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면 대기업들은 한 해 성과를 평가하고 차기 전략을 구상하는 사장단·임원 인사를 단행한다. 특히 올해는 삼성전자의 인사에 재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사법리스크를 털어낸 이재용 회장이 9년 만에 등기이사 복귀를 앞두고 있으며, 그에 맞춰 그룹의 컨트롤타워 복원과 경영 시스템 재정비가 예고되기 때문이다. 본 기사에서는 연말 임원인사를 앞두고 삼성전자 인사의 주요 방향에 대해 알아본다. /편집자주
[서울파이낸스 여용준 기자] 삼성전자 DS(디바이스솔루션)부문이 반도체 장기 침체 국면에서 벗어나기 위한 대대적 조직개편에 나설 전망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직접 챙긴 'AI 팩토리' 구축과 미국 고객사 대응 강화를 축으로 한 'AI·대미(對美) 투트랙 개편'이 이번 연말 인사의 핵심 키워드로 꼽힌다.
DS부문은 2023년 메모리 반도체 불황 이후 수익성 회복에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AI 반도체 핵심인 HBM(고대역폭메모리) 시장에서 SK하이닉스에 주도권을 내주며 33년 만에 D램 점유율에서도 추월당하는 굴욕을 맛봤다.
그러나 올해 3분기 7조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반등의 조짐을 보였다. 다만 같은 기간 SK하이닉스가 11조원의 영업이익을 내며 격차를 벌린 점은 여전히 부담 요인이다.
◇ "깐부치킨 회동" 이후 급물살 탄 AI 팩토리 = 삼성전자는 반도체 실적 회복을 가로막던 불확실성을 상당 부분 제거했다. 지난달 30일 이재용 회장이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젠슨 황 엔비디아 CEO와 회동한 이후, 엔비디아로부터 GPU 5만장을 공급받아 업계 최대 규모의 'AI 팩토리' 구축에 나서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HBM4 등 차세대 반도체 공급 협력도 논의 중이다.
이 회동 이후 삼성전자는 엔비디아의 시뮬레이션 플랫폼 '옴니버스(Omniverse)'를 기반으로 디지털 트윈 제조 환경을 구현하기 위한 인프라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AI 팩토리는 반도체 제조 과정에서 생성되는 모든 데이터를 실시간 수집·분석해 스스로 학습하는 지능형 제조 플랫폼으로, 향후 반도체 개발 및 양산 주기를 단축하고 품질 경쟁력을 강화할 전망이다.
AI 팩토리 프로젝트를 이끄는 인물은 송용호 부사장(57)이다.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 출신인 송 부사장은 2019년 낸드플래시 기술 강화를 위해 삼성에 영입됐으며, 지난해 신설된 ‘AI센터’ 초대 센터장을 맡고 있다. AI 기술을 반도체 도메인에 접목시켜 생산 최적화와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을 추진해온 만큼, 송 부사장의 사장 승진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 파운드리 반등 이끈 조상연 부사장, '대미(對美) 키맨' 급부상 = 파운드리(위탁생산) 사업부는 미국 빅테크 기업들을 중심으로 반등의 실마리를 찾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3분기 테슬라·애플·IBM 등 주요 고객사의 칩 생산 물량을 잇달아 수주하며 분기 기준 역대 최대 수주 실적을 기록했다.
이 성과의 배경에는 조상연 부사장(53)이 있다. 조 부사장은 지난해부터 미주총괄(DSA)을 맡아 테슬라·애플 등 핵심 고객 확보를 주도했다. 과거 메모리사업부 전략마케팅팀장과 반도체연구소 SW센터장, 메모리솔루션개발실장을 거친 조 부사장은 기술과 마케팅 모두에 정통한 인물로 평가된다.
조 부사장이 이끄는 DSA는 향후 파운드리 고객 지원과 협력 확대의 전진기지로, 사장 승진과 함께 조직 규모 확대 가능성이 거론된다.
특히 미국 내 반도체 공급망 재편이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미국 고객사 전담 조직 강화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내년 하반기부터 HBM4(6세대 HBM) 경쟁이 본격화되는 만큼, 엔비디아·AMD 등 글로벌 고객사 대응 역량을 강화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 연말 인사 키워드 ‘AI + 미국’ = 이와 함께 대미(對美) 관세 협상 타결도 DS부문에 호재로 작용한다. 이번 APEC 정상회담을 계기로 양국 간 관세 협상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으며, 반도체 품목에 대해서도 '최혜국 대우'가 사실상 보장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가 경쟁국인 대만 TSMC보다 불리한 위치에 놓일 가능성은 낮아졌다는 평가다.
삼성전자 안팎에서는 이번 연말 DS부문 인사가 AI 중심 조직 강화와 대미 대응력 제고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본다. AI 팩토리 구축을 주도하는 송용호 부사장의 사장 승진, 대미 사업을 이끄는 조상연 부사장의 사장 승진이 동시에 거론된다.
삼성전자는 2020년 214명 승진 이후 매년 승진 인원을 줄여 지난해에는 137명에 그쳤다.그러나 올해는 반도체 실적이 회복세를 보이고, MX(모바일)사업부가 3분기까지 영업이익이 이미 지난해 연간 실적을 넘어선 만큼 승진 폭이 다소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가전·TV 부문이 7개 분기 만에 적자를 기록하면서 전체 승진 규모는 제한적일 전망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AI 팩토리는 단순한 생산 자동화가 아니라 반도체 산업 구조를 바꿀 수 있는 전략적 전환점"이라며 "송용호 부사장이 주도하는 AI 혁신과 조상연 부사장이 이끄는 대미 조직 강화가 DS부문 재도약의 쌍두마차 역할을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