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오세정 기자] 5년 만에 미국 출장에 나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바이오 기업 모더나와 세계 1위 이동통신 기업 버라이즌의 최고경영진(CEO)을 잇따라 만나 협력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바이오와 차세대 이동통신은 이 부회장이 미래 먹거리 사업으로 삼고 집중 육성하는 분야다. 바이오는 '제 2의 반도체'로 육성하고, 통신 분야는 세계 최초 5G 상용화 달성한 리더십을 지속 강화한다는 구상이다.
업계에서는 약 열흘간의 이번 미국 출장을 통해 이 부회장이 인공지능(AI)과 바이오, 차세대 이동통신(6G 등) 등 자신의 신사업 구상을 구체화하고 미래 경영 전략을 구축할 것으로 예상한다. 특히 경영 복귀 후 첫 해외 출장인 만큼 그동안 사법 리스크 등으로 단절됐던 글로벌 네트워크를 복원하고 미래 사업 발굴을 위한 글로벌 행보에 시동을 걸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 '제2 반도체 신화' 창출 구상 위해 모더나 찾아
18일 삼성전자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서 누바 아페얀 모더나 공동 설립자 겸 이사회 의장과 만났다.
아페얀 의장은 바이오 제약 관련 투자회사인 플래그십 파이어니어링을 통해 혁신적 바이오텍을 발굴·육성해 온 업계 리더다. 그는 2009년 모더나를 공동 설립했으며, 스테판 방셀 모더나 CEO도 아페얀 회장이 직접 영입했다.
이날 회동은 아페얀 의장이 설립한 바이오 투자회사 플래그십 파이어니어링 본사에서 진행됐다. 두 사람은 최근 진행된 양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공조와 향후의 추가 협력 방안에 대해 의견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지난 5월 모더나와 메신저 리보핵산(mRNA) 백신 위탁생산 계약을 체결하고 8월부터 생산에 나섰다. 지난달부터는 삼성이 생산한 백신이 국내에 출하돼 전국에서 접종이 이뤄지고 있다.
이 부회장은 이번 아페얀 의장과 회동을 계기로 글로벌 바이오 업체들과의 접촉면을 더욱 넓힐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8월 이 부회장 가석방 출소 11일 만에 삼성은 향후 3년간 240조원을 투자하는 내용의 '코로나19 이후 미래준비' 계획을 내놓고 바이오산업에서 '제2의 반도체 신화'를 창출하겠다는 구상을 밝힌 바 있다.
당시 삼성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바이오 산업은 '고부가 지식산업'을 넘어 '국가 안보산업'으로 변모하는 양상"이라며 "이른바 '바이오 주권' 확보가 중요한 국가적 과제로 떠올랐고, 자국 내 바이오 생산시설 존재 여부가 핵심 경쟁력으로 부상했다"고 말했다.
삼성은 바이오 사업을 시작한 지 9년 만에 바이오 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공장 3개를 완공했으며, 현재 건설 중인 4공장이 완공되면 이 분야 세계 1위에 올라서게 된다. 삼성은 '공격적인 투자' 기조를 이어나가며 5공장과 6공장 건설을 통해 글로벌 바이오 의약품 생산 허브로서 역할 확보와 함께 주도권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또 바이오 의약품 외에 백신, 세포·유전자 치료제 등 차세대 치료제 CDMO에도 진출할 예정이다. 특히 바이오시밀러 분야에서도 파이프라인 확대 및 고도화에 투자할 계획이다. 이 밖에 삼성은 △전문인력 양성 △원부자재 국산화 △중소 바이오텍 기술지원 등을 통해 국내 바이오산업 생태계·클러스터 활성화에도 나서기로 했다.
◇ '5G 동지' 버라이즌과 차세대 이동통신 협력 논의
이 부회장은 17일(현지시간)에는 버라이즌 미국 뉴저지주 본사를 방문해 한스 베스트베리 최고경영자(CEO) 등 경영진을 만나 차세대 이동통신 분야의 협력 방안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미국 기업인 버라이즌은 세계 최대 이동통신 사업자다.
