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박소다 기자] 최근 국내 김치 시장에 특급 호텔업계도 뛰어들면서 새로운 경쟁구도가 형성되고 있다.
1~2인 가구 증가, 노동력 부담 등으로 김장을 포기하는 '김포족'이 늘면서 그간 종합식품업계가 포장김치 시장을 사실상 주도해 왔다.
하지만 호텔 업계가 특급 브랜드 이미지와 유명 셰프의 노하우를 접목한 프리미엄 제품으로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고급 김치시장을 선점하는 것과 동시에 'K-푸드' 인기와 맞물려 해외진출까지 모색하고 있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조선호텔 김치는 올해 1~8월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5% 증가하는 등 2021년 이후 매년 두 자릿수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워커힐호텔과 롯데호텔 김치 매출도 같은 기간 동안 각각 81%, 21% 늘었다.
실제로 농협 '월간농협맛선' 설문에 따르면 응답자의 72%가 김장을 하지 않겠다고 했고, 이 중 88.7%는 포장김치를 구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각 사의 공식몰에서 판매되는 호텔 김치의 가격은 '워커힐호텔 김치' 7㎏이 5만3910원(100g당 770원), '조선호텔 김치' 8㎏이 7만2600원(100g당 907원) 등으로, 식품사 김치인 CJ제일제당의 '비비고 베이직 포기 배추김치'(10㎏·5만5900원·100g당 559원), 종가의 '일상행복 포기김치'(10㎏·5만7900원·100g당 579원)보다 30% 이상 비싸다.
그럼에도 호텔 김치는 최상급 국내산 재료, 전통 방식, 셰프의 손맛, 철저한 품질 관리를 앞세워 고급 김치를 찾는 소비자층을 공략하고 있다.
워커힐호텔앤리조트는 1989년 국내 호텔 업계 최초로 김치연구소를 설립하고, 전통 방식과 최상급 재료로 만든 중부식 김치 '수펙스 김치'를 출시했다. 호텔에서 직접 구매하면 숙성기간도 선택할 수 있으며, 주문 즉시 항아리에서 꺼내 포장해 준다. 이후 2018년 대중형 브랜드 '워커힐호텔 김치'를 내놓으며 고객층을 확대했다.
최근 2년여 준비 끝에 호텔 업계 최초로 미국 시장에 진출한다. 초도 물량은 워커힐호텔 김치(배추김치 4㎏·총각김치 2㎏) 등 총 7톤으로, 한인 거주 비율이 높은 미국 서부 지역에서 우선 판매된다.
조선호텔은 2004년부터 김치 판매를 시작해 2011년 서울 성수동에 해썹(HACCP) 인증 김치 공장을 세워 안정적인 생산 기반을 마련했다. 현재 포기김치, 총각김치, 열무얼갈이김치 등 20여 종을 400g부터 3~5㎏ 용량으로 판매 중이다.
특히 김치사업팀을 별도 조직으로 격상하고, 자체 온라인몰과 신세계백화점, SSG푸드마켓, 이마트몰 등 대형 유통 채널로 판매망을 넓혔다. 정기구독 서비스도 도입했다. 김치 사업은 조선호텔 전체 매출의 약 15%를 차지하며 매년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 중이다.
롯데호텔은 2013년과 2016년 김치 사업에 도전했으나 초기에는 시장 반응이 미미해 철수했다. 그러나 2023년 '롯데호텔 김치'를 재출시하며 다시 김치 사업에 뛰어들었다. 현재 배추김치, 백김치, 열무김치 등 계절 김치 9종과 프리미엄 간편식 '롯데호텔 김치찌개'도 판매 중이다.
김치찌개 제품은 국내산 돼지고기 목살, 고춧가루, 육젓 등 천연 재료를 엄선해 품질을 높였으며, 롯데호텔 셰프들이 직접 개발에 참여했다. 롯데호텔은 일본, 미국, 베트남 등 6개국에 김치 수출을 계획하고 있다.
파라다이스호텔도 지난해 김치 사업에 뛰어들어 올해 매출 증가율 약 10%를 기록했다. 서울드래곤시티 역시 올해 5월부터 김치 사업을 시작해 매월 매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두 호텔 모두 자체 브랜드 김치를 통해 국내 시장 입지를 다져가며 간편식과 수출 시장 진출도 모색 중이다.
호텔업계는 김치 사업을 일시적 트렌드가 아닌 중장기 수익원으로 육성 중이다. 객실 수익에 의존하던 구조에서 벗어나 식음료(F&B), 침구류, 간편식 등으로 사업다각화를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김치는 투자 대비 수익성과 성장성이 뛰어난 전략 품목으로 자리 잡았다.
투입 비용이 크지 않은 점도 매력이다. 호텔은 이미 식음료 사업장을 통해 인력과 조리시설, 유통망을 갖추고 있어 별도 인프라 투자 없이 사업 확장이 가능하다는 것도 장점이다.
익명을 요청한 한 호텔 관계자는 "김치는 단순한 식품이 아니라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 콘텐츠다"라며 "특급호텔로서 고품질 식문화를 선도한다는 정체성과도 맞닿아 있어, 브랜드 가치를 강화할 수 있는 중요한 사업군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