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신민호 기자] 이재명 정부가 우리 경제의 저성장 고착화를 탈피하기 위해 금융 체질 개선에 나섰다. 금융의 본질인 중개기능을 활용, 부동산에 묶여 있는 유동성을 증시·벤처·혁신산업 등 생산적 영역에 투입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를 통해 150조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 조성과 코스피 5000 등의 목표가 제시됐으며, 궁극적으로 1%대로 추락한 잠재성장률을 3% 수준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부동산 늪에 빠진 韓 경제···1%대 잠재성장률에 갇히다
지난달 22일 정부는 '새정부 경제성장전략'을 통해, 각 산업별 정부의 성장 로드맵을 공개했다. 해당 로드맵에는 AI 대전환 등의 혁신방안과 지역균형성장방안 등이 거론됐다.
이날 핵심 화두는 단연 '생산적 금융'이었다. 정부는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인해 민간자금이 부동산에 과도하게 편중됐다고 지적하며, 이러한 자금흐름을 주식시장이나 벤처 등 경제성장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생산적 영역으로 돌리겠단 포부를 밝혔다.
비효율적인 자원 분배에 대한 지적은 이전부터 나왔다. 작년 말 한은은 향후 5년간 우리나라의 연평균 성장률로 1.8%를 예상했으며, 2030년에 들어선 1% 초반까지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처럼 잠재성장률이 낮아지게 된 원인으로 한은은 자원 분배의 비효율성을 지목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작년 3월 말 기준 국내가구의 자산 중 실물자산 비중은 75.2%에 달한다. 2021년 말 기준 미국(28.5%)과 일본(37.0%) 등 주요국에 비해 매우 높은 수준이다.
통상 실물자산은 자동차 정도를 제외하면 주택이나 토지, 건물 등 부동산으로 구성된다. 부동산으로의 자산 쏠림은 기업에는 토지·건물 등 고정비 상승을 유발시켜 투자와 고용을 위축시킨다. 가계에는 이자 등 금융비용과 주거비 상승으로 이어져 소비를 위축시키며, 부동산 보유 유무에 따라 부의 격차를 심화시킨다.
특히 국내 부동산 가격이 급등한 배경엔 과도한 투기수요가 자리한다. 안정성이 우선시되는 금융시스템 상 담보가치가 확실한 부동산 대출이 우선시됐으며, 이는 실제 생산활동 중인 기업이나 산업에 가야할 자본을 빼앗아 성장을 위축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
◇'생산적 금융' 천명한 정부···150조원 들여 성장동력 구축
이를 뒤집기 위해 정부는 생산적 금융으로의 전환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정부가 추진 중인 '국민성장펀드'가 대표적이다. 10일 대통령실은 보고대회를 통해 150조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 운영 방향을 발표했다.
해당 펀드는 부동산에 쏠린 유동성을 인공지능(AI)이나 반도체 등 미래 전략산업으로 돌려 향후 20년 간 한국 경제를 이끌 새로운 성장동력을 구축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첨단 전략산업, 벤처·스케일업·R&D, 지역 성장 등 세개 축을 중심으로 운용된다.
재원은 정부가 75조원을 책임지는 '첨단전략산업기금'에 민간과 국민자금 75조원을 더해 마련한다. 자금 집행은 △직접 지분투자(15조원) △인프라 투·융자(50조원) △간접투자(35조원) △초저리 대출(50조원) 등으로 나뉜다.
나아가 정부는 기업과 함께 이달 중 '초혁신경제추진단'을 출범해, 해당 펀드가 투자를 통한 자급 공급으로 연결되도록 정책과 규제, 세제부터 금융과 인력 등의 지원을 아우르는 토털 패키지를 가동할 방침이다.
세부적으로 프로젝트별 20개 추진단을 꾸릴 예정이며, 각 추진단은 기업과 주관부처·관계기관·기재부 등 20여명으로 구성한다. 지방자치단체도 지역균형성장과 관련된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다. 프로젝트별 로드맵 등 세부 추진계획은 오는 10~11월 완성될 예정이다.
