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이세인 기자] AI 거품론이 다시 부각되며 미국 AI·빅테크 기업의 주가가 조정 받고 있음에도 국내 투자자들의 해외주식 매수세는 오히려 더 뚜렷해지고 있다.
이달 들어 서학개미의 순매수 상위권에는 메타플랫폼·엔비디아 등 주요 AI 대표주는 물론, 관련 지수를 2~3배로 추종하는 레버리지 ETF까지 대거 포함됐다. 약세 구간을 '저가 매수'로 판단하는 투자 심리가 힘을 얻은 모습이다.
19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해 3분기 말 국내 투자자의 외화주식 보관금액은 1660억1400만달러(약 243조원)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약 150조원) 대비 60% 이상, 전 분기 1360억3100만달러(약 199조원) 대비 22% 넘게 증가한 수치다.
최근 AI·기술주가 일부 조정을 받았지만 국내 투자자들은 10월에만 해외주식을 68억1300만달러(9조9701억원) 순매수했고, 11월에도 5조원 넘게 매수를 이어가고 있다. 단기 변동성에도 해외 비중 확대 흐름이 중장기 추세로 자리 잡고 있다는 평가다.
순매수 상위 종목 구성도 이러한 흐름을 반영한다. 이달 들어 메타플랫폼과 엔비디아는 각각 5억5145만달러(약 8000억원), 5억1985만달러(약 7600억원) 순매수로 전체 해외주식 1·2위로 올랐고, 팔란티어, 아이온큐, 알파벳 A 등이 모두 10권 안에 포함되며 기술주 중심의 매수세가 이어졌다. 이는 조정 국면에서도 AI 인프라·데이터 처리 기업의 성장성을 신뢰하는 투자 심리가 여전함을 보여준다.
여기에 환율 변동도 영향을 미쳤다. 원·달러 환율이 크게 움직이는 국면에서 달러 자산을 일정 부분 보유하려는 수요가 늘었고, 해외 기술주가 변동성 대비 실적이 안정적이라는 인식도 매수세를 자극했다.
한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국내 투자자들은 기술주 약세를 추세 하락이 아닌 일시적 조정으로 보고 있다"며 "실적 개선 흐름이 유지되는 업종일수록 가격이 눌릴 때 적극적으로 비중을 늘리는 움직임이 뚜렷해졌다"고 말했다.
해외 투자 비중이 커지는 또 다른 배경으로는 미국의 ETF 시장이 제공하는 다양한 투자 선택지가 꼽힌다.
국내에서는 ETF에 AI·클라우드·데이터센터·반도체처럼 세분화된 산업을 한 번에 담기 어렵지만, 미국 시장은 관련 테마 ETF와 2~3배 레버리지 ETF 등 상품군이 훨씬 다양하다. 실제 미국에는 4300개가 넘는 ETF가 상장돼 있어 국내(약 1000개)보다 접근 가능한 테마가 많다. 국내에서 채우기 어려운 글로벌 테마를 해외 투자로 보완하는 흐름이 이어지는 이유다.
특히 레버리지 ETF에 대한 매수세가 두드러진다. 메타플랫폼 주가를 두 배로 추종하는 ETF에는 이달 들어 2억7080만달러(약 4000억원), 미국 반도체 지수를 세 배로 따라가는 ETF에도 2억100만달러(약 3000억원)가 순매수되며 레버리지 상품이 자금 유입 상단을 형성했다. 변동성 구간에서도 적은 자금으로 테마 노출을 확대할 수 있다는 점이 개인투자자의 선택을 끌어낸 것으로 풀이된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레버리지 ETF는 적은 자금으로도 시장 움직임을 보다 크게 반영할 수 있어 자금 여력이 제한된 개인투자자에게 매력적으로 보인다"며 "특히 빅테크 중심의 변동성 구간에서는 이 같은 선호가 더 뚜렷해진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