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김완일 기자] HD현대가 필리핀 수빅 조선소에서 올해 4분기부터 선박 건조를 시작한다. 한진중공업이 2019년 파산하며 중단됐던 대형 조선소 가동이 6년 만에 재개되는 셈이다. 필리핀 정부가 이곳을 미국 해군 함정 건조 기지로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어, 향후 수빅 조선소의 역할은 단순 상선 건조를 넘어 미 해군 함정 건조 사업으로 확장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18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HD현대는 수빅 조선소에서 중대형 유조선 건조에 들어간다. 운영사인 아길라 수빅과 10년 임대차 계약을 맺고 총 5억5000만달러(약 7600억원)를 투자해 설비를 재정비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연간 최대 10척의 선박 건조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5년 내 근로자 7000명 고용 계획도 세웠다. HD현대는 수빅 조선소를 해상풍력 플랫폼 건설과 선박 건조를 지원하는 핵심 거점으로 활용한다는 구상이다.
수빅 조선소는 마닐라 북서쪽 약 110킬로미터(km) 떨어진 수빅만 경제자유구역에 위치한다. 2006년 한진중공업이 미 해군 기지 부지 300헥타르(ha)를 매입해 초대형 조선소로 조성했으나 2019년 회생 절차에 들어가며 운영이 중단됐다. 이후 2022년 미국계 사모펀드 서버러스 프론티어가 인수했으며, 현재 HD현대는 전체 부지 가운데 200ha를 임차해 활용하고 있다.
필리핀 정부는 미국 정부에 수빅 조선소를 미 해군 건조 기지로 개발하자고 제안한 상태다. 호세 마누엘 로물데스 주미 필리핀 대사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조선 산업 확대에 관심이 크다"며 "수빅 조선소가 미 해군 함정 사업의 일부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국내 조선업계 역시 수빅 조선소를 미 해군 함정 유지·보수·정비(MRO) 사업에 활용하는 가능성에 주목 중이다. 다만 해외 조선소에서 미 해군 함정을 건조할 수 없도록 한 '반스-톨레프슨 수정법'이 걸림돌이다. 그러나 최근 미국 의회에서 한국 등 동맹국 조선소의 참여를 허용하는 '미 해군 준비태세 보장법'이 발의되면서 법 개정 논의가 속도를 내고 있다.
한승한 SK증권 연구원은 "HD현대의 투자와 필리핀 정부 의지, 미 해군의 수요가 맞물리면 수빅 조선소가 단순 상선 건조를 넘어 MRO를 포함한 미 해군 함정 사업의 거점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