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김완일 기자] 노란봉투법을 두고 나뉘는 '노동권 강화와 산업 경쟁력'이란 논쟁은 이제 법의 시행령과 후속 제도 마련을 통해 어떻게 현장에 적용하고 운영할지에 대한 논의로 옮겨가고 있다. 산업계의 발전을 위해 갈등을 최소화하고 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노사정의 합의가 필요할 전망이다.
5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이 국회를 통과한 후 국내 산업 전반에 걸쳐 노조들의 파업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철강업과 조선업계는 물론 자동차, IT, 금융 업계까지 열기가 격화되며 몇몇 노조는 총파업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이에 대해 노란봉투법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이나, 업계는 법안 기준의 모호성과 교섭력 비대칭 등을 노사 간 갈등의 쟁점으로 지적한다.
노란봉투법의 핵심 쟁점은 △사용자 범위와 △쟁의 대상 △손해배상 제한 등 세 가지다. 먼저 사용자 범위는 원청의 '실질적·구체적 지배력'을 어디까지 인정할지가 하청·간접고용의 교섭 지형을 바꾼다. 구조조정·정리해고 등 경영상 결정의 포함 범위와 절차 요건이 불명확하면 경영 판단은 지연되고 현장 혼선이 커질 수 있다. 교섭력 재편을 의도한 법안이지만, '파업 만능' 우려를 낮출 보완책이 미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같은 사안이 노사 간 소통에서 각자의 목소리만을 높이게 만들고 갈등으로 이어지며 향후 납기 문제, 생산 차질, 투자 유보 등으로 이어질 수 있을거란 우려를 낳고 있다.
특히 국내 철강·조선업 현장에선 이러한 갈등의 파장이 나타나는 상황이다. 조선에선 임단협과 구조 개편 이슈가 겹치며 부분 파업과 연대 움직임으로 번지고 있고 대형 발주 납기 리스크가 부상하고 있다. 철강에선 임금 교섭 중단과 원청 책임 공방이 맞물려 공정 중단 가능성이 거론된다. 제도 변화가 교섭의 판도를 바꾸고 있는 만큼 노사의 충돌을 줄이고 소통을 강화할 방법이 필요해 보인다.
조선업의 해법으론 다단계 하청 구조에 따라 원·하청이 동시 교섭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 대표 교섭의 정합성, 정보공개 범위, 일정표 등을 사전에 합의하는 것이 우선 꼽힌다. 또 대형 발주는 노사가 합의 하에 일정한 안정장치를 만들 필요가 있다. 특히 최근 국내 조선업은 고부가가치 선종의 인기와 마스가(MASGA) 프로젝트 등에 따라 납기 리스크가 발생하면 신뢰도 하락과 슈퍼사이클의 종료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러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생산과 납기 문제를 줄이기 위한 마지노선 협의가 우선 이뤄져야 할 것이다.
철강업은 공정의 물리적 특성을 제도에 이식해야 할 필요가 있다. 파업 시 공정 중단을 막기 위한 '필수유지업무 재설계'가 필요하며 이는 최소한의 안전 운전 및 설비 유지를 위한 기준을 노사 간 합의를 이룰 필요가 있다. 또 공정 중단 임계치에 도달할 경우 자동으로 중재 절차가 시작되는 방안의 도입도 고려해볼 만하다. 이는 갑작스러운 공정 중단으로 인한 막대한 피해를 막고 신속하게 협상 국면으로 전환하는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 전문가들은 노동권 강화가 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지 않도록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단순히 규제만 가할 것이 아니라, 'K-스틸법' 등 산업 지원책과 노동 정책을 연계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설비투자 및 기술개발에 따른 세액공제 확대, 하청 근로자 양성을 위한 지원, 수출 및 발주 신뢰 보호를 위한 협의 등 다각적인 지원 방안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제언한다. 이는 향후 노사 갈등 리스크를 투자와 생산성 향상이라는 기회로 전환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분석된다.
노란봉투법은 국내 산업 생태계가 노동권 강화와 산업 경쟁력 유지라는 두 가지 목표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법위 취지를 살리리면 현장 비용을 최소화하는 설계가 법안의 본격적인 시행 전에 이뤄져야 한다고 제언한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일 노란봉투법과 상법 개정안의 국무회의 의결을 앞두고 노사 간의 존중과 협력을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오늘 의결할 두 법안은 기업 경영 투명성 강화와 노사 상생을 촉진해 국민경제의 발전을 뒷받침하는 데 목적이 있다"며 "모두가 상호 존중하고 협력의 정신을 발휘할 때"라고 말했다. 이어 "모두가 책임을 갖고 경제 회복과 지속 성장에 힘을 모아야할 것"이라며 "정부 관계 주처들도 후속 조치에 만전을 기해 주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