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박소다 기자] 민주노총이 제안한 새벽배송 제한 논의가 온라인 식품업계를 흔들고 있다. 신선식품 중심의 새벽배송은 자사몰과 플랫폼 매출, 품질 관리, 브랜드 전략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는데, 배송 시간 제한이 현실화하면 물류망 재편과 상품 포트폴리오 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국내 주요 식품기업들은 자체 배송망 구축을 검토하고 있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민주노총은 택배 노동자의 과로사 방지를 이유로 자정부터 오전 5시까지 배송을 금지하는 안을 제시했으며, 오는 28일 열리는 택배 분야 사회적 대화기구 3차 회의에서 논의를 이어갈 계획이다. 사회적 대화기구에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민주노총, 고용노동부 등이 참여한다.
하지만 당사자인 쿠팡 노조를 비롯한 유통업계, 식품업계, 소상공인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유통업계는 소비자 편익과 업종 간 형평성 문제를, 식품업계는 냉장·냉동 식품의 신선도 관리와 비용 부담 증가를 이유로 들었다.
최근 온라인 식품 시장에서는 배송 경쟁이 플랫폼 중심에서 제조사 중심으로 이동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주요 식품기업들이 자사몰과 자체 물류망 구축에 나선 것은 쿠팡, 컬리 등 이커머스 의존도를 줄이고 수익성을 높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주요 식품기업 중 자사몰과 자체 배송 체계를 동시에 구축한 곳은 CJ제일제당, 풀무원, 롯데웰푸드, 아워홈, hy, 동원 등이다. 자사몰을 운영 중인 오뚜기도 최근 자체 배송 시스템 도입을 검토 중이다. 롯데칠성음료는 빠른 배송을 위해 택배사와 풀필먼트 서비스 도입 등을 검토하고 있다.
CJ제일제당은 업계 처음으로 익일 배송을 구현했다. 2019년 기존 자사몰 CJ온마트를 개편해 출범한 CJ더마켓은 '도착보장(오네배송)' 서비스를 선보였으며, 누적 회원 수는 약 422만명에 달한다. 회사는 CJ더마켓의 배송 체계를 지속적으로 개선하며 온라인 식품 시장 내 입지를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풀무원은 쿠팡과 유사한 수준의 배송 서비스를 제공한다. 식품 자사몰 중 유일하게 택배 배송, 새벽배송, 일일배송(녹즙 및 디자인밀 제품), 매장 배송 등 다양한 배송 방식을 운영하고 있어, 고객이 원하는 시간과 방식에 맞춘 유연한 배송이 가능하다. 최근에는 주문 마감 시간 연장, 배송 가능일 확대, 새벽배송 권역 확대 등 배송 서비스 확대를 준비 중이다.
롯데웰푸드는 지난 7월 자사몰 '롯데웰푸드 푸드몰'에 '내일받기' 시스템을 도입했다. HMR(가정간편식)과 육가공 일부 제품을 대상으로, 평일 자정 이전, 주말 밤 10시 이전 주문 시 다음 날 배송이 가능하다. 또한, 영유아식 카테고리 제품은 생산공장에서 바로 출고되는 '공장 직배송' 시스템을 적용했다.
아워홈도 올해 처음으로 온라인 전용 '오늘도착, 내일도착' 배송 시스템을 도입했다. 회사에 따르면 도입 이후 아워홈몰 매출이 급성장했으며, 올 상반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66% 증가했다. 신규 회원 가입자도 전년 대비 230% 늘어나, 빠른 배송 서비스가 매출과 회원 확보에 직결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반면 상온 보관 제품을 주로 생산하는 식품사들은 대부분 자사몰 운영에 그치며, 자체 배송망을 갖추지 못했다. 새벽배송 제한이 현실화할 경우, 플랫폼 의존도가 높은 기업일수록 전략적 부담이 커질 전망이다.
한 식품사 관계자는 "쿠팡 등 대형 플랫폼에 납품할 경우 단가나 수수료 협상에서 주도권을 갖기 어렵다"며 "대형마트 계열 온라인 플랫폼도 적자를 지속하고, 쿠팡 영업이익률이 1%인 상황에서 식품 제조기업이 수익성을 확보하려면 자체몰과 물류망을 통한 시장 지배력이 필수"라고 말했다.
정부와 여당 일부는 새벽배송 제한 입법 가능성을 시사하며 사회적 대화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한국로지스틱스학회 발표에 따르면 새벽·주 7일 배송이 중단될 경우 이커머스 업체의 연 매출이 33조원 감소하고, 총 54조원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새벽배송은 이미 산업 생태계의 핵심 축이 된 셈이다.
이 관계자는 "과거 택배노조 파업 때 레토르트 제품 판매가 크게 늘었다"며 "새벽배송 제한은 단순한 택배 근로자 문제를 넘어 국내 식품산업 유통 구조와 상품 전략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안으로, 사회적 합의를 통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