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문영재 기자] 미국으로 수출되는 한국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기로 한 한미 간 합의가 이행되지 않은 채 2주째 표류하고 있다. 양국이 명문화 절차인 조인트팩트시트(JFS·공동설명자료)를 아직 공개하지 않으면서 국내 완성차 업계 손실도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모양새다. 핵추진 잠수함 건조 승인 등 안보 현안이 얽히며 당초 정상회담 직후 발효될 것으로 예상됐던 합의 절차가 지연되고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완성차 업계는 지난달 29일 경주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이후에도 여전히 25%의 대미 관세를 부담하고 있다. 당시 대통령실은 회담 직후 "양국 간 세부 합의가 거의 마무리됐으며, 팩트시트는 안보 분야와 함께 2~3일 내 공개될 것"이라고 밝혔지만, 보름 가까이 지난 현재까지도 발표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현대차·기아를 비롯해 한국지엠 등 국내 완성차 제조사들은 대미 수출분에 대해 매일 수백억원대의 관세를 부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기아의 경우 3분기 관세로 인한 손실만 3조552억원에 달했고 영업이익도 전년 동기 대비 각각 29.2%, 49.2%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9월 말 미국 정부의 전기차 보조금 지급 중단이 겹치며, 양사의 지난달 현지 전기차 판매 역시 61.6% 급감했다. 업계는 관세 인하 지연이 장기화되면 이중 악재가 실적을 더 짓누를 것으로 우려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당장 관세가 15%로 낮아진다 해도 이미 납부된 비용과 이로 인한 재무적 부담은 연말까지 이어질 것"이라며 "전기차 보조금 지급 중단까지 맞물리며 관세 인하가 더욱 절실히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관세 인하 시점을 이달 1일로 소급 적용하는 방안을 두고 미국 측과 협의를 이어가고 있다. 다만 핵추진 잠수함 건조 승인 등 안보 현안이 복잡하게 얽히며 협의가 길어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영국 로이터 통신은 지난 11일 "양국이 핵추진 잠수함 건조 승인 문제를 두고 협의하는 과정에서 미국 내 각 부처 간 문구 조정이 길어지며 팩트시트 발표가 지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해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같은 날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관세 인하와 관련한 초안은 사실상 마무리됐으며, 팩트시트가 발표될 때 함께 공개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발표 지연은 한국이 아닌 미국 내부 절차 문제 때문"이라며 "양국 간 협의 내용에는 큰 이견이 없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관세 인하가 늦어질수록 완성차 제조사들의 부담도 커지는 만큼, 소급 기준을 조속히 확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 전문가는 "최소 11월 1일 발효가 관철돼야 기업들의 손실을 줄일 수 있다"며 정부의 신속한 협의를 촉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