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제철 당진제철소 (사진=현대제철)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사진=현대제철)

[서울파이낸스 김완일 기자] 국내 철강산업의 위기가 길어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현대제철은 완성차 계열사라는 안정적 수요망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철강 경기 침체의 직격탄을 피하지 못했다. 영업이익률은 2021년 10%를 웃돌던 수준에서 올해 2%대까지 내려앉았고, 주가는 7년 전 수준으로 후퇴했다. 한때 포스코에 이어 '철강 2위'로 군림하던 자부심도 흔들리고 있다.

현대제철의 고민은 단순한 실적 부진에 그치지 않는다. 철강 산업의 패러다임이 '양적 성장'에서 '질적 전환'으로 옮겨가는 시점에서, 그룹 내 존재감과 전략적 위상이 시험대에 올랐다. 현대차그룹이 UAM(도심항공모빌리티), 전동화, 수소 등 미래 산업에 투자 초점을 맞추는 사이, 현대제철은 '전통산업'이라는 꼬리표에서 벗어나기 위해 새로운 성장 스토리를 모색하고 있다.

◇ 수요 침체에 영업이익 급감···탄소중립도 발등의 불 = 7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현대제철의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은 422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7% 급감했다. 글로벌 철강 가격 하락과 원가 부담이 겹친 결과다. 특히 주력 수요처인 자동차 산업의 완성차 생산이 전동화 전환기 불확실성으로 둔화되면서 판매량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건설·조선 등 중후장대 산업 전반의 침체 역시 후판·형강 수요 위축으로 이어졌다.

문제는 이러한 부진이 단기간 내 반등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글로벌 철강 수요 증가율은 올해 1%에 그칠 것으로 전망되며, 중국의 부동산 경기 위축이 장기화되면서 수출 물량 확대도 쉽지 않다. 이에 현대제철은 고부가가치 제품 중심의 '질적 성장' 전략으로 방향을 틀었다. 자동차용 강판, 전기강판, 고장력 강재 등에서 그룹 내 시너지를 극대화하겠다는 구상이다.

현대제철이 처한 또 하나의 도전은 '탄소중립'이다. 전기로·고로 등 전통 제철 공정은 대표적인 탄소 다배출 산업으로 꼽힌다. 유럽연합(EU)이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본격 시행하면서 수출 경쟁력 약화가 현실화되고 있다. 현대제철은 이미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12% 감축하고, 2050년까지 '넷제로(Net Zero)' 달성을 목표로 하는 중장기 로드맵을 수립했다.

◇ 그린철강·스마트팩토리·재무개선, 동시 진행 = 핵심은 수소환원제철이다. 철광석을 고온에서 석탄 대신 수소로 환원하는 방식으로, 탄소 대신 물(H₂O)만 배출한다. 현대제철은 당진제철소에 시험 설비를 구축해 실증 단계를 밟고 있으며, 그룹 내 수소 밸류체인과 연계해 '그린철강 생태계'를 구축하는 중이다. 특히 현대차의 수소연료전지 기술과 연동해 철강 공정의 탈탄소화를 가속화할 방침이다.

다만 기술 상용화까지는 갈 길이 멀다. 막대한 투자비와 전력비 부담이 수반되고, 상업 규모의 공정으로 확장하기 위해선 정부 지원 및 제도 개선이 필수다. 업계에서는 "전동차·배터리 중심으로 정부의 그린 인센티브가 집중돼 있어, 철강산업 전환을 위한 별도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현대제철 자동차용 강판 (사진=현대제철)
현대제철 자동차용 강판 (사진=현대제철)

현대제철은 '철강 4.0' 전략도 병행 중이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IoT를 접목한 스마트팩토리 전환을 통해 품질 경쟁력을 끌어올리고, 생산 효율을 극대화하려는 시도다. 당진제철소에 도입된 AI 품질예측 시스템은 압연 과정의 미세한 온도·압력 변화까지 감지해 불량률을 30% 이상 줄였다.

또한 공정·물류·설비를 통합 관리하는 스마트통합센터(SMC)를 중심으로 실시간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을 강화하고 있다. 현대제철은 "철강업은 더 이상 전통적인 '중후장대 산업'이 아니라, 첨단 기술이 결합된 디지털 제조업"이라며 "스마트 제조 역량이 향후 수익성 격차를 좌우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재무구조 개선도 병행된다. 현대제철은 비핵심 자산 매각과 투자 구조조정을 통해 현금 흐름을 확보하고 있다. 부실 계열사였던 현대비앤지스틸 지분 매각, 해운·물류 자회사 구조조정 등이 그 일환이다. 아울러 당진제철소 중심으로 공정 효율화를 추진해 연간 수천억원 규모의 비용 절감 효과를 노리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포스코가 추진 중인 '고부가형 철강 포트폴리오' 전략을 벤치마킹하며, 자동차·조선용 강재의 맞춤형 기술개발을 강화하는 중이다. 현대차·기아의 전동화 확대에 발맞춰 초고장력 강판, 알루미늄 대체재 대응 신소재 등 차세대 경량화 솔루션도 속도를 내고 있다.

◇ "생존 넘어 재도약"···다시 뛰는 현대제철 = 현대제철은 과거 '철강 한류'를 이끌던 주역이었지만, 이제는 생존 경쟁의 한복판에 서 있다. 하지만 단순히 위기를 관리하는 데 머물지 않고, 철강 본연의 경쟁력과 신산업 연계를 통한 '재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당진제철소의 스마트 전환, 수소환원제철 실증, 그룹 내 순환자원 생태계 구축 등은 모두 그린·디지털 전환을 향한 초석이다. 철강산업의 '다시 뛰는' 시대가 도래하려면, 현대제철이 기술 혁신과 경영 효율화를 동시에 달성해 글로벌 경쟁력을 되찾는 것이 관건이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철강산업이 구조적 변곡점에 선 만큼, 단기 실적보다 중장기 경쟁력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며 "그룹 내·외부 협력을 통해 철강의 새로운 성장 공식을 만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파이낸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