두 사람은 이번 만남에서 차세대 이동통신 분야의 협력 방안에 대해 의견을 나눈 것으로 전해졌다. 이 부회장과 베스트베리 CEO는 지난 2010년 스페인에서 열린 '모바일월드콩그레스'에 나란히 참석한 것을 계기로 10년 이상 친분을 이어 온 가까운 사이로 알려졌다.
지난해 삼성전자는 버라이즌과 한국 통신장비 산업 전체를 통틀어 역대 최대 단일 수출 계약인 약 7조9000억원 규모 5G 이동통신 장비 공급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삼성전자는 버라이즌에 5G 이동통신 장비를 포함한 네트워크 솔루션을 지속 공급하기로 했다.
두 회사는 지난 2018년 세계 최초로 5G 홈(5G FWA, Fixed Wireless Access) 서비스를 상용화한 데 이어 2019년 5G 이동통신 서비스를 성공적으로 상용화하는 등 지속해서 협력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회담을 계기로 두 회사가 비욘드(Beyond) 5G, 6G 등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인프라'인 차세대 통신 분야에서도 협력을 확대할 것으로 전망한다.
차세대 통신 분야 역시 이 부회장이 미래 먹거리 사업으로 점찍은 분야다. 그동안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가 5G 시대를 선도할 수 있는 역량을 빠르게 키울 수 있도록 전담 조직 구성, 연구개발 지원, 마케팅까지 전 영역을 진두지휘하며 직접 챙겼다. 또 버라이즌을 비롯한 글로벌 ICT 업계 리더들과 활발히 교류하며 5G 네트워크 통신장비 영업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했다. 삼성전자는 이에 힘입어 세계 최초로 5G 상용화를 달성하는 등 차세대 통신기술 선행연구를 주도하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는 차세대통신연구센터를 신설하고 6G 백서를 공개하는 등 6G 기술 선점을 위한 연구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올해 6월 미국 샌타바버라 캘리포니아 주립대와 6G 테라헤르츠(THz) 대역에서 통신 시스템 시연에 성공, 상용화 실현 가능성을 입증했다.
최근에는 미국 연구법인 삼성리서치아메리카(SRA)가 최근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에 6G 전파 사용 승인 허가를 받고 6G 실험에 본격 착수한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이 실험을 통해 6G 스마트폰으로 기지국과 중장거리 통신이 가능한지 확인한다는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 소재 삼성전자 아메리카 실험실 일대에서 133∼148㎓ 대역의 전파를 사용할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는 향후 소프트웨어 역량 강화와 핵심 인력 확보, 연구·개발(R&D) 투자 확대 등 전방위 경쟁력을 강화해 신사업 개척과 제품 포트폴리오 확장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 경영 복귀 후 첫 해외 출장, 글로벌 경영 재시동
이 부회장의 이번 미국 출장은 5년여 만이다. 이 부회장은 지난 14일 오전 서울 강서구 김포국제공항에서 출국하며 "여러 (사업) 파트너를 만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부회장은 가석방 이후 매주 목요일에 열리는 삼성물산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부정 회계 의혹 관련 재판에 참석하고 있지만 이번 주에는 대학수학능력시험(18일) 때문에 재판이 열리지 않아 해외 출장이 가능했다.
경영 복귀 후 첫 해외 출장길에 오른 이 부회장이 이번 출장을 계기로 그동안 다듬어 온 구상을 구체화하기 위한 글로벌 행보를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이 부회장은 14일 오전(현지시간) 방미 첫 일정으로 캐나다 토론토에 들려 인공지능(AI) 연구센터를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AI는 삼성이 '4차 산업혁명'을 이끌 핵심 IT 주도권 확보를 위해 기술 역량을 확대하고 있는 분야로 꼽힌다.
이 부회장은 토론토에서 저명한 컴퓨터 비전 전문가이자 토론토 대학교 컴퓨터 사이언스 학장을 역임한 스벤 디킨슨(Sven Dickinson) 토론토 AI 센터 센터장, 앨런 젭슨(Allen Jepson) 토론토 AI 센터 부사장 겸 수석과학자 등으로부터 연구 개발 현황을 보고 받고, 임직원들을 격려 할 것으로 전해졌다.
정확한 출장 기간과 세부 일정이 공개되지 않았지만 이 부회장이 이달 25일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부당합병 관련 재판에 참석해야 하는 만큼 10여일간 미국에 머물다 24일께 귀국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