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선 HD현대 회장이 APEC CEO 서밋 '퓨처 테크 포럼: 조선'에서 기조연설을 진행하는 모습 (사진=HD현대)
정기선 HD현대 회장이 APEC CEO 서밋 '퓨처 테크 포럼: 조선'에서 기조연설을 진행하는 모습 (사진=HD현대)

[서울파이낸스 김완일 기자] 글로벌 조선 시장의 발주가 감소세에 접어들고 국제해사기구(IMO) 환경규제가 연기되며, 조선업은 '수량'이 아닌 '가치'의 경쟁으로 축이 이동하고 있다. 이에 대해 HD현대는 친환경 상선의 포트폴리오를 벗어나 미국 동맹 확장과 인공지능(AI) 및 디지털 생산 혁신으로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의 성과는 새로이 키를 쥔 정기선 HD현대 회장의 리더십을 가름할 것으로 보인다. 

◇ 한·미 조선 동맹으로의 외연 확장 = 12일 업계에 따르면 올해 3분기 글로벌 신조 발주량은 3264만CGT로 전년 대비 46.9% 감소했다. 같은 기간 국내 조선사는 734만CGT를 수주하며 16.7% 줄었지만, 척당 생산량은 5.8만CGT로 중국(2.2만CGT)의 두 배 수준을 유지했다. 발주는 줄었지만, 고부가 선종의 점유율과 단가 경쟁력을 유지했다는 의미다. 다만 업계는 상선 발주 감소세가 뚜렷해지고 있는 만큼 다음 단계를 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HD현대는 상선 발주 사이클의 영향을 최소화하고 고정적인 수익원을 확보하기 위해 미국과의 협력과 현지 진출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미 조선 산업 재건을 위한 마스가(MASGA) 프로젝트에 맞춰 '한·미 동맹 구축'을 조성하고 있는 것이다. 정기선 회장은 앞서 지난달에 개최된 APEC CEO 서밋 테크 포럼의 기조연설에서도 "HD현대는 미국의 해양 르네상스 여정에 든든한 파트너로 동행할 준비가 됐다"고 강조하며 미국과의 협력 의지를 표한 바 있다.

HD현대의 대미 협력 전략은 크게 △방산 파트너십을 통한 군함 건조 △유지·보수·정비(MRO) 사업 확대로 나뉜다. 먼저 미국 조선 및 방산 파트너사와 손잡고 차세대 군수지원함 설계 및 건조를 추진하며 미국 내 생산 거점 확보와 실질적 협력에 나설 방침이다. 이를 위해 지난달 미국 최대 방산 조선사인 헌팅턴 잉걸스 인더스트리(HII)와 상선 및 군함 설계·건조 협력 합의 각서(MOA)를 체결한 바 있다. 

양사는 협약에 따라 미 해군이 추진 중인 차세대 군수지원함 설계 및 건조에 공동으로 참여할 계획이다. 아울러 미국 내 조선 생산시설 인수 및 신규 설립 공동 투자, 블록·자재 공급 협력, 조선 엔지니어링 합작서 설립 등도 검토할 방침이다. HD현대는 이와 같은 파트너십을 통한 현지 합작 및 투자를 진행하며 장기적으로 미국 국방 관련 시장에 진입하는 교두보를 마련한다는 목표다.

이와 함께 MRO 사업 확대는 상선 발주 둔화로 발생하는 야드 생산 공백을 메울 해결책으로 분석된다. MRO 시장은 신조 발주와 무관하게 함정의 주기적인 유지 및 보수로 수요가 꾸준하며, 향후 미국 내 MRO 거점을 확보할 경우 안정적인 수익원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HD현대는 이를 위한 합작법인 설립, 현지 시설 인수 등 다양한 옵션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HD현대 아비커스의 자율주행 솔루션을 탑재한 '프리즘 커리지'호 (사진=HD현대)
HD현대 아비커스의 자율주행 솔루션을 탑재한 '프리즘 커리지'호 (사진=HD현대)

◇ AI 기술 혁신···스마트 조선소와 무인 함정 기술 선점 = HD현대는 미 협력 강화와 더불어 AI 기술 도입, 스마트 조선소 그리고 무인 함정 기술 선점 등의 해양 솔루션 산업으로의 전환도 모색하고 있다. 특히 이러한 기술 초격차 확립은 정 회장이 APEC CEO 서밋에서 강조한 핵심 비전이기도 하다. 

먼저 AI 기술은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HD현대의 자율 운항 전문 자회사인 아비커스는 AI 기반 자율운항 기술을 통해 선박 연료 사용량을 5% 이상 절감하는 실질적 성과를 나타냈다. 이는 친환경 규제 대응에 고심하는 선주들의 고민을 덜고 시장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핵심 기술력으로 꼽히고 있다. 

AI 기술 기반 무인 함정 개발도 추진하고 있다. 정 회장은 APEC CEO 서밋에서 "미국 방산기업 안두릴과 협력해 차세대 무인 함정 개발을 추진 중이며, 두 회사의 기술을 결합하면 해군 작전의 패러다임을 바꿀 것"이라고 말했다. 양사는 이미 지난 8월 협력을 위한 양해 각서를 체결했으며, HD현대가 개발하는 무인수상정에 안두릴의 자율 임무 수행 체계 솔루션을 탑재하는 것에 합의한 바 있다. 

이 외에도 정 회장은 "조선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산업 간 경계를 뛰어넘는 '글로벌 혁신 동맹'을 통해 미래 조선업 생태계를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AI는 조선업의 지속가능성과 디지털 제조 방식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HD현대의 미래 비전이 선박 건조를 넘어 기술과 데이터를 통합한 기술 기반의 생산성 혁신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리고 이러한 기술 확립은 향후 미국과의 조선업 협력에서 기술 패키지로도 활용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스마트 조선소는 △공정 자동화 △디지털 트윈 △AI 품질 관리 등의 기술을 통해 효율을 높이고 공정 데이터와 설계 정보를 통합 관리해 불량률과 납기 지연을 최소화할 수 있는 게 특징이다. 또 이 기술 혁신은 ESG 경영 흐름과도 연결된다. 전력 효율화, 탄소 배출 절감, 친환경 기자재 사용 등과 맞물려 친환경 규제 대응력을 강화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 우위를 보장하는 핵심 수단으로 평가된다. 

상선 중심의 슈퍼사이클이 저무는 상황에서 국내 조선사들은 어떤 시장을 선택하고 어떤 기술을 앞세워 차별화해야 할지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다. HD현대는 그 해답을 미국 시장과 기술 혁신에서 찾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비전을 이끌고 있는 정 회장의 리더십은 다음 단계로 나아가고 있는 국내 조선 산업에서 회사의 리스크를 줄이고 안정적인 사업 포트폴리오 완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HD현대의 대미 협력과 기술 혁신은 K-조선이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전제를 보여준다"며 "이러한 변화의 성패는 리더의 결단과 지속적인 투자가 필수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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