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이세인 기자] 국내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이 단기간 테마 추종을 넘어 장기적 자산관리 수단으로 빠르게 변모하고 있다. AI·이차전지·방산 같은 테마형 ETF로의 자금 유입과 동시에 최근에는 고배당·채권형·글로벌 분산 ETF로 투자 스펙트럼이 확산되는 모습이다.
이 같은 변화의 배경에는 풍부한 대기자금과 제도적 요인이 자리한다.
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24일 투자자예탁금은 75조원을 넘어서며, 2022년 1월 이후 3년 8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최근 코스피가 사상 최고점을 기록하자 투자 기회를 엿보는 자금이 증시로 몰려든 것이다.
다만, 고금리 장기화와 경기 불확실성 등 영향으로 고배당·채권형 ETF 등 안정 지향 상품으로 무게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특히 연금저축·퇴직연금 계좌를 통한 ETF 투자가 확대되면서 중장년층과 베이비붐 세대의 안정형 자금이 꾸준히 유입되고 있다.
IBK투자증권에 따르면 올해 국내 고배당 ETF에만 2조2500억원(9월 21일 기준)이 몰렸으며, 금과 채권 ETF 역시 꾸준한 자금 유입세를 보이고 있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투자자들이 변동성을 줄이기 위해 배당·채권형, 글로벌 분산 ETF로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며 "특히 연금계좌를 활용한 절세형 ETF 수요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자산운용사들의 신상품 출시도 이러한 흐름을 반영한다. 최근에는 △고배당·커버드콜 전략형 △연금계좌 특화형 △멀티에셋 혼합형 등 안정성과 장기투자에 맞춘 상품들이 잇따라 상장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한화자산운용은 'PLUS 자사주매입고배당주'ETF를 내놓았고, 키움투자자산운용은 'KIWOOM 한국고배당&미국AI테크' ETF를 출시해 안정성과 성장성을 동시에 겨냥했다. 신한자산운용은 'SOL 코리아고배당' ETF를 선보이며 배당 상품 라인업을 강화했고, 미래에셋자산운용은 'TIGER 코리아배당다우존스위클리커버드콜' ETF를 출시해 배당과 옵션 전략을 결합한 상품을 내놨다.
특히 한화자산운용의 'PLUS 고배당주' ETF는 국내 배당 ETF 가운데 처음으로 순자산 1조원을 돌파했다. 올해 초만 해도 몸집이 4500억원 수준이었는데 지난 6월 1조원을 넘어선 뒤 현재는 1조6453억원(9월 30일 기준)까지 불어나며 안정형 상품에 대한 투자 수요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실제 자금 흐름도 이를 뒷받침한다. 한시화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개인들의 국내 주식형 ETF 순매수 규모가 5300억원에 달해 6주만에 해외 주식형 ETF 순매수를 넘어섰다"며 "9월 들어 코스피가 신고가를 연이어 경신하면서 'KODEX 200'을 중심으로 매수세가 집중됐다"고 말했다. 이는 지수 상승 기대 속에서 개별 테마의 변동성을 피하고, 시장 전반을 추종할 수 있는 대표 지수형 ETF의 유동성과 분산효과를 선호한 결과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4분기에도 고배당·채권형 ETF 중심의 자금 유입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최근 자산운용사들이 잇따라 내놓는 안정형 신상품이 이러한 흐름을 뒷받침할 전망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배당은 예금 이자보다 더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고, 비교적 안정성이 유지돼 투자자들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며 "하반기 금리 인하 전망과 분리과세 추진 등 제도적 뒷받침까지 이어지면서 선호는 당분간 확대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증권업계 다른 관계자 역시 "채권·글로벌 분산형 상품까지 함께 확대되면서 국내 ETF 시장이 해외 시장과 마찬가지로 안정형과 성장형 양쪽으로 자금이 나뉘는 흐름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