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제철 자동차용 강판 (사진=현대제철)
현대제철 자동차용 강판 (사진=현대제철)

[서울파이낸스 김완일 기자] 유럽연합(EU)이 철강 수입 규제 강화 방안을 추진할 것으로 전해지며 국내 철강 산업이 다시 한번 통상 압박에 직면했다. 미국의 고율 관세에 이어 EU도 관세 장벽을 높이려는 움직임이 가시화되며 국내 철강 산업 경쟁력 약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응할 제도적 기반이 미비해 위기 대응이 늦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일 로이터, 블룸버그 등 외신에 따르면 오는 7일 공개될 EU 집행위원회 새 정책 패키지에 수입 철강 제품에 대한 규제 강화 내용이 담길 예정이다. 이는 기존 25%였던 관세를 최대 50%까지 인상하고, 무관세가 적용되던 수입 쿼터 물량을 절반 수준으로 줄인다는 내용인 것으로 전해졌다. 유럽은 지난해 동안 381만톤(t)의 한국산 철강이 수출된 최대 시장인 만큼, 해당 조치가 현실화될 경우 국내 철강 업계에 미칠 타격은 막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EU의 이러한 고강도 조치는 중국 철강의 공급 과잉 및 미국의 고율 관세 정책에 대해 철강 세이프가드 제도를 대체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EU의 현행 세이프가드는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 따라 내년 6월 말 만료될 예정이며 이에 앞서 규제 강화를 서두르는 모양세다. 이미 EU는 지난 4월 한국산 쿼터를 최대 14% 줄인 바 있어, 추가적인 쿼터 축소와 고율 관세가 겹치면 유럽 수출은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유럽보다 앞서 철강 관세 장벽을 높인 미국은 중국산 우회 수출을 막는다는 명목으로 반덤핑 조사와 상계관세 부과를 강화하며 통상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미국 시장은 자동차 강판, 에너지용 강재 등 고부가가치 제품의 주요 수요처이기에 관세 리스크는 국내 철강사들의 수익성 확보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히고 있다. 이처럼 미국과 유럽 시장이 동시에 문턱을 높이면서 국내 철강 산업의 활로 찾기는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외부의 관세 압박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국내 철강 산업의 경쟁력을 제고하고 통상 리스크에 대응한 제도적 기반은 부족하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정부는 9월 말에서 10월 초 발표 예정이었던 '철강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 발표를 이달 중순으로 연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올해 초부터 산·학·연 전문가들을 모아 철강산업 경쟁력 강화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고 있다. 철강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은 해당 TF가 철강업계 부담을 완화하고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내용을 모은 대책으로 업계의 이목을 모았다. 대외적 위기가 지속되며 이에 대한 대처가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 경쟁력 강화 방안의 발표 시기가 미뤄지며 업계 근심은 더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앞서 지난 8월 여야 의원 106명이 공동 발의한 'K-스틸법(철강산업 경쟁력 강화 및 녹색철강기술 전환을 위한 특별법)'도 국회 상임위 소위원회에 상정된 후 처리가 지연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여야 공동 발의로 당초 8월 임시국회에서 다뤄질 예정이었지만 정쟁이 격화되며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특히 해당 법 자체가 중국의 저가 공세와 미국의 관세 압박을 겨냥한 법안인 만큼 APEC 정상회담을 앞두고 눈치를 보는 게 아니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이 법안은 △대통력 직속 특별대통령 직속 특별위원회 설치 △금융 지원 △녹색철강특구 지정 등의 지원책을 담고 있어 국내 철강 산업 위기 극복에 필수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의 고율 관세 피해가 본격화되고 유럽 마저 관세 장벽을 높이려는 상황에서 정부의 지원 마련 공백이 길어지고 있다"며 "현재 철강 산업 전반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기업과 정부가 함께 노력해야 하는데, 정부 지원이 불투명하다면 기업이 투자를 결정해야 할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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