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면 대기업들은 한 해 성과를 평가하고 차기 전략을 구상하는 사장단·임원 인사를 단행한다. 특히 올해는 삼성전자의 인사에 재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사법리스크를 털어낸 이재용 회장이 9년 만에 등기이사 복귀를 앞두고 있으며, 그에 맞춰 그룹의 컨트롤타워 복원과 경영 시스템 재정비가 예고되기 때문이다. 본 기사에서는 연말 임원인사를 앞두고 삼성전자 인사의 주요 방향에 대해 알아본다. /편집자주

최윤호 삼성 경영진단실장. (사진=삼성)
최윤호 삼성 경영진단실장. (사진=삼성)

[서울파이낸스 여용준 기자] 삼성전자 내부 조직도에 미세하지만 강렬한 변화가 일고 있다. 삼성글로벌리서치(옛 삼성경제연구소) 소속이던 경영진단실이 최근 삼성전자 산하로 편입됐기 때문이다.

재계 안팎에서는 그룹 차원의 감사 역할을 맡고 있는 경영진단실이 계열사 내부 조직으로 이관된 점을 주목하고 있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미래전략실 기능이 삼성전자·삼성생명·삼성물산 등 3개의 사업지원T/F로 분산되며 사라졌던 그룹 컨트롤타워 역할을 다시 삼성전자가 맡게 될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이번 개편은 최근 불거진 '월권 논란'이 직접적인 배경으로 꼽힌다. 삼성글로벌리서치가 사실상 그룹 컨트롤타워 역할을 대신하며 주요 사업부에 대한 경영진단을 진행하자, 일부 계열사에서는 "독립된 연구조직이 내부 감사를 수행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에 삼성은 경영진단 기능을 본래 집행조직인 삼성전자로 되돌린 것으로 풀이된다.

결과적으로 경영진단실을 총괄하는 최윤호(62) 사장(전 삼성SDI 대표)의 위상도 크게 높아질 전망이다. 삼성 내부에서는 이번 조치가 "최 사장에게 사실상 '조직검증'의 칼날을 맡긴 것"이라며, 향후 컨트롤타워 복원이 논의될 경우 중요한 축으로 부상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올해 초 출시된 갤럭시S25 시리즈에는 엑시노스가 완전히 배제되고 퀄컴 스냅드래곤8 엘리트가 탑재됐다. (사진=삼성전자)
올해 초 출시된 갤럭시S25 시리즈에는 엑시노스가 완전히 배제되고 퀄컴 스냅드래곤8 엘리트가 탑재됐다. (사진=삼성전자)

◇ 시스템LSI, '엑시노스 부활' 진단의 출발점= 올해 상반기 경영진단실은 DS(디바이스솔루션) 부문 시스템LSI사업부를 대상으로 첫 진단을 실시했다. 시스템LSI 사업부문은 삼성의 비메모리 반도체 핵심 조직으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엑시노스'와 이미지센서 '아이소셀'을 맡고 있다. 

시스템LSI 사업부문이 주목받기 시작은 것은 지난 2019년 이재용 회장이 '시스템 반도체 비전 2030'을 선포하며 133조원 투자 계획을 내놓으면서부터다. 삼성은 이후 대규모 투자를 이어왔지만 실적은 기대에 못 미쳤다.

특히 엑시노스 시리즈는 2020년 이후 갤럭시 S 시리즈 탑재가 줄어들며 적자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실제 올해 출시된 갤럭시S25 시리즈 6종 중 엑시노스가 탑재된 모델은 한종(갤럭시Z플립7)에 불과했다. 

원인은 2023년 발생한 '엑시노스2200' 발열 사태였다. 이 사건으로 인해 소비자 신뢰가 추락했고, 퀄컴 '스냅드래곤'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시스템LSI 사업의 존재감도 약화됐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기준 글로벌 스마트폰 SoC 점유율은 △미디어텍 37% △퀄컴 26% △애플 14% △UNISOC 13% △삼성 6% 순이었다. 삼성은 애플과 달리 자체 스마트폰을 생산함에도 불구하고 5위에 그쳤다.

