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5대 시중은행에서 기업대출이 50조원 넘게 불어난 가운데 연체율 악화 등 건전성 우려가 계속되고 있다. (사진=서울파이낸스DB)
올해 5대 시중은행에서 기업대출이 50조원 넘게 불어난 가운데 연체율 악화 등 건전성 우려가 계속되고 있다. (사진=서울파이낸스DB)

[서울파이낸스 신민호 기자] 정부가 연이어 발표한 '6·27'·'9·7' 가계대출 규제 대책의 여파로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이 줄기 시작했다. 수도권 집값 상승과 대출 급증을 억제하는 효과가 나타나고 있지만, 결혼·자녀 교육 등 주거 이전 수요가 막힌 실수요자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지난 11일 기준 가계대출 잔액은 763조702억원으로 8월 말보다 1717억원 증가하는 데 그쳤다. 하루 평균 증가액은 156억원으로 8월(1266억원)의 8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한 달 새 524억원 줄어들며, 월간 역성장이 확정되면 지난해 3월 이후 1년 반 만에 첫 감소세를 기록하게 된다.

대출 축소는 전세자금에도 직격탄이 됐다. 수원 아파트를 팔고 목동으로 이사하려던 한 40대 직장인은 주담대 상한 축소와 전세대출 규제에 막혀 매매는커녕 전세 갈아타기마저 무산됐다.

규제 이전에는 최대 9억5000만원까지 대출이 가능했지만, 상한 조정으로 추가 대출액이 3억원으로 급감했고, 뒤이어 1주택자 전세대출마저 2억원으로 묶이자 계획을 접어야 했다.

예비부부와 신혼부부도 비슷한 상황이다. 송파구 아파트 매입을 추진한 대기업·병원 맞벌이 부부는 규제 전 7억7000만원까지 가능했던 대출이 6억2000만원으로 줄며 1억5000만원 이상의 자금 공백에 직면했다.

강동구 전세에서 내 집 마련을 시도했던 30대 부부 역시, 12억원 아파트 매수에 필요한 대출 한도가 8억4000만원에서 6억5000만원으로 감소해 결국 거래를 포기했다.

은행권에서는 이런 변화가 단순히 투기수요 억제가 아니라 실수요자의 주거 계획에도 큰 타격을 주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아이 교육이나 결혼 등을 위해 세운 계획이 몇 달 사이 힘없이 무너지고 있다"며 "모든 차주를 집값 상승의 원인으로 몰아 제재하는 정책이 맞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다만 금융당국은 가계부채 관리 기조를 완화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수도권 집값 안정과 가계부채 리스크 관리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며 "불가피하게 실수요자 불편이 따르더라도 금융 안정이 우선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향후 주택시장에 미칠 파급효과에 주목하고 있다. 급격한 대출 억제는 단기적으로 거래 위축과 가격 조정을 불러올 수 있지만, 실수요자의 탈출구가 막히면 전세난 심화와 지역별 수급 불균형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특히 은행 대출 의존도가 높은 중산층과 청년층이 시장에서 이탈할 경우, 주거 불평등 심화라는 또 다른 부작용을 낳을 가능성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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