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이 25일(현지시간) 워싱턴DC 현지에서 보잉 차세대 고효율 항공기 103대 구매를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왼쪽부터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스테파니 포프 보잉 상용기부문 사장 겸 CEO,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이 기념 촬영을 하는 모습. (사진=대한항공)
대한항공이 25일(현지시간) 워싱턴DC 현지에서 보잉 차세대 고효율 항공기 103대 구매를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왼쪽부터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스테파니 포프 보잉 상용기부문 사장 겸 CEO,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이 기념 촬영을 하는 모습. (사진=대한항공)

[서울파이낸스 여용준 기자]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가운데 이번 회담에 동행한 기업인들의 성적표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삼성과 LG, SK, 현대차 등은 기존에 대미(對美) 투자를 유지하거나 강화하는 반면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은 70조원 규모의 투자를 단행해 눈길을 끌고 있다. 재계에서는 한진그룹이 대한항공을 통해 양국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진그룹은 25일 한미정상회담 직후 열린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에서 보잉사의 항공기 103대를 구매하는 등의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규모는 총 500억달러로 우리 돈 약 70조원에 이른다. 

세부 계약 내용을 살펴보면 보잉사에서 B777-9 20대, B787-10 25대, B737-10 50대, B777-8F 8대 총 103대 항공기를 구매한다. 비용은 약 362억달러 규모다. 이어 GE에어로스페이스로부터 137억달러 규모의 GE9X 예비엔진 6대, GEnx-1B 예비엔진 5대, LEAP-1B 예비엔진 8대 총 19대의 예비엔진 도입과 GE9X 엔진정비 서비스를 구매한다. 

대한항공은 이번 계약에 대해 "선제적인 대규모 항공기 투자를 통해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고, 대한민국과 미국 양국간의 상호호혜적 협력에도 기여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재명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재계에서는 한진그룹의 이번 결정이 단순한 항공기 투자를 넘어 한미 양국 간의 협력 체계를 공고히 하는 의미가 있다고 보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이번 딜은 단순히 항공기 확보를 넘어, 한미 양국 간의 제조업 르네상스 파트너십을 강화하고 항공 산업 공급망 협력을 공고히 하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고 설명했다. 

또 "대한항공의 이번 대형 계약은 장기적인 경쟁력 강화와 지정학적 위상 제고를 위한 전략적 비전의 결과물"이라며 "기단 현대화 및 표준화를 통해 아시아나 통합 시너지를 극대화하고 친환경 경영 목표를 달성하려는 의도"라고 덧붙였다. 

다만 대한항공이 이 같은 인수 자금을 감당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된다. 대한항공은 지난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한 후 부채까지 떠안으면서 부채비율이 크게 늘어난 상태다. 올해 1분기 328%에 이르던 부채비율은 2분기에 다소 줄었지만, 여전히 300%가 넘는 상황이다. 

항공기 구매의 경우 통상 계약금과 선납금(PDP, Pre-Delivery Payment)이 발생하는데 이번 계약의 경우 PDP 규모가 최소 100억달러(약 14조원) 이상이 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당장 필요한 현금성 자금은 PDP 전용 금융이나 장기 리스, 수출신용기관 보증, 자본시장 조달 등을 통해 마련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로 인해 재무적 부담이 커지는 것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올해 초 나이스신용평가와 한국신용평가, 한국기업평가 등 국내 신용평가사들은 대한항공의 신용등급에 대해 기존 'A-'를 유지하고 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긍정적'으로 상향 조정했다. 아시아나항공 인수 후 높아진 사업 경쟁력이 긍정적이라는 반응이다. 

그러나 2025년 1분기부터 아시아나항공의 부채가 본격적으로 반영됐고 여기에 항공기 구매에 따른 비용이 추가로 발생할 경우 부채 규모는 더 늘어날 수도 있다. 대한항공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항공기 인도가 지연되면서, 주요 항공사들이 항공기 주문 시점을 당기는 추세인 점을 감안해 2030년대 말까지의 항공기 투자 전략을 선제적으로 수립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한항공 보잉 747-8i. (사진=대한항공)
대한항공 보잉 747-8i. (사진=대한항공)

대한항공이 이처럼 선제적인 전략이라고 밝혔지만, 실제 항공기가 인도되는 시기는 짐작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앞서 지난해 1월에는 인도의 신생 항공사 아카사에어가 보잉사에 737맥스 항공기 150대를 주문한 바 있다. 하지만 같은 해 9월 보잉 노조가 임금 40%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하면서 생산에 차질이 빚어졌다. 

파업은 약 7주 동안 진행됐으며 11월에 이르러서야 4년간 임금 38% 인상으로 합의가 이뤄졌다. 파업 여파로 차질이 빚어진 항공기 생산은 올해 초에 들어서야 정상화됐다. 그러나 구조조정 등 내부 갈등의 여지가 여전히 남아있는 만큼 실제 항공기를 인도받는 시기는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 같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한진그룹이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면서 한국과 미국의 제조업 르네상스 파트너십을 강화하고 산업 공급망 협력을 공고히하는 역할을 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재계 관계자는 "미국 방위산업과 항공우주 산업의 핵심인 보잉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단행해 대한항공과 한국 정부는 미국과의 동맹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표명했다"며 "향후 무역, 안보, 시장 접근성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장기적인 혜택을 확보하는 전략적 포석"이라고 분석했다. 

여기에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면서 시장 점유율 70%에 이르게 돼 독과점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각종 규제 우려가 커지는 만큼 이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 외교 전략에 협조했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실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마일리지 통합 단계를 앞두고 있지만, 최근 공정거래위원회에서 통합 비율의 구체성이 미흡하다는 이유로 수정 보완을 요청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파이낸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