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제철 구조용 열연강판 (사진=현대제철)
현대제철 구조용 열연강판 (사진=현대제철)

[서울파이낸스 김완일 기자] 국내 철강시장이 중국산 열연강판 '밀어내기 수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정부의 반덤핑 관세 예비판정이 임박한 가운데, 중국 철강업체들이 관세 발효 전 대규모 물량을 쏟아내면서 수입량이 8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중국 철강업체들의 대대적인 '밀어내기' 움직임에 국내 철강업체들도 반격을 준비하는 모습이다. 특히 후판을 비롯한 주요 철강 품목에 대한 반덤핑 조치가 최근 성과를 내면서 업계는 열연강판을 포함해 특수강, 컬러강판 등 다른 품목으로 제소 움직임을 확대하고 있다.

◇ 5월 수입량 21만톤 돌파, 8년來 최대 = 9일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중국산 열연강판 수입량은 지난 5월 21만7442톤(t)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동월(14만7066t) 대비 무려 47.8% 증가한 수치로, 2017년 3월(22만t대) 이후 8년 2개월 만에 최대치다.

업계는 이 같은 폭증 배경에 대해 "중국산 열연강판에 대한 반덤핑 관세 부과가 기정사실화되자, 중국 업체들이 한국 시장에 '밀어내기 수출'에 나섰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열연강판은 철강 산업의 '중간재 중 중간재'로 불리는 핵심 품목이다. 자동차 차체, 강관, 가전, 건축자재, 고압가스용기 등 전 산업 분야에 쓰이며, 국내 철강업체 매출의 20~30%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도가 높다. 이에 현대제철, 동국제강, 포스코인터내셔널 등 주요 철강사는 이 같은 행태를 '시장 교란 행위'라고 평가할 정도다. 

앞서 중국 업체들은 그동안 국산 열연강판 대비 평균 30% 이상 저렴한 가격을 앞세워 국내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늘려왔다. 저가 공세에 내몰린 국내 업체들은 수익성 악화는 물론, 납품처를 잃는 악순환에 시달리고 있다.

이에 따라 현대제철 등 철강 6개사는 지난해 12월 산업통상자원부 무역위원회에 중국산 열연강판에 대한 반덤핑 제소를 제기했고, 올해 3월부터 예비조사에 착수했다. 무역위는 이르면 6월 말 예비판정을 내리고, 본조사 및 공청회를 거쳐 오는 8월 중 최종 결론을 내릴 예정이다.

업계는 중국산 후판 사례를 감안할 때 25% 이상의 고율 관세 부과가 유력하다고 보고 있다.

◇ '반덤핑 관세' 실효성 확인···특수강·컬러강판도? = 실제 후판(두께 6mm 이상 강판)의 경우, 지난 4월 24일부터 최대 38.02%의 반덤핑 관세가 부과되자 수입량이 급감했다. 지난달 중국산 후판 수입량은 전년 대비 63% 이상 감소했고, 70만원대였던 가격도 80만원 중반까지 상승해 국내산과 가격 차이를 상당 부분 좁혔다.

동국제강 측은 "고율의 반덤핑 관세가 실효성 있는 수단임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라며 "열연강판, 특수강, 컬러강판 등 전방위로 덤핑 대응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후판에 대한 반덤핑 관세 효과를 경험한 탓일까. 철강업계에서는 열연강판 외에 다른 철강 품목으로도 반덤핑 제소가 확산되는 추세다. 세아베스틸과 세아창원특수강은 이달 중으로 중국산 특수강봉강에 대한 반덤핑 제소를 무역위원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해당 품목의 수입량은 최근 2년 사이 50% 이상 증가했으며, 점유율도 14.7%에서 22.1%로 껑충 뛰었다. 품질 논란이 잦은 저가 수입재가 국내 특수강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면서 적극적인 대응이 불가피해졌다는 입장이다.

건축용 컬러강판 시장에서도 중국산 점유율은 이미 내수 시장의 3분의 1을 초과한 상태다. 이에 따라 동국제강그룹의 컬러강판 전문 계열사 동국씨엠도 반덤핑 제소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 "시장 질서 회복 위한 불가피한 선택" = 철강업계는 이번 제소 움직임이 단순한 보호무역 수단이 아니라, 시장 질서 회복과 산업 생태계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자구책이라는 입장이다.

한 철강사 고위 관계자는 "중국산 저가 물량이 무차별적으로 유입되면 국내 생산설비는 줄도산할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보다 신속하고 정밀하게 반덤핑 조사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도 산업부, 무역위, 기획재정부 등을 중심으로 철강 주요 품목에 대한 반덤핑 대응체계 강화와 관련법 개정 논의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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