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냉혹한 현실"...파운드리 투자로 '뉴삼성' 본격 시동
이재용 "냉혹한 현실"...파운드리 투자로 '뉴삼성' 본격 시동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1일간 미국 출장 마무리···"오래된 비즈니스 파트너들 만났다"
'시스템 반도체 비전 2030' 달성 가속도···신규 M&A도 탄력 전망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미국 출장을 마친 뒤 24일 오후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를 통해 귀국해 건물을 나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미국 출장을 마친 뒤 24일 오후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를 통해 귀국해 건물을 나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울파이낸스 오세정 기자] "추격이나 뒤따라오는 기업과 '격차 벌리기'만으로는 거대한 전환기를 헤쳐나갈 수 없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미래를 개척하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70억 달러(20조원)의 대규모 미국 투자를 확정 지으며 5년 만에 방미 출장 일정을 마무리했다. 이로써 기술 '초격차'를 뛰어넘어 "아무도 가보지 않은 미래를 개척하겠다"는 이 부회장의 '뉴삼성' 비전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기존 메모리에 집중된 사업 구조를 탈피해 수요가 폭발하는 파운드리 시장에서 본격적으로 입지를 넓히고 미래 먹거리 사업 발굴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미국 현지 출장에서 분초단위로 바삐 움직이며 글로벌 네트워크를 복원한 이 부회장이 향후 파운드리 생태계를 확장하고 신사업 구상을 구체화하기 위해 보여줄 행보에도 관심이 쏠린다. 

24일 삼성전자에 따르면 미국 내 신규 파운드리 반도체 생산라인 건설 부지로 텍사스주 테일러시를 최종 선정했다.

지난 5월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 행사에서 미국에 신규 파운드리 공장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지 6개월 만의 결정이다. 또 지난 8월13일 이 부회장의 가석방 출소 이후 103일 만이기도 하다. 여러 후보군을 두고 속도를 내지 못하던 최종 입지 선정이 이 부회장의 이번 출장을 계기로 매듭 지어졌다는 평가다.

삼성전자가 이번에 새 공장 부지를 확정하면서 한동안 멈춰 섰던 대규모 투자·인수합병(M&A)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14일 출국해 10박11일간의 미국·캐나다 일정을 마친 이 부회장은 이날 오후 4시께 대한항공 전세기 편으로 김포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이 부회장 이번 출장의 성과와 소회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오래된 비즈니스 파트너들을 봤다"며 "회포를 풀고 일에 대해 얘기를 해 참 좋은 출장이었다"고 답했다.

그는 향후 계획에 대해서는 "투자도 투자이지만 이번에 현장의 목소리들, 시장의 냉혹한 현실을 제가 직접 보고 오게 됐다"며 "마음이 무겁다. 나머지 얘기는 다음 기회에 말하겠다"고만 언급했다.

이 부회장은 이날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하루 뒤인 25일에는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합병 혐의 재판에 참석할 예정이다.

지난 22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마운틴뷰 구글 본사에서 만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과 순다르 피차이(Sundar Pichai) 구글 CEO(오른쪽)의 모습 (사진=삼성전자)
지난 22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마운틴뷰 구글 본사에서 만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과 순다르 피차이(Sundar Pichai) 구글 CEO(오른쪽)의 모습 (사진=삼성전자)

◇ 美서 정·재계 인사 두루 만나···파운드리 생태계 강화

이 부회장은 최종 입지 선정에 앞서 지난 18~19일 워싱턴D.C에서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과 브라이언 디스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 등 백악관 핵심 참모와 연방의회 의원들을 잇따라 만났다. 이들은 글로벌 공급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삼성의 역할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이 부회장은 이 자리에서 반도체 산업에 대한 미 행정부 및 입법부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도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이 그동안 시스템반도체 육성을 직접 이끌어온 만큼 이번에도 직접 나선 것이다. 테일러시에 들어서는 신규 파운드리 라인은 내년 완공 예정인 평택 3라인과 함께 삼성전자 '시스템 반도체 비전 2030' 달성을 위한 핵심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은 2019년 '시스템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하면서 "메모리에 이어서 파운드리를 포함한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도 확실히 1등을 하겠다"며 "굳은 의지와 열정, 그리고 끈기를 갖고 도전해서 꼭 해내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를 위해 삼성전자는 2030년까지 시스템반도체 생산 및 연구개발(R&D) 분야에 171조원을 투자해 핵심 역량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삼성전자의 비메모리 부문 사업 영업이익은 이미 3분기에 9070억여원을 기록하며 1조원대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영업이익률도 두 자릿수의 준수한 실적으로 기존 메모리 위주 반도체 사업을 지탱하는 또다른 축으로 성장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이번 미국 투자를 통해 전략적 거점을 확보하면서 향후 현지 시장 수요를 선점하는 데 유리하게 작동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는 미국 현지 파트너사들과 파운드리 생태계를 강화함으로써 선두경쟁에서 TSMC를 바짝 쫒는다는 전략이다. 

