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박소다 기자] 원·달러 환율이 장기간 높은 수준을 이어가면서 식품업계가 전방위적 압박에 놓였다.
원재료 수입 의존도가 높은 산업 특성상 환율 변동이 곧바로 원가 상승으로 이어지고, 내수 중심 기업일수록 타격이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
고환율이 실적뿐 아니라 투자, 가격 전략까지 흔들며 업계 전반에 불확실성을 키우는 모습이다.
25일 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국내 식품 제조업체의 국산 원료 사용 비중은 31.9%에 불과하다. 주요 곡물 자급률도 20% 안팎에 머물러 핵심 원료 대부분을 달러로 수입하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원가의 큰 비중을 수입 원재료가 차지하고, 환율 변화는 즉각 비용 부담으로 연결되고 있다.
기업들이 공시한 수치에서도 환율 충격이 확연히 드러난다.
CJ제일제당은 분기 보고서에서 환율이 10% 오르면 분기 세후 이익이 약 13억원 감소한다고 밝혔다.
롯데웰푸드는 같은 조건에서 세전 손익이 35억원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원산업은 자회사 동원F&B의 경우 환율 10원 상승 시 영업이익이 20억원 감소한다고 설명했다.
대상 역시 환율 5% 상승 시 세전이익이 51억7400만원 줄어든다고 분석했다.
이같이 연 매출 4조원 이상 식품 기업 상당수가 경영계획에 설정한 기준 환율(노멀 케이스)을 이미 돌파했다.
기업들은 가격 인상도 쉽지 않고, 제품 중량 감축도 정부 규제로 제약이 걸리면서 전례 없는 경영 압박을 호소하고 있다.
해외 매출 비중 차이에 따라 기업별 희비는 엇갈린다.
삼양식품은 수출 비중이 81%에 달해 고환율이 실적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올해 3분기 매출 6320억원, 영업이익 1309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각각 44%, 50% 증가했다.
반면 내수 중심 기업들은 고환율의 압박을 정면으로 받고 있다. 해외 매출 비중이 10.5%에 그친 오뚜기는 환율 부담이 직접적으로 반영되고 있으며, 롯데웰푸드나 동원산업, 대상 등도 3분기 영업이익이 3~13%가량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 식품기업 관계자는 "내수 비중이 큰 품목일수록 환율로 인한 수익성 악화가 뚜렷하다"며 "현재 구매 시점과 원료 종류에 따라 부담의 속도만 다를 뿐 결국 모두 영향받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환율 상승세가 단기간에 꺾일 조짐이 없다는 점이다.
기업들은 통상 3~6개월 치 원재료를 선구매하지만, 지난해부터 지속된 높은 환율로 인해 이미 비싼 가격에 들여온 원료가 재고로 쌓여 있다.
이 관계자는 "현 수준이 연말까지 유지되면 내년 상반기부터는 고환율 효과가 본격적으로 원가에 반영될 것"이라며 "고환율이 지속되면 더는 버티기 어려운 지점이 올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가격 정책에서도 기업들은 진퇴양난에 놓였다. 이미 올해 초 주요 업체들이 가격을 한 차례 인상했지만, 정부가 물가 안정을 강조하며 가격 인상과 '슈링크플레이션'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환율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다양한 대응 전략을 펴고 있다.
일부 업체는 원료 선물거래 비중을 늘리거나 공급망을 다변화하고 있으며, 오리온은 진천에 4600억원을 투입해 통합 물류센터를 구축하고 있다.
오뚜기는 565억원 규모의 미국 현지 공장 설립을 추진하며 해외 생산 기반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내수 부진과 원가 상승이 겹치는 상황에서 업계는 정부의 대응도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업계 관계자는 "원재료 전략 비축과 공급망 다변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기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관세·부가세 조정이나 수입 원료 지원 등 고환율 부담을 완화할 정책이 마련된다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현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부교수도 "환율이 추가로 상승하거나 고환율 상태가 지속된다면 정부도 원료 구매용 저리 자금융자나 환변동 보험 지원, 수입 원료 할당관세 확대, 법인세 부과 유예나 수입 부가가치세 면제 등의 대책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