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서종열 기자] "세계 4위 조선그룹에서 법정관리까지."
2000년대 한국 경제사에서 'STX그룹'은 화려한 영광과 쓰라린 몰락을 동시에 보여줬다. 등장 이후 공격적인 인수합병을 통해 10대그룹까지 진입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단 10년만에 유동성위기를 겪다 그룹이 공중분해 됐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 있던 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의 그림자가 다시 조선업계에 드리워지고 있다. 신생 사모펀드(PEF) 디오션자산운용이 SK오션플랜트 인수를 추진하면서, 과거 STX 전성기를 이끌었던 '강덕수 사단'이 속속 합류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는 이번 움직임을 단순한 M&A 거래로 보지 않는다. "STX 2막의 서막이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 '글로벌 톱4'까지 올랐던 STX 신화 = 강덕수 전 회장은 1990년대 말 조선업 구조조정 바람 속에서 STX그룹을 일약 대기업 반열에 올려놓았다. 불과 10여 년 만에 STX조선해양, STX팬오션, STX에너지, STX엔진 등 사업을 확장하며 매출 24조원대 그룹을 일궈냈다. 조선·해운·에너지·기계까지 아우르는 종합 중후장대 기업으로 성장, 세계 조선업계 4위에 오르기도 했다.
강 전 회장의 경영 스타일은 공격적 M&A였다. 2001년 한라중공업(현 STX조선해양) 인수를 시작으로, 프랑스 조선사 생나자르를 사들이며 글로벌 조선업계에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특히 2007년에는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에 뛰어들어 막강한 자금 동원력과 결단력을 보여줬다.
그러나 무리한 확장이 화근이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해운·조선 시장이 급랭하면서 그룹은 유동성 위기에 직면했다. 2013년 STX팬오션이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그룹 지주사 STX조선해양도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그렇게 'STX 신화'는 순식간에 '몰락'했다.
◇ SK오션플랜트, 'STX 인연'으로 다시 만나다 = 이번 인수전이 주목받는 이유는 SK오션플랜트와 STX 사이의 끈끈한 연관성 때문이다. SK오션플랜트는 삼강엠앤티가 모태다. 삼강엠앤티는 2019년 STX조선해양의 방산 부문을 인수하면서 특수선 건조 역량을 확보했다. 이로써 해군 고속함, 차세대 상륙함 등 군수선 분야에서 입지를 다졌고, 이후 SK그룹 편입으로 해상풍력 하부구조물 시장까지 영역을 넓혔다.
SK오션플랜트가 보유한 일부 야드(조선소 부지) 역시 과거 STX의 자산이었다. 조선·해양플랜트 설계 담당 서영선 임원, 재무지원본부장 이희택 등 현 경영진 중 상당수가 STX 출신이라는 점도 'STX DNA'가 잔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디오션의 인수는 단순한 자산 매입이 아니라 STX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복원 프로젝트 성격이 강하다는 평가가 조선업계에서 나오는 이유다.
◇ '강덕수 사단', 디오션으로 재결집 = SK오션플랜트 인수주체로 나선 디오션자산운용도 '강덕수 사단'으로 분류된다. 디오션은 지난해 3월 설립된 신생 PEF지만, 임원진을 살펴보면 STX그룹 인사들이 속속 포진해있다.
정중수 대표이사는 과거 STX 재무관리실장으로 근무하며 STX그룹의 재무 전략을 총괄했던 핵심 인물이다. 이호남 PE 대표 역시 STX가 하이닉스 인수를 추진하던 시절 실무를 맡았던 인물로, 공격적 M&A 경험을 풍부하게 쌓았다.
이사회에는 최임엽 전 STX엔진 대표, 박주선 에스유엠글로벌 이사가 합류했다. 모두 과거 STX그룹 주요 계열사를 이끌었던 경영진 출신이다.
금융권에서는 "STX의 재건을 꿈꾸는 구 인맥이 새로운 껍질(디오션)을 쓰고 돌아온 셈"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 STX그룹의 부활 신호탄 될까 = 금융권 및 조선업계는 디오션의 SK오션플랜트 인수가 'STX그룹의 부활 신호탄'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디오션의 자금력과 시장 상황이다. SK오션플랜트는 해상풍력 하부구조물 분야의 선두주자지만, 글로벌 풍력 시장 자체가 최근 투자 위축과 비용 부담으로 성장이 더뎌지고 있다. 조선·플랜트 분야 역시 원가 부담과 프로젝트 리스크가 상존한다. 이에 따라 디오션이 과거 STX그룹처럼 '확장 일변도'가 아닌, 안정적 사업 체질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선업계 한 관계자는 "디오션의 인수가 성사된다면 STX 출신 경영진이 다시 조선업계 전면에 등장하는 의미 있는 사건이 될 것"이라며 "이번 도전이 '부활의 신호탄'이 될지, 또 다른 무리한 베팅이 될지는 앞으로의 경영 전략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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