이날 회의에서 논의된 프로젝트는 △차세대 전력 반도체(SIC) 기술자립률을 2030년까지 20%로 상승 △화물창(LNG 저장탱크) 기술의 국산화 △그래핀의 응용기술 개발과 사업화 △최고 수준의 특수탄소강 부문 기술력 확보 △K-식품 수출 경쟁력 제고 등 5개다.
이재명 대통령이 공약한 '코스피 5000 시대'라는 상징적 목표도 같은 맥락이다. 단순 주가지수 상승이 아니라, 기업가치 제고와 자본시장 신뢰 회복을 통해 장기적으로 우리 경제의 기초체력을 키우겠다는 전략적 포석이다.
이뿐만 아니라 정부는 상법개정안과 배당소득 분리과세 등 친자본시장적 정책 등을 추진하고 있다. 단적으로 이 대통령 취임 직전인 6월 3일부터 9월 10일까지 코스피지수는 22.8%나 급등했으며, 이날 코스피 지수는 장중 3317.7을 기록하며 역대 최고치를 경신키도 했다.
권대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국민성장펀드는 시중자금의 물꼬를 생산적 영역으로 바꾸는 '금융대전환'의 대표 과제로서 의미가 있다"며 "은행의 자금 중개 기능을 혁신하고, 초대형 투자은행(IB)을 키우겠다. 나아가 모험자본과 코스닥 시장을 활성화해 실물경제와 금융이 함께 성장하는 구조를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대전환에 대한 우려도···정권 교체·금융권 부담 '이중 리스크'
반면 생산적 금융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대표적으로 정책펀드에 대한 실효성이다. 과거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펀드'나 박근혜 정부의 '통일펀드', 문재인 정부의 '뉴딜펀드' 등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정 과제를 뒷받침하는 정책펀드가 조성됐지만, 실질적인 성과 없이 흐지부지된 사례가 반복됐다.
운용 측 입장에선 정권이 바뀔 경우 외면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측면에서 장기운용 리스크가 너무 크다는 평가다. 최악의 경우 국민들의 노후자금을 운용하는 연기금이 정책 성과를 위한 볼모로 잡힐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권의 구조적 부담이 크다는 점도 우려요인이다. 이미 은행을 비롯한 금융사들은 가계부채 관리와 건전성 규제 등으로 영업과 자본여력에 제한이 걸린 상태다. 이 가운데 공적 펀드에 대한 출자나 초저리 대출 공급이 중장기적으로 금융사의 리스크와 자본비용 부담을 늘릴 것이란 관측이다. 민간 부문의 위험 감수 성향을 높이는 금융문화와 제도적 혁신도 병행돼야 한다.
설상가상 정부의 포용적 금융 요구에 배드뱅크나 서민안정기금 등에 출연하면서 금융사의 자율적인 투자여력이 줄어든 상태다. 최악의 경우 정부의 생산금융 청구서에 끌려다니면서, 주주들의 이익 훼손될 것이란 비판도 나온다.
결국 정부가 제시한 생산적금융으로 전환은 단순 유동성 이동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자금이 투입된 산업이 성과를 내기 위한 정책적 지원과, 금융권이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적 안전망이 병행돼야 한다.
생산적 금융이라는 정부의 포부가 정치적 슬로건에 머물지 않고, 한국 경제의 실질적 체질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이 대통령은 "모험성은 시장에서 혼자 살아남기 어렵다는 점을 잘 알기 때문에, 후순위 투자 등 재정의 마중물 역할을 통해 민간자금을 이끌겠다"며 "모험·혁신 투자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벤처생태계 자금 지원, 초장기 대규모 인프라 지원 등에 자원이 사용될 수 있도록 정책 방향을 바꾸겠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