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여용준 기자]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이 공포되고 내년 시행을 앞둔 가운데 산업계 전방위에서 파업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재계에서는 통상 여름 임금 협상 시기에 이뤄지는 '하투(夏鬪)'를 넘어 '추투(秋鬪)'의 가능성까지 전망하는 분위기다. 

특히 이번 '하투'는 조선업, 자동차뿐 아니라 금융, IT, 등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정부에서는 최근 파업 움직임과 노란봉투법이 무관하다는 입장을 보이는 한편 법 공포까지 남은 시간 동안 보완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현대차 노사가 지난 6월 18일 울산공장 본관 동행룸에서 2025년 임단협 교섭 상견례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현대자동차)
현대차 노사가 지난 6월 18일 울산공장 본관 동행룸에서 2025년 임단협 교섭 상견례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현대자동차)

◇ '7년 무분규' 깨진 현대차···기아·한국GM으로 번지는 '들불' = 올해 '하투'로 가장 크게 골머리를 앓는 곳은 단연 현대자동차그룹이다. 미국으로부터 자동차 관세 직격탄을 맞으면서 실적이 감소한 가운데 노조에서도 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 노사는 임금 인상 규모와 정년 연장, 통상 임금 확대 등을 두고 협상을 진행했다. 사측이 두 차례 임금 인상안을 내놨지만, 노조 찬반 투표에서 결렬되면서 결국 파업에 돌입하게 됐다. 이에 따라 오전 출근조와 오후 출근조는 3, 4일에 각각 2시간씩, 5일에는 4시간 파업을 진행하고 있다. 

현대차 노조가 파업에 돌입한 것은 2018년 이후 약 7년만이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이번 현대차 노조 파업으로 예상되는 손실 규모만 4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기아 노사 역시 현재 임금단체협상을 진행 중이지만, 전망이 밝은 편은 아니다. 업계에서는 노조의 요구안이 강도가 높아 결국 파업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기아는 올해 파업에 들어갈 경우 5년 무 분규 파업이 깨지게 된다. 

한국GM 역시 임금 인상과 함께 자산 매각에 반대하며 1일부터 3일까지 하루 4시간 부분 파업에 진행했다. 한국GM 역시 노사 간에 임금안 격차가 너무 커 쉽게 합의점에 이르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여기에 헥터 비자레알 한국GM 대표가 최근 고용노동부 장관과 진행한 간담회에서 "(노란봉투법 때문에) 본사로부터 사업장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질 수 있다"고 발언하면서 노조의 반발도 거센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3일 HD현대중공업 노조의 4시간 파업 현장 모습 (사진=HD현대중공업 노조)
지난 3일 HD현대중공업 노조의 4시간 파업 현장 모습 (사진=HD현대중공업 노조)

◇ 한화오션·HD현대, 엇갈린 노사 분위기 = 국내 조선 빅3는 노사 관계가 엇갈리는 분위기다. 한화오션은 임금 협상이 조기 타결되면서 큰 고비를 넘긴 반면 HD현대중공업은 사업 재편에 대한 노조 반발도 있어 협상에 난항을 겪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현재까지 임금협상을 진행하고 있지만, 그룹 차원에서 반발 가능성이 남아있다. 

한화오션 노사는 지난 7월 24일 기본급 12만3000원 인상 등의 내용을 담은 임금협상안이 조합원 찬반투표에서 가결되면서 올해 임금교섭을 마무리했다. 지난 2일 진행한 임급교섭 조인식에서 김희철 한화오션 대표이사는 "이번 임금교섭 타결은 노사 상생의 결실로, 앞으로도 안전과 품질을 바탕으로 경쟁력을 갖춘 선박을 건조하겠다"고 전했다. 

반면 HD현대중공업 노조는 올해 이미 6차례 부분 파업을 진행했으나 임금 교섭에 난항을 겪으면서 3~5일까지 하루 4시간 부분 파업을 진행하고 있다. 울산에 사업장을 두고 있는 현대차와 HD현대의 노조가 동시에 파업을 진행하는 것은 2016년 이후 9년만이다. 

