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현대는 필리핀 수빅조선소에 대한 10년 장기 임대 계약을 체결하고 올해 4분기부터 본격 운영을 시작할 전망이다. 사진은 필리핀 수빅 조선소 전경 (사진=HJ중공업)
HD현대는 필리핀 수빅조선소에 대한 10년 장기 임대 계약을 체결하고 올해 4분기부터 본격 운영을 시작할 전망이다. 사진은 필리핀 수빅 조선소 전경 (사진=HJ중공업)

[서울파이낸스 김완일 기자] 국내 조선업계가 해외 거점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다중 거점·현지화’ 전략이 생존 및 지속가능성을 위한 해법으로 부상하는 까닭이다. 단순한 생산 분산을 넘어 신흥 시장 공략과 사업 다각화를 통한 경쟁력 확보로 장기 성장 기반을 다지겠다는 구상이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조선업계 빅3 중 해외 거점 확보에 가장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 곳은 HD현대이다. HD현대는 필리핀 수빅조선소에 대해 10년 장기 임대 계약을 체결하고 올해 4분기부터 본격 운영을 시작할 계획이다. 회사는 총 5억5000만달러를 투입해 연간 최대 10척의 선박을 건조하고 7000명의 인력을 채용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업계는 HD현대가 수빅 조선소를 해상풍력 플랫폼과 상선 건조를 동시에 지원하는 동남아 핵심 거점으로 탈바꿈하고 나아가 미 해군 함정 유지·보수·정비(MRO) 및 건조를 위한 기지 역할도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있다. 

필리핀 외에도 베트남에서는 두산에너빌리티의 현지 법인을 인수하며 액화천연가스(LNG) 모듈과 크레인 등 기자재 생산 능력을 확대하고, 국영 해운사 베트남해양공사(VIMC)와의 협력을 통해 선대 현대화와 기술 교류를 추진하고 있다. 인도 코친조선소와는 장기 협력 업무협약(MOU)를 체결해 설계·기술 협력과 인력 교육을 함께 진행하고 있다.

HD현대의 해외 시장 확장은 아시아에 국한되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헌팅턴 잉걸스, 에디슨 슈에스트 오프쇼어(ECO) 등과의 협력을 통해 군함과 상선 공동 건조를 추진하는 등 영역을 빠르게 넓히고 있다. 모로코, 페루 등도 잠재적 협력 거점으로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오션이 인수한 필리조선소 전경 (사진=한화오션)
한화오션이 인수한 필리조선소 전경 (사진=한화오션)

한화오션은 해양플랜트와 미국 시장 공략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인도와 브라질에 글로벌 엔지니어링 센터와 영업 법인을 신설해 액화천연가스 생산설비(FLNG)와 부유식 원유 생산·저장·하역 설비(FPSO) 등 해양 설비 수주를 노리고 있으며, 특히 브라질 국영 석유사 페트로브라스의 FPSO 입찰에 참여해 현지화 요건을 충족시키며 시장 진입을 가속화하고 있다. 싱가포르에서는 해양설비 전문업체 다이나맥을 인수해 FPSO와 FLNG 상부 구조물 제작에 특화된 생산 능력을 확보했다. 또 지난해 인수한 미국 필리조선소는 한미 조선협력 프로젝트인 '마스가'의 중요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화오션은 필리조선소를 미국 시장 진출의 교두보이자 미 함정 신조 사업을 위한 전초기지로 활용할 방침이다. 

삼성중공업은 앞선 두 조선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신중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베트남에서는 국영 석유사와 협력해 설계와 조달은 국내에서 담당하고 생산은 현지 조선소에 위탁하는 방식을 택했으며, 미국에서는 LNG 설비와 FLNG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협력 가능성을 타진하는 단계다. 적극적인 신조 거점 확대보다는 특정 프로젝트 중심의 협력에 무게를 두고 공급망 다변화를 추진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국내 조선사들이 이처럼 해외 거점을 넓히는 배경에는 여러 요인이 자리 잡고 있다. 초과 수주와 병목 현상으로 도크 가동률이 한계에 이르고 숙련 인력 부족까지 겹친 국내 생산 여건이 대표적이다. 이에 난이도가 낮고 인건비 비중이 큰 공정을 해외로 분산하고, 국내는 LNG 운반선 등 고부가가치 선종에 집중하는 전략이 확산되고 있다. 

동시에 각국 정부가 자국 내 일정 비율 이상의 생산과 조달을 요구하는 현지화 조건을 강화하고 있는 점도 해외 진출을 촉진하는 요인이다. 인도와 브라질은 조선업 육성을 위해 보조금과 금융 지원을 제공하고 있고 발주처들은 '현지 건조·현지 MRO'를 전제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는 이러한 흐름이 글로벌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것이라 기대하면서도, 리스크에 대한 경계도 놓지 않고 있다. 해외 정세 불안이나 운영 비용 증가는 물론, 국내 일자리 감소 우려가 노조 반발과 갈등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업계 전문가는 "현지화 전략이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점에는 국내 조선사들이 비슷한 상황"이라며 "해외 거점 확대와 더불어 국내에서는 친환경 선박 기술과 고부가가치 선종에서의 경쟁력을 동시에 강화해 균형적인 발전을 이뤄야 향후 한국 조선업이 지속 가능성을 갖출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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