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포항제철소 (사진=포스코홀딩스)
포스코 포항제철소 (사진=포스코홀딩스)

[서울파이낸스 김완일 기자] 포스코가 또다시 중대재해의 악몽에 빠졌다. 올해에만 여섯 번째 사망 사고다. '50년 제철 명가'의 이름 뒤에 여전히 위험이 도사린 산업현장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드러났다.

6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5일 오전 포스코 포항제철소에서 유해가스가 새어 나오며 포스코DX의 하도급업체 소속 근로자 1명이 사망했다. 함께 있던 근로자 3명은 신체 일부에 화상을 입었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는 근로자들이 배관을 밟고 이동하던 중 배관이 파손되면서 유해물질이 누출된 것으로 추정된다.

포스코DX는 즉각 사과문을 발표했다. 회사는 "불의의 사고로 안타깝게 돌아가신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께 깊은 애도와 사과를 드린다"며 "사고대책반을 설치하고 관계기관과 협조해 정확한 사고 원인 파악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 역시 사고 직후 해당 공정을 전면 중단하고 환기 및 안전 점검에 착수했다. 그러나 위험물질을 다루는 공정에서 작업자 안전을 위한 기본적인 관리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렵다.

고용노동부 포항지청은 사고 직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여부 조사에 착수했으며, 경북경찰청 중대재해수사팀은 6일 오후 고용부·환경청·안전공단 등과 합동감식을 벌였다. 경찰은 파손된 배관의 상태, 유해물질 분출 경로, 안전관리 규정 준수 여부 등을 집중 조사할 방침이다.

문제는 포스코가 안전 투자를 지속 확대하고 있음에도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포스코그룹 내에서는 올해에만 6명이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었다. 이번 포항제철소 사고를 비롯해 지난 7월 광양제철소에서는 집진기 배관 해체 중 구조물이 붕괴해 1명이 숨졌다. 건설 계열사인 포스코이앤씨 현장에서도 올 들어 5건의 중대재해가 발생해 총 4명이 사망했다.

30일 경주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APEC CEO 서밋에서 기조연설 하는 장인화 포스코그룹 회장 (사진=포스코홀딩스)
30일 경주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APEC CEO 서밋에서 기조연설 하는 장인화 포스코그룹 회장 (사진=포스코홀딩스)

이처럼 사고가 반복되는 원인으로 업계는 '현장 하청 구조의 고착화와 형식적 안전관리'를 지목한다. 실제로 제철소와 건설 현장 모두 외주 비중이 60%를 넘고, 위험 공정의 절반 이상이 하청을 통해 운영되고 있다. 안전관리 매뉴얼이 존재하더라도 '서류상 점검'에 머물고, 실질적인 현장 통제는 이뤄지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특히 포스코그룹의 '안전 혁신'을 직접 지휘해 온 장인화 회장의 리더십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장 회장은 지난해 취임 이후 "모든 경영의 출발점은 안전"이라며 그룹 전반에 안전경영 기조를 확산시켜왔다. 실제로 올해 초에는 '그룹안전특별진단 TF'를 신설하고, 계열사별 안전투자 확대 및 현장 순찰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불과 4개월 만에 또다시 사망 사고가 발생하면서 '안전경영' 구호가 실효성을 잃고 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장 회장이 수차례 안전경영을 강조했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위험 공정을 외주에 의존하는 구조가 그대로"라며 "책임 있는 리더십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포스코는 안전 분야에 연간 6000억원 이상을 투자하고 있지만, 현장 시스템은 여전히 인력 중심·매뉴얼 중심의 관리체계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다. 위험작업의 단계별 점검 절차가 서류로만 남고, 실제 현장에서는 작업 일정 단축이나 생산성 중심의 판단이 우선시된다는 것이다.

반복되는 중대재해는 포스코의 ESG 신뢰도와 글로벌 투자전략에도 걸림돌로 작용할 전망이다. 포스코는 수소환원제철, 리튬·니켈 등 이차전지 소재, 글로벌 제철소 건설 등 대규모 해외 사업을 추진 중이지만, 안전 리스크가 지속될 경우 대외 신인도 하락은 불가피하다.

국제 ESG 평가기관들의 시각도 냉정하다. 미국 금융정보 분석기업 S&P글로벌은 지난 7월 포스코홀딩스의 ESG 점수를 100점 만점 중 45점으로 평가했다. 서스테이널리틱스는 포스코를 '리스크 27.4점'으로 중위위험군에 분류했다. 특히 안전·산업재해 관련 항목이 점수 하락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됐다.

한 ESG 전문가는 "포스코처럼 중대재해가 반복되는 기업은 글로벌 기관투자가의 투자 제한 대상이 될 수 있다"며 "ESG 리스크가 결국 신용등급 하락과 자금조달 비용 증가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포스코는 최근 수소환원제철 실증 공장 착공, 인도네시아 제철소 증설, 호주 광물 자원 투자 등 대규모 프로젝트를 잇따라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글로벌 시장에서의 ESG 평판이 흔들릴 경우, 파트너십 체결이나 금융기관의 대출 심사 과정에서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업계 안팎에서는 이제 포스코가 단순한 안전 시스템 보강을 넘어, 그룹 경영의 핵심 가치로 '안전과 책임'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장 회장 스스로가 강조해 온 "안전이 경영의 출발점"이라는 원칙을 실질적 변화로 증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철강업계 고위 관계자는 "포스코는 국내 제조업을 대표하는 기업으로서 사회적 책임이 막중하다"며 "안전 리스크를 근본적으로 해소하지 못한다면 ESG는 물론 향후 글로벌 투자 확장에도 한계가 뚜렷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속가능경영의 첫 단추는 '사람'에 대한 진정성"이라며 "장인화 회장이 현장 중심의 구조개편과 책임경영으로 실질적 변화를 보여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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