이 같은 부진 속에서 경영진단실은 엑시노스 사업 구조 전반을 면밀히 들여다봤다. 업계 관계자는 "진단의 초점은 엑시노스의 '경쟁력 회복'에 맞춰져 있었다"며 "AP 구조 개편과 고객사 확보 전략, 기술 협력 방향 등 실질적 개선안이 제시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그 결과, 내년 출시 예정인 '엑시노스2600'은 AI 연산 성능에서 퀄컴 '스냅드래곤8 엘리트' 5세대보다 앞선다는 평가를 받는다. 관련업계에서는 "엑시노스의 명예회복이 가시권에 들어왔다"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 역시 "주요 고객사 플래그십 모델 탑재를 추진하고, 이미지센서는 2억 화소 이상 제품으로 점유율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TV 사업의 활기를 되찾기 위해 라인업을 확장하고 있다. 그러나 시장 상황은 녹록치 않은 편이다. 사진은 올해 초 출시된 삼성전자 55형 OLED TV. (사진=삼성전자)
삼성전자는 TV 사업의 활기를 되찾기 위해 라인업을 확장하고 있다. 그러나 시장 상황은 녹록치 않은 편이다. 사진은 올해 초 출시된 삼성전자 55형 OLED TV. (사진=삼성전자)

◇ VD사업부 진단···'1위 삼성 TV'의 위기= 시스템LSI에 이어 경영진단실의 다음 타깃은 DX(디바이스경험)부문 영상디스플레이(VD)사업부다. 삼성전자는 글로벌 TV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유지하고 있으나, 점점 위태로워지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2025년 3분기 글로벌 TV 시장 점유율은 △삼성전자 17.2% △하이센스 15.4% 등의 순이었다. 양사의 격차는 1.8%p(포인트)에 불과했다. 

중국 업체들의 저가 공세와 글로벌 경기침체에 따른 수요 둔화가 겹치며 격차가 빠르게 좁혀지고 있다. 이에 삼성은 QLED, 마이크로LED 등 프리미엄 제품 중심의 고가 전략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글로벌 경기 둔화로 인해 TV 수요 자체가 줄어들면서 실적 방어에 어려움을 겪었다.

실제 VD사업부는 올해 5월부터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했다. 조직 효율화와 인력 재배치를 추진하면서도, 프리미엄 TV의 수익성을 지켜야 하는 이중 과제에 직면했다. 이번 경영진단은 이런 상황을 반영해 사업 구조 재편과 경쟁력 회복 전략을 위한 컨설팅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전해진다.

◇ 최윤호의 '진단 경영', 컨트롤타워 복귀 신호탄?= 이런 상황에서 경영진단실이 삼성전자 산하로 이동하자, 재계 안팎에서는 단순한 조직 변경이 아니라, 삼성전자 중심의 '관리 체계 복귀'를 의미한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삼성은 2017년 '미래전략실' 해체 이후 그룹 차원의 컨트롤타워를 두지 않고 각 계열사 중심의 자율경영 체제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경영진단실이 다시 삼성전자에 들어오면서, 이 조직이 계열사 전반의 '전략 조율 기능'을 수행하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

특히 최윤호 사장의 역할 확대가 주목된다. 재무통으로 알려진 최 사장은 삼성SDI 대표를 거쳐 현재 삼성전자 경영진단실을 이끌고 있다. 삼성 안팎에서는 "최 사장이 사실상 그룹의 '내부 컨설턴트' 역할을 맡게 됐다"는 평가다. 

향후 이재용 회장이 구상하는 차기 컨트롤타워 체제의 축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이번 개편은 삼성의 '보이지 않는 손'을 다시 삼성전자 내부로 가져온 셈"이라며 "경영진단실이 어느 사업을 어떻게 진단하느냐에 따라 삼성전자의 사업 우선순위와 인사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서울파이낸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