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지난 5년간 전동화 전환과 공급망 재편, 지정학 변화가 뒤얽힌 격변기를 기술과 품질 중심 혁신으로 돌파했다. 불확실한 환경 속에서도 지역별 맞춤형 전략을 세우며 그룹을 현지화된 글로벌 기업으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그 결과 글로벌 판매 3위를 공고히하며 시장 질서를 새롭게 써 내려가고 있다. 위기와 변화의 한복판에서 길을 개척해온 그의 행보를 통해 그룹의 내일을 들여다본다. /편집자주
[서울파이낸스 문영재 기자] 올해 3월 현대차그룹은 미국 조지아주에 신공장 메타플랜트 아메리카를 세웠다. 이곳은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과 기아 조지아 공장에 이은 그룹의 미국 내 세 번째 공장으로, 해외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의 성장 동력을 이끌 전략적 생산 거점으로 평가된다. 정의선 회장은 메타플랜트 아메리카 준공식에서 "이 생산 거점은 단순한 제조 시설이 아니라 그룹의 혁신 역량과 지속 가능성을 상징한다"며 "현대차그룹에 미국은 가장 중요한 파트너이자 미래 모빌리티 산업의 중심 무대인 만큼, 현지 생산과 기술 혁신으로 장기적 성장을 이뤄내겠다"고 밝혔다.
현재 그룹은 미국 행정부의 관세 정책으로 전례 없는 도전에 직면해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자국 산업 보호를 명분으로 외국산 자동차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고 있어서다. 문제는 한국산 자동차에 부과하는 세율이 경쟁국인 일본·유럽(15%) 대비 10%포인트 높은 25%로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미 양국은 지난 8월 협의를 통해 관세를 15%로 낮추기로 잠정 합의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아직 세부 이견이 조율되지 않았다"며 행정명령 발효를 미루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는 이러한 환경이 실적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며 3분기 현대차·기아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20%가량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나이스신용평가는 25% 관세가 유지될 경우, 현대차·기아가 연간 부담해야 할 관세 비용이 8조원을 넘어설 수 있다고 추정했다.
정의선 회장은 이 같은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정부를 도와 협상을 물밑에서 지원하는 한편, 미국 내 생산 확대에 집중하고 있다. 현지 생산 차량은 관세 대상에서 제외되는 만큼, 장기적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전략이다. 메타플랜트 아메리카는 이 전략의 핵심축으로 꼽힌다. 첨단 제조 플랫폼을 도입해 프레스, 차체, 도장 등 주요 공정을 고도화했으며, 자율주행운반로봇과 자동적재시스템을 연계한 자동화 물류체계를 구축하며 생산 효율성을 높였다. 공장 인근에 차량 핵심 부품 개발 및 생산을 담당하는 현대모비스, 현대트랜시스, 현대제철 등 주요 계열사가 자리한 점도 특징이다. 이는 빠르고 효율적인 부품 조달은 물론, 시장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현지 업계에서는 정의선 회장의 전략적 행보가 그룹이 미국 내 통상 정책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는 체질을 갖추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한다. 뉴욕타임스는 "앞으로도 미국 시장은 현대차그룹의 가장 큰 시장이자 기회"라고 전했다.
정의선 회장은 통상 정책 변화에 대응하는 동시에 로보틱스 등 미래 신사업 육성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그룹은 로봇 계열사 보스턴다이내믹스의 AI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를 연내 메타플랜트 아메리카에 투입해 기술 실증을 진행할 계획이다. 이 로봇은 초속 2.5미터(m) 보행, 시속 9킬로미터(km) 달리기, 백플립 등 고난도 동작을 구현한다. 손가락 관절로 섬세한 파지도 가능해, 로봇 제어 기술의 정점으로 평가받는다. 보스턴다이나믹스 측은 "AI 및 하드웨어 역량을 강화해 생각하고 적응하며 행동하는 로봇을 구현하겠다"며 "상용화 목표 시점은 2028년"이라고 설명했다.
양산을 위해 미국 현지에 약 7조원을 투자, 로봇 전용 공장도 짓는다. 한 증권가 관계자는 "이번 투자는 개념 검증 단계를 넘어 양산 전 단계로 진입했음을 의미한다"며 “정의선 회장이 구상하는 로보틱스 사업이 본궤도에 오른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와 관련, 현대차그룹은 최근 미국 뉴욕에서 열린 투자자 설명회에서 미국 현지 투자액을 기존 2025~2028년 11조6000억원에서 15조3000억원으로 3조7000억원 증액한다고 밝혔다. 현지 생산 확대와 로보틱스 생태계 구축을 병행하기 위해서다. 그룹은 "대외 불확실성이 크지만, 현지 맞춤형 전략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미래 모빌리티 기업으로의 체질 전환을 가속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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