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김완일 기자] 유럽연합(EU)이 수입산 철강 제품에 대한 관세 확대와 쿼터 축소 방안을 발표하며 국내 철강업계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에 이어 유럽까지 수입 장벽을 강화하면서 한국 철강 수출의 양대 시장이 동시에 흔들리는 모양새다. 정부는 외교 채널을 총동원해 대응에 착수할 것이라 밝혔으며 업계는 조속한 협상 전략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EU 집행위원회는 지난 7일(현지시간) 기존 세이프가드를 대체할 새로운 저율관세할당물량(TRQ) 제도 도입 계획을 발표했다. 이번 개편안의 △수입 철강 제품 무관세 쿼터 총량을 기존(3053만t) 대비 47%(1830만t) 축소 △쿼터 초과 물량에 대한 관세율 25%에서 50%로 상향 등을 포함하고 있다. 현재 내년 6월 몫까지 쿼터가 배정돼 있어, 새 제도의 시행은 내년 7월경으로 예상된다. 또한 EU는 철강 원재료의 생산 출처를 추적하기 위한 '조강국 모니터링' 제도 도입도 병행할 계획이다.
EU 집행위원회는 "현실적으로 FTA 체결국을 규제 대상에서 제외하기는 어렵다"며, 한국을 포함한 주요 수출국 대부분이 이번 조치의 적용을 받게 될 것을 시사했다. EU의 이번 조치는 중국의 철강 공급 과잉 견제와 함께 자국 산을 보호하고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와 연계한 탄소 무역 장벽을 공고히 하려는 전략으로 분석된다.
정부는 EU의 조치가 공식화되자 즉각 외교 및 통상 라인을 가동했다.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 10일(현지시간) 남아프리카공화국 그케베르하에서 열린 G20 무역투자장관회의 및 철강공급과잉 글로벌포럼(GFSEC)에 참석해 마로시 셰프초비치 EU 통상·경제안보 담당 집행위원과 양자 회담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여 본부장은 "한국은 EU와 14년차 FTA 파트너로서, 비(非)FTA 국가와 차별화된 고려가 필요하다"며 "기존 교역 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물량 배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부는 FTA 위원회 협의, G20 및 GFSEC 등 다자 협력 채널을 총동원해 EU 설득에 나설 방침이다. 다만 EU 측에서 예외 적용 불가 의사를 밝힌 바 있어 협상 여지는 제한적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한국의 철강업계는 EU의 이번 조치로 인한 수출 충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기준 EU는 한국의 철강 수출액 44억8000만달러(약 6조3000억원)로, 미국(43억5000만달러)을 제치고 최대 수출시장으로 꼽힌다. 수출량은 약 400만톤(t)으로, 새로 조정된 글로벌 무관세 쿼터의 약 22%를 차지한다. EU는 수출 단가가 t당 평균 1155달러에 달하는 고수익 시장인 만큼 이번 쿼터 축소와 관세 인상으로 인한 이익률 하락은 불가피해 보인다.
정부 관계자는 "EU의 세부 조치가 확정되기 전까지 가능한 모든 외교 채널을 활용하겠다"며 "관세 강화로 인한 국내 산업 피해 최소화를 위해 업계와 협력 중"이라고 말했다. 국내 철강업계는 EU의 관세 강화와 CBAM 시행이 맞물리며 이중고가 현실화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에 관해 우선 주요 수출품목인 판재류의 쿼터를 현행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이 급선무라 강조한다. 한국은 EU의 판재류 수입시장 내 1위 공급국으로, 자동차용 강판·열연·냉연강판 등 고부가가치 제품을 주력으로 수출 중이다.
철강업계 전문가들은 EU 철강 관세 위기를 극복하려면 정부와 기업의 병행 전략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업계 전문가는 "EU와의 개별 협상 여지가 크지 않음을 인지하고, 단기적으로는 고부가가치 제품 믹스를 확대해 관세 부담을 상쇄해야 한다"며 "장기적으로는 수소환원제철 등 저탄소 친환경 제철 기술 개발 및 양산을 서둘러 관세 장벽과 CBAM을 대응하는 근본적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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