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현실(VR) 헤드마운트 디스플레이 제조사 '오큘러스'로 이름을 알린 팔머 럭키가 인공지능(AI)·소프트웨어 기반 방산 스타트업 안두릴 인더스트리를 통해 미국 방위산업 생태계를 뒤흔들고 있다. 파격적인 그의 무기체계 혁신은 대한항공, HD현대중공업, LIG넥스원 등과의 협력 확대를 계기로 K방산 전반에도 빠르게 번지는 모습이다. 지능형 전력 운영으로 대표되는 변화의 흐름이, 전통적인 무기 개발 방식에 어떤 균열을 낼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편집자 주
[서울파이낸스 문영재 기자] 팔머 럭키는 미국 방산 업계 판도를 근본부터 흔들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방산 스타트업 안두릴을 이끌며, 기나긴 시간과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기존 무기 개발 방식의 구조적 한계에 의문을 제기한다.
대신 AI와 소프트웨어를 중심에 두고 설계부터 생산까지 아우르는 포괄적 개발체계를 앞세워 '빠르게 만들고, 빠르게 배치하는'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접근법은 미국 국방부뿐 아니라 한국 등 주요 동맹국에 적잖은 파장을 낳는 모습이다.
처음부터 럭키가 방산 전문가였던 것은 아니다. 10대 시절부터 VR 개발에 몰두한 그는 2012년 VR 헤드마운트 디스플레이 '오큘러스 리프트'를 선보이며 주목받았고, 2014년 이를 개발한 오큘러스 VR을 페이스북에 23억달러에 매각하며 성공한 발명가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그의 관심은 일찍이 국가 안보로 향해 있었다. '민간 기술이 국방 기술보다 앞서는 것은 위험하다'는 문제의식을 품고, 2017년 AI·소프트웨어 기반 방산 스타트업 안두릴을 설립한 것이다. '더 빠르고, 더 똑똑하고, 더 싸게 싸울 수 있는 체계를 만들자'는 목표는 이후 안두릴 정체성을 규정짓는 원칙이 됐다.
안두릴은 설립 이후 단기간에 미국 방산 업계의 핵심 축으로 떠올랐다. 럭키가 구상한 AI 지휘통제 플랫폼 '래티스 운영체제(OS)'를 발판 삼아 미 국방부와 국토안보부는 물론 영국·호주 국방부 등을 고객으로 확보하며 존재감을 키웠다.
그 결과 기업가치는 지난해 300억달러를 돌파, 출범 첫해 대비 300배가 넘는 고속 성장을 달성했다. 래티스 OS는 드론, 센서 등 다양한 전장 자산을 하나의 체계로 통합해 운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특히 실시간 데이터 수집·분석과 자산 배치를 자동화함으로써, 전장 대응 속도를 획기적으로 끌어올렸다. 전쟁 양상을 좌우하는 주된 변수가 물리적 무기에서 소프트웨어로 이동하고 있음을 상징하는 대표 사례로 평가된다.
래티스 OS를 기반으로 안두릴은 육·해·공 전 영역 무기체계 자율화도 실현했다. 지상에서는 전술 드론과 외부 센서망을 연계해 위협을 자동 분류하고 대응까지 수행하는 방어 체계를 구축했으며, 이는 현재 미군 기지와 국경 등 고위험 인프라에 이미 실전 배치된 상태다.
해상에서는 AI 컴퓨터 비전과 머신 러닝 기술을 적용해 선박의 동선·속도를 분석하고 위협 여부를 판단한 뒤 자동 경보를 발령하는 체계를 운용 중이다. 공중에서는 자율 요격체를 통해 탐지부터 격추, 회수까지 전 과정을 수행하는 기술을 구현, 럭키가 강조해온 비용 효율성과 작전 유연성이라는 목표를 실현하고 있다.
이 같은 기술 고도화를 가능케 한 배경에는 조직문화에 대한 럭키의 철학이 자리한다. 그는 "수준 높은 기술자, 전장을 경험한 군인, 창의성을 갖춘 인재 등이 유기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면, 기존의 느리고 경직된 개발 환경에서 벗어나 빠르고 정교한 차세대 무기체계를 구현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신속성과 유연성, 그리고 창의성 위주의 개발 구조가 안두릴이 기존 업체들과 구별되는 경쟁력이라는 게 그의 시각이다.
럭키는 이러한 기조를 바탕으로 고체로켓모터(SRM) 분야로도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SRM은 미사일 추진체의 핵심 부품으로, 정밀한 연료 혼합과 고온·고압 제어 기술이 요구되는 전략 자산이다.
안두릴은 이를 생산할 시설을 미국 미시시피주에 세우고, 최근 양산 체계 구축을 완료했다. 내년까지 연간 6000기 이상의 생산 능력을 확보하는 것이 목표다. 주목할 점은 기존 군수 생산 공장에서 볼 수 없는 자동화 공정 기반 원피스 플로우 모델 도입을 통한 효율·품질 향상이다. 공정별 모듈화를 통해 다단계 작업을 병렬로 수행하고, 디지털 추적 시스템으로 안전성을 확보하는 것이 핵심이다. 알루미늄 리튬 합금 연료 등 신기술을 자체 개발해 적용한 점도 눈길을 끈다.
안두릴 측은 "기술적 도약을 토대로, 미 육군 포병용 SRM뿐 아니라 스웨덴 방산 업체 사브의 차세대 유도다목적탄용 모터 설계까지 협력 범위를 넓히고 있다"며 "미국과 동맹국의 방산을 뒷받침할 차세대 추진체 생산 허브로 거듭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럭키는 기술 사업 확장을 넘어,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시장 공략에도 본격 착수했다. 최근 비공개 방한한 그는 대한항공, HD현대, LIG넥스원 등 주요 방산 업체 경영진과 잇따라 회동하며 협력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7일 주한미국대사관 주관으로 열리는 안두릴 한국 지사 설립 기념식에도 참석할 예정이다. 앞서 대만을 방문한 자리에서는 그는 "한국 등 동맹국들이 속한 인도·태평양 지역이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첨단 방산 시장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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