'로 번질 수 있다는 불안감을 내비친다. 이로 인해 국내 투자가 위축되고 생산 기지의 해외 이전이 가속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법적 충돌이 아니라, 노동권 강화라는 법의 취지를 살리면서도 현장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교섭구조와 분쟁조정 장치를 촘촘히 설계해 현장 혼란을 줄이고, 업종 특성을 반영한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하며 해외 발주·투자와 맞물린 프로젝트는 노사정의 일정한 합의가 필요해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노란봉투법 통과 후 노조 발언권에 힘이 실리며 협상 과정에서 경영 판단이 지연되거나 사업 추진이 위축될 가능성이 커졌다"며 "글로벌 경쟁이 심화되는 현 상황에서 생산 및 납기에 차질이 생긴다면 해외 발주처들을 발길을 돌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기업과 노동자 간 충분한 소통을 위한 제도 마련이 중요하기에 법안의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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