이번 파업은 HD현대중공업과 HD현대미포, HD현대삼호 등 HD현대 조선 3사가 올해 처음 진행하는 공동 파업이다. 특히 이번 파업은 임금 협상 외에 HD현대중공업과 HD현대미포의 합병에 대한 반발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는 지난달 27일 "전격적인 합병을 두고 노조에 일언반구도 없었던 건 유감"이라며 "합병 관련 세부 자료와 고용 보장 방안을 즉각 제시하라"고 요구했다. 

지난해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관계자들이 서울 중구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투쟁상황실에서 총파업 투쟁 계획을 발표하며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금융노조)
지난해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관계자들이 서울 중구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투쟁상황실에서 총파업 투쟁 계획을 발표하며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금융노조)

◇ 금융·IT·게임에 드리우는 노사 갈등 = 제조업뿐 아니라 서비스업에도 파업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시중은행과 국책은행, 지방은행 등이 소속된 전국금융산업노조는 임금인상과 근무시간 단축 등을 요구하며 파업을 예고했다. 다만 고객의 직접 불편이 우려되는 만큼 은행의 참여 여부는 미지수인 상황이다. 

국내 양대 IT기업인 네이버와 카카오 역시 파업 리스크에 빠졌다. 네이버의 손자회사인 그린웹서비스, 스튜디오리코, 엔아이티서비스(NIT), 엔테크서비스(NTS), 인컴즈, 컴파트너스 등에 속한 노조원들은 네이버와 계열사 간의 임금 격차, 차별적 복지 등을 지적했다. 카카오 노조 역시 회사가 경영쇄신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며 경영진의 책임 회피와 반복적 구조조정을 지적했다. 

현재 두 노조는 사측을 압박하기 위한 장외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나 파업까지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다만 강경 행동이 지속될 경우 대외적인 부담이 커질 우려는 있다. 

'던전앤파이터'를 만든 넥슨의 자회사 네오플은 성과급 제도 개선을 요구하며 지난 6월 25일부터 파업에 돌입했다. 7월에는 주 3일 전면 파업과 주 2일 조직별 파업으로 규모를 확대했으며 8월부터는 주 5일 전면 파업에 돌입했다. 다만 업계에 따르면 직원들의 파업 참여율이 50%에 미치는 못해 실제 업무에는 영향이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3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주요기업 CHO(최고인사책임자)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3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주요기업 CHO(최고인사책임자)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노란봉투법' 뜨자 터진 파업?···정부는 "관계없다, 보완책 마련할 것" = 산업계의 이 같은 파업 움직임에 재계에서는 노란봉투법을 언급하고 있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지난 3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업 노무담당자 간담회에서 "노란봉투법 통과에 따른 사용자 범위 확대로 노사관계 불안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특히 일부 노조는 합병이나 신사업 진출 등 경영상의 사항에 대해 노조와 논의할 것을 요구하고 있어 경영계 우려는 더욱 커지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최근 파업이 임단협 과정에서 노사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아 일어난 파업일 뿐 노란봉투법과는 무관하는 입장을 내놨다. 노란봉투법은 지난 2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돼 6개월 뒤인 내년 3월부터 시행된다. 

정부와 여당은 남은 6개월 동안 경영계와 노동계의 의견을 수렴해 보완책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3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업 노무담당자와 간담회에서 "어떻게 상생의 법으로 안착시킬지 노사정이 지혜와 경험을 모아야 할 시기"라며 노란봉투법에 대한 보완책을 마련할 것을 시사했다. 

이어 양대노총(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한국노동조합총연맹)과 노란봉투법 모범사례를 발굴하겠다고도 밝혔다. 김 장관은 "6개월 준비기간 동안 양대노총에 주요한 사업장에서 원하청 모범 모의 공동 노사 협의회 추진을 해가면서 발생될 수 있는 문제점도, 좋은 사례 발굴도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은 "구체적인 안이 나오면 검토해보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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