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오세정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8월 가석방 이후 처음으로 해외 경영 행보에 나선 가운데 캐나다에 있는 인공지능(AI) 연구센터를 첫 출장지로 택해 관심이 쏠린다. 특히 그동안 방미 기간 주요 일정으로 예상돼 온 반도체와 백신 등 현안 챙기기에 앞서 삼성전자 인공지능(AI) 연구 핵심거점인 캐나다를 택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 부회장이 미래 사업으로 AI 등 소프트웨어 분야 역량 강화에 보다 힘을 싣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온다.
15일 재계에 따르면 전날 김포공항을 출발한 이 부회장의 전세기는 12시간여의 비행을 거쳐 현지시간 14일 오전 캐나다 토론토 피어슨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이 부회장은 이날까지 캐나다 일정을 소화하고 곧장 미국으로 이동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정확한 방문지는 공개되지 않았으나 이 부회장은 캐나다 토론토 AI연구센터를 찾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 부회장은 토론토에서 저명한 컴퓨터 비전 전문가이자 토론토 대학교 컴퓨터 사이언스 학장을 역임한 스벤 디킨슨(Sven Dickinson) 토론토 AI 센터 센터장, 앨런 젭슨(Allen Jepson) 토론토 AI 센터 부사장 겸 수석과학자 등으로부터 연구 개발 현황을 보고 받고, 임직원들을 격려 할 것으로 전해졌다.
◇ 이재용 부회장, 핵심 성장동력으로 AI 낙점?
토론토는 삼성전자 AI 연구개발 주요 거점 중 한 곳으로, 인근엔 AI 분야에 강한 대학과 연구소와 밀집해 있다. 삼성전자는 캐나다에만 토론토와 몬트리올 등 2곳에서 글로벌 AI연구센터 2곳을 운영 중이다.
AI는 삼성이 '4차 산업혁명'을 이끌 핵심 IT 주도권 확보를 위해 기술 역량을 확대하고 있는 분야로 꼽힌다. 앞서 삼성전자는 2017년 한국 AI 총괄센터를 시작으로, 2018년 1월 미국 실리콘밸리, 5월 토론토, 영국 케임브리지, 러시아 모스크바, 9월 미국 뉴욕, 10월 캐나다 몬트리올 등 총 5개국에 7개의 AI연구센터를 잇따라 세우며 연구개발(R&D)에 거점을 확보했다.
삼성은 전 세계 거점 연구센터를 통해 세계적인 AI 석학 및 전문가들과의 협력을 강화하며 선행기술 확보를 추진하고 있다. 2017년부터 해마다 '삼성 AI 포럼'을 열고 AI 석학들을 초청해 최신 연구 동향을 공유하며 미래 혁신 전략을 논의하고 있다. 아울러 관련 분야 투자를 늘려 고성능 AI 알고리즘을 적용한 지능형 기기 확대에도 나섰다.
AI분야 인재 육성과 영입에도 적극적이다. 뇌 기반 AI 연구를 개척한 세계적 석학인 승현준(세바스찬 승)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영입이 대표적이다. 승 교수는 지난해 6월부터 삼성리서치소장을 맡아 7개 AI센터의 미래 신기술과 융복합 기술 연구를 관장하고 있다. 이 밖에 미래기술육성재단을 통한 연구 지원과 S/W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AI 산업의 저변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AI는 이 부회장이 각별히 관심을 가지고 육성하고 있는 분야로도 알려졌다. 이 부회장은 앞선 해외 출장에도 AI 등 미래사업과 관련된 행보를 보이며 직접 사업을 챙겨왔다. 앞서 이 부회장은 국정농단 사건 재판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뒤 2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난 2018년 당시에도 첫 해외 출장지로 캐나다를 찾은 바 있다.
2018년 3월 총 16일 간 일정으로 오른 북미·유럽 출장길에서 AI 분야 글로벌 석학들과 교류하며 최신 트렌드를 파악하고, 핵심인재 영입에도 나서는 등 AI사업 육성 의지를 보였다. 그해 10월 유럽과 북미 출장을 추가로 다녀오면서도 재차 캐나다를 방문한 바 있다.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할 때에도 역점 성장사업으로 AI가 매번 포함됐다. 실제 지난 8월 이 부회장의 가석방 출소 11일 만에 나온 향후 3년간 240조원의 신규 투자 계획 발표에서도 반도체, 바이오 등과 함께 미래 핵심 IT 분야로 AI가 언급됐다. 당시 삼성은 "첨단 혁신사업을 중심으로 한 대규모 투자를 통해 글로벌 산업구조 개편을 선도하고 ‘새로운 미래를 여는 기업’으로서의 역할을 준비해 나갈 것"이라면서 "AI, 로봇 등 미래 신기술과 신사업 R&D 역량을 강화해 4차 산업혁명 주도권을 선도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이와 관련, 이 부회장이 AI와 관련한 사업 구상에 나서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삼성전자가 3년 내 의미 있는 인수·합병(M&A) 성과를 이뤄내겠다는 입장인데다 관련 투자 확대, 인재 확보에 나서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캐나다 방문은 M&A나 인재 영입과 관련한 일정일 가능성도 나온다.
◇ 美서 파운드리 투자 결정, '백신 행보'도 관심
이 부회장은 캐나다 일정을 소화한 후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 소재한 모더나 본사를 방문하고, 뉴욕 등에서 비즈니스 일정 등을 소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의 전세기는 토론토 공항에 도착한 후 일정 시간 머문 뒤 다시 비행해 미국 뉴저지주 테터보로 공항으로 이동했다. 이 부회장의 탑승 여부는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공항 인근 뉴욕과 보스턴 등에서 일정을 고려한 이동인 것으로 추측된다. 뉴욕 맨해튼으로부터 약 19km 떨어진 곳에 있는 테터보로는 개인 전용기나 비즈니스젯의 이용이 잦은 공항이다.
이번 이 부회장의 출장에서 최대 관심사는 170억달러(약 20조원) 규모의 미국 내 제2 파운드리 투자지역 확정을 비롯한 대미 투자계획이다. 그는 미국에서 삼성전자가 170억달러(약 20조원)를 투자해 추가로 건설할 예정인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의 후보지 선정 작업을 검토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출국에 앞서 "여러 미국 파트너들을 만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재 신규 파운드리 공장의 후보지로는 텍사스주 테일러시가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기존 파운드리 공장이 있는 오스틴시도 검토 대상이다. 이 부회장 출장 이후 최종 후보지가 결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아울러 모더나와의 추가적인 협력 여부에도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번 출장길에 백신 수급과 관련해 모더나 관계자들을 만날 계획이 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모더나 본사가 있는)보스턴에도 갈 것 같다"고 했다.
스테판 방셀 모더나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한 경영진과 화상회의를 통해 수시로 의견을 교환해온 이 부회장은 이번 출장에서 백신 수급과 바이오산업과 관련해 보다 심도 있는 의견을 주고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 측은 출장 기간과 세부 일정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이 부회장이 오는 25일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부당합병 관련 재판에 참석해야 하는 만큼 10여일간 미국에 머물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