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문영재 기자] "전기차 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세계 최저 수준의 공기저항계수(Cd) 달성하는 데 개발 역량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지난 23일, 경기도 화성시 현대차그룹 남양기술연구소에서 열린 미디어 랩 투어. 현장에서 만난 공력시험동 연구원은 중형 전기 세단 아이오닉6 기반 콘셉트카 '에어로 챌린지 카'를 공개하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Cd는 0.144로, 경쟁사들이 선보인 전기 콘셉트카 Cd(0.17~0.19)를 웃도는 수치"라며 "디퓨저, 스포일러, 언더커버 등 공기 흐름을 능동적으로 제어하는 고난도 공력 기술을 집약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현대차그룹이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 전방위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처럼 '최고'를 향한 기술 집념이 자리한다. 단순한 설계 차원을 넘어, 개발 전 과정을 아우르는 혁신거점 남양기술연구소의 융합 역량이 뒷받침된 결과이기도 하다.
1996년 설립된 이 연구소는 축구장 480여개 규모의 340만제곱미터(㎡) 부지에 공력시험동, 환경시험동, R&H성능개발동, NVH동 등을 갖춘 종합연구단지다. 현재는 전기차를 필두로 미래차 경쟁력 강화에 집중하고 있다.
이번 투어에서 가장 먼저 찾은 공력시험동은 전기차 전비와 주행안정성 등을 좌우하는 Cd 개선을 위한 시설이다. 6000㎡ 규모의 시험동에는 3400마력급 대형 송풍기와 지면 재현 벨트가 설치돼 있어, 시속 200킬로미터(km)의 고속 주행 상황과 노면 마찰 조건을 동시에 구현할 수 있다. 이중 지면 재현 벨트는 실제 노면과 유사한 공기 흐름을 재현함으로써 항력과 양력 측정 정밀도를 높이는 기술이다.
이러한 시험환경에 맞춰 선보인 에어로 챌린지 카는 정밀한 공력 측정을 통해 △액티브카울커버 △액티브사이드블레이드 △액티브리어스포일러 등을 적용, 기록적인 Cd를 실현했다. 공력개발팀 박상현 팀장은 "공기저항이 적을수록 효율을 높아진다"며 "기반이 되는 아이오닉6보다 1회 충전 60km가량을 더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서 찾은 환경시험동은 전기차 열관리 성능을 극한의 조건에서 검증하는 공간이다. 영상 50도씨(℃)부터 영하 30℃까지 다양한 기후 조건을 구현할 수 있는 환경 풍동 챔버를 통해 배터리, 히트펌프, 공조 등을 종합 평가한다.
고온 챔버에서는 아이오닉6N이 시속 50km로 주행 중인 상태에서 평가가 진행됐다. 차량 위로 ㎡당 1200와트(W)의 일사량을 내는 인공 태양광이 작동 중이어서 그런지 실내는 숨이 턱 막힐 듯한 열기로 가득 찼다. 차량 내부에는 다수의 온도 센서를 부착한 마네킹이 자리해 있었다. 연구진은 이들 장비를 통해 "에어컨 송풍 위치나 공조 작동 방식에 따라 실제 사람이 느끼는 체감 온도가 어떻게 바뀌는지 확인한다"고 했다.
강설·강우 챔버에서는 아이오닉9 충전구와 프렁크 실링 상태를 점검했다. 열에너지차량시험2팀 홍환의 연구원은 "눈이나 빗물이 전장 계통에 유입돼 기능 이상을 유발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R&H성능개발동에서는 전기차 주행감과 승차감에 대한 정밀 평가가 진행됐다. 주행로봇이 주행시험기 위에서 스티어링휠과 페달을 정밀하게 제어, 차량의 움직임과 응답성을 반복 측정했다. 특히 북미, 유럽 등 주요 시장 도로 데이터를 기반으로 구성된 시험 조건은 지역별 실도로 환경을 정밀하게 구현해낸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차량 모듈을 회전 벨트 위에 올려놓고 타이어 접지 특성이나 서스펜션 반응을 측정하는 모듈 시험기, 가상 주행 환경을 재현하는 핸들링 시험기 등을 통해 승차감도 수치화했다. 주행성능기술팀 김성훈 연구원은 "외부 변수 없이 반복 가능한 실험을 통해, 글로벌 시장의 다양한 요구에 대응할 수 있는 주행 품질을 구현하고 있다"고 밝혔다.
끝으로 정숙성과 감성 품질을 높이기 위한 소음·진동 성능 평가 시설, NVH동을 찾았다. 엔진 소음이 없는 전기차는 풍절음과 노면 소음에 더욱 민감한 만큼, 고도화된 소음·진동 성능 확보가 필수적이다. 이를 구현하기 위한 로드노이즈 시험실에서는 타이어와 노면 간 마찰로 발생하는 소음을 정밀 분석했다.
차량 주행 속도에 따른 소음 특성과 진동 전달 경로를 실시간으로 측정해, 부품 구조와 소재 개선으로 이어지는 데이터를 확보하는 방식이다. 정숙한 공간 속, 전기차의 미세한 '소리'까지 잡아내는 작업이 인상적이었다. 소음진동기술팀 서재준 팀장은 "차량 구조와 소재를 최적화해, 전기차 특유의 정숙한 주행감을 구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몰입형 VR 스튜디오와 청취실에서는 다양한 주행 환경을 가상으로 구현해 사운드 특성을 정밀하게 평가했다. 각 주행 조건에서의 소음 변화와 운전자가 실제로 체감하는 청각 반응을 종합 분석함으로써, 감성적인 이동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목표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은 품질·성능을 둘러싼 치열한 경쟁이 한창이다. 비야디(BYD), 지리차 등 중국계 업체들이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빠르게 추격하고 있는 상황에서, 현대차그룹은 데이터 기반 기술 우위를 통해 차별화된 가치를 제시한다.
결과적으로 그룹은 아이오닉5(2022년), 아이오닉6(2023년), EV9(2024년), EV3(2025년)까지 4년 연속 '세계 올해의 차'를 수상하며 상품성을 입증했다. 지난 5월에는 전용 전기차 누적 판매 100만대를 돌파하며 전동화 전략이 결실을 맺고 있음을 보여줬다.
올해 들어서도 전기차 판매는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그룹은 1~5월 글로벌 전기동력차 시장에서 22만4529대를 판매, 전년 대비 17% 증가한 실적을 올렸다. 전기차 핵심 역량에 집중한 기술 전략이 시장 입지 강화로 이어지고 있다는 평가다.
이러한 성과의 출발점이 바로 남양연구소다. 이날 투어에서 만난 각 시험동 연구진들은 효율성, 주행감, 정숙성 등 전기차 전반의 완성도를 끌어올리기 위한 기술 개발에 매진했다. 정교한 평가 장비와 실차 기반 데이터를 바탕으로 축적된 실증 역량은, 전동화 시대 현대차그룹이 핵심 플레이어로 자리매김하는 데 기반이 됐다.
한 연구원은 "기술을 설계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주행 환경을 정밀하게 구현해가며 끊임없이 검증하고 개선하는 것이 그룹의 경쟁력"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