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김완일 기자] 철강업계와 조선업계가 후판 가격 인상을 두고 지속했던 줄다리기의 끝이 보이고 있다. 정부의 중국산 후판에 대한 고율 관세 부과 조치가 시행되면서 국내 후판 가격 상승에 불을 지폈고, 철강사들은 이를 근거로 조선사들과 인상 협상을 본격화하고 있다.
3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철강사와 조선사 간 후판 가격 인상 협상이 막바지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후판은 LNG선, 컨테이너선 등 대형 선박의 선체 제작에 쓰이는 핵심 소재로, 가격 변동은 조선사들의 건조 원가와 직결되기에 양 업계 간 주요 쟁점으로 꼽힌다.
철강사들은 올 상반기 후판 단가를 인상하자는 입장을 조선사 측에 전달한 상태다. 지난해 하반기 톤당 70만원대 후반까지 내려갔던 가격을 100만원대까지 높이는 게 목표로 알려졌다. 현대제철과 포스코는 최근 실적발표 후 진행된 컨퍼런스콜에서 "조선사들과 가격 협의가 잘 진행되고 있으며, 인상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밝혔다.
이 같은 기류 변화의 배경엔 정부의 반덤핑 조치가 있다. 지난 2월 산업통상자원부는 무역위원회가 중국산 후판에 대한 반덤핑 예비판정을 내렸고, 지난달 24일 기획재정부는 27.91~38.02% 달하는 관세를 4개월간 부과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중국산 후판 가격이 상승하면서 철강사들이 가격 협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후판은 가격이 수출 계약 이후 수개월 뒤 결정되는 후행적 구조를 지닌다. 조선사들은 통상 6개월 단위로 철강사와 단가를 협상하며, 단가 인상 시 건조 마진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반면 철강사들은 원료인 철광석 가격과 에너지비, 인건비 상승 등을 반영해야 한다며 인상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실제로 조선업계는 최근 수주가 호조를 보이며 생산 물량이 늘고 있지만, 고정가 수주로 인해 수익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수주 당시 후판 가격은 낮았지만, 인상분이 건조 원가에 반영되지 않으면 수익성이 악화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정부의 반덤핑 조치가 철강업계에 힘을 실어준 모양새라는 해석도 나온다. 중국산 저가 후판 유입이 억제되면서 국내 철강사들의 협상력이 상대적으로 강화된 셈이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국내산 후판의 품질은 중국산보다 우수한 데다 가격 경쟁력까지 확보된다면, 조선사들도 선택지를 바꾸게 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또한 포스코는 지난 1일 포스코경영연구원 보고서를 통해 정부의 철강산업 보호를 위한 추가 대책 마련도 촉구했다. 포스코는 "국내 시장질서 정상화와 국내시장 보호를 위한 무역구제조치의 적절한 활용과 경쟁여건 회복을 위한 관련 법제도 개정이 요구된다"며 "한국 철강산업의 위기는 한국 제조업 전체의 경쟁력 약화 및 지역경제 붕괴를 초래 가능해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