앞서 삼성전자는 TSMC보다 선제적으로 내년 상반기 3나노 파운드리 양산 계획을 밝히며 선두경쟁을 본격화할 것임을 예고했다. 그러면서 3나노에도 기존 핀펫 공정을 유지하는 TSMC와 달리 독자적인 게이트올어라운드(GAA) 기술 기반 공정 전환 등 차별화에 나섰다.

이번 미국 투자 발표 이전 이 부회장이 약 열흘간의 미국 방문에서 동부와 서부를 횡단하며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버라이즌, 아마존 등 현지 파트너와 미국 백악관 및 연방 정부 의원들까지 두루 교섭한 것도 파운드리 생태계 확장 전략의 토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 구글의 경우 올 연말 생산 예정인 스마트폰 '픽셀 시리즈 6'에 탑재할 자체 설계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칩에 대한 파운드리 업체 선정 과정을 앞두고 있다. 삼성전자가 유력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이 부회장과 구글 CEO의 만남이 향후 파운드리 협력 단계로 한층 공고해질 지 관심을 모은다. 

특히 '시스템반도체 비전 2030'을 선언하며 메모리에 이어 시스템반도체에서도 글로벌 리더십을 확보한다는 목표를 세운 삼성전자로서는 이른바 '안드로이드 동맹'으로 불리는 구글이 '우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가 나온다.

아울러 삼성전자는 경제 안보를 강조하는 바이든 행정부의 '핵심 플레이어'로서 미국 내 입지가 한층 더 공고해질 전망이다. 미중 간 무역전쟁에 따라 미국의 자국 중심 반도체 공급망 재편 기조 속에서 삼성에 건 기대를 충족하는 투자 결정으로 현지 사업 재편에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지난 20일(현지시간) 미국 위싱턴주 마이크로소프트 본사에서 만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오른쪽)과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왼쪽)의 모습. (사진=삼성전자)
지난 20일(현지시간) 미국 위싱턴주 마이크로소프트 본사에서 만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오른쪽)과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왼쪽)의 모습. (사진=삼성전자)

◇ 240조 투자 첫 단추···AI·5G·전장사업 등 신사업 검토

이번 미국 투자 결정은 삼성전자가 이 부회장 가석방 직후 발표한 3년 동안 240조원 투자 계획의 첫 단추라는 평가도 나온다. 삼성전자는 지난 8월 이 부회장 가석방 출소 이후 11일 만에 240조원 투자 계획을 발표하면서 '메모리 절대우위 유지, 시스템반도체 세계 1위 도약 기반 마련'이라는 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

이번 미국 투자 이후 삼성이 평택을 중심으로 대규모 투자와 함께 M&A에도 속도를 낼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삼성전자는 앞서 순현금 100조원 이상을 바탕으로 3년 이내에 '의미 있는' 인수합병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혀 대규모 M&A를 예고한 바 있다. 그러나 삼성전자의 대규모 M&A는 2016년 11월 미국 자동차 전장업체 하만을 인수한 이후 사실상 맥이 끊긴 상태다.

이 부회장은 이번 미국 출장길에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반도체와 세트 연구소인 DS미주총괄과 삼성리서치아메리카를 잇따라 방문하고 삼성 연구원들과 만나 "추격이나 뒤따라오는 기업과 '격차 벌리기'만으로는 거대한 전환기를 헤쳐나갈 수 없다"면서 "힘들고 고통스럽겠지만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 아무도 가보지 않은 미래를 개척해 새로운 삼성을 만들어가자"고 당부했다.

이는 '글로벌 삼성'을 가능하게 했던 초격차에서 더 나아가 아무도 가보지 않은 미래를 개척하는 기업으로 다시 태어나자는 의미로, 뉴삼성에 대한 의지를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뉴삼성을 실현하기 위해 시스템 반도체를 비롯한 인공지능(AI), 바이오, 6G 등 차세대 먹거리에 대한 더욱 과감한 투자가 이뤄질 것이란 분석이다. 검토 분야는 AI, 5세대 이동통신(5G), 전장 사업 등 다양하다.

이 부회장의 이번 출장에서도 그의 신사업 구상을 엿볼 수 있었다. 그는 이 기간 바이오와 5G, AI 등 삼성의 미래 성장 사업을 집중적으로 챙기며 신사업 구상을 구체화한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은 지난 16~17일(현지시간) 매사추세츠주에서 누바 아페얀 모더나 공동 설립자 겸 이사회 의장, 뉴저지주에서 버라이즌 한스 베스트베리 CEO와 잇따라 만나 바이오, 차세대 이동통신 분야에서의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20일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 아마존 경영진, 22일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 등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 기업 경영진과 잇따라 만나 반도체와 모바일은 물론 가상현실(VR) 및 증강현실(AR), 메타버스, 인공지능(AI) 등 차세대 기술에 대한 협력과 소프트웨어 생태계 확장 방안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삼성이 새 성장동력을 얻으려면 외부 수혈이 중요하며 순현금 투자 자산도 충분하다"며 "파운드리 사업 보강을 위한 파운드리사 인수가 예상되며 NXP, 글로벌파운드리 등이 후보군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이 시간 주요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