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박영선 기자] 당국이 카드사에 '생산적 금융' 일환으로 신기술금융 투자 확대를 요청하면서, 업계가 고심하고 있다.
타 금융 업종에 비해 자본력이 풍부하지 않은데다, 적재적소에 투자할 수 있는 안목을 지닌 전문가 역시 태부족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업계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투자보다 건전성 관리가 최우선 과제로 떠오른지 오래다. 그렇다고 당국의 요청을 모른 척하기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2일 금융감독원 정보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작년 12월 말 기준 전체 전업 카드사 8곳의(KB국민·신한·하나·우리·롯데·삼성·비씨·현대)의 신기술금융 자산은 총 1013억6600만원으로 집계됐다. 전체 자산 총계 중 0.25% 정도를 차지하는 규모다.
신기술사업금융업은 장래성이 있으나 자본이 부족한 기업에 투자하는 일종의 벤처캐피털(VC)이다. 성장성이 높인 신기술을 개발하거나 중소기업에 투자하는 등의 방식으로, 시장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신성장 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국내 전업 카드사 8곳은 모두 신기술금융 라이선스를 보유하고 있다. 다만 이 중 신기술금융 사업 투자를 집행하고 있는 곳은 KB국민·신한·롯데·우리카드 등 4곳에 그치고 있다.
가장 많은 신기술금융 자산을 보유한 곳은 신한카드다. 작년 말 기준 신한카드 신기술금융 자산은 918억4400만원으로, 총 자산의 0.25%를 차지한다. 특히 전체 카드사 신기술금융 자산 중 90%를 차지할 정도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신한카드는 지주 계열사와 출자금을 출현해 지난 2021년 3000억원 규모의 '원신한 커넥트 신기술투자조합 제1호'를 조성, 블록체인과 커머스 플랫폼, 프롭테크 등의 기업에 2631억원을 투자했다. 이후에는 제2호를 조성해 인공지능(AI), 디지털자산, 웹3.0 등 잠재력이 높은 기업에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
신한카드를 제외한 카드사들의 신기술금융 자산은 전년 말 기준 △KB국민카드(37억7100만원) △롯데카드(25억1300만원) △우리카드(32억3800만원)로 집계됐다. 각사 총 자산 대비 신기술금융 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0.01~0.02%로 미미한 수준이다.
현 정부는 그동안 대출 등 부동산금융에 집중됐던 투자를 첨단기술산업 등 '생산적 금융'으로 돌리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신기술금융 역시 같은 맥락이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9월 16일 열린 여신전문금융업권 최고경영자(CEO) 간담회에서 "여전사는 신기술금융업을 통해 모험자본 공급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으나 최근 몇 년간 신기술사업자에 대한 충분한 투자가 이뤄지고 있지 않다"고 언급한 바 있다.
카드사들 역시 필요성을 인정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최근 신기술금융사(신기사)가 늘어나면서 시장 진출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신기술금융업을 주체로 하는 전문 신기술사와의 간극이 커진 영향도 있다. 실제로 여신금융협회에 가입된 신기술금융 회원사는 최근 2년새 50개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건전성 관리에 주력해야 하는 시점으로, 안전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투자를 집행할 여력이 없다는 해석도 나온다.
올해 6월말 기준 전체 카드사 연체율은 1.76%로 작년 말(1.65%) 대비 0.11%p 상승했다. 고정이하여신비율도 전년 말(1.16%)과 비교해 0.14%p 올랐다. 지난 2월 가맹점 수수료율이 추가 인하되면서 상반기 순이익도 전년 동기 대비 18% 줄었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향후 수익성 저하가 우려되는 상태"라며 "건전성 관리 등 집중해야 할 부분이 많아 모든 카드사에 라이선스가 있어도 실제 투자까지 이어지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카드사 관계자는 "신기술금융을 본업으로 인식하고는 있지만, 해당 사업을 주체로 한 신기술사들이 많이 늘었다"며 "몇 년새 경쟁이 치열해져 전문 인력을 구하기 어려워졌고, 건전성이 악화된 상태에서 리스크가 큰 벤처기업에 투자하기 쉽지 않아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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