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면세점 인천공항점 제2여객터미널 주류 매장. (사진=신라면세점)
신라면세점 인천공항점 제2여객터미널 주류 매장. (사진=신라면세점)

[서울파이낸스 박소다 기자] 인천국제공항공사와 면세업계 간 임대료 인하를 둘러싼 갈등이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여행객 수는 회복됐지만 면세점 매출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서 업계 수익성이 악화된 상황에서, 신라와 신세계면세점이 인천공항에 임대료 40% 인하를 요구했으나 공사는 이를 거부했다. 갈등이 이어질 경우 향후 면세점 운영과 경쟁력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4일 업계에 따르면 신라·신세계면세점은 2023년 인천공항 면세점 입찰에서 사업권을 따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여행객 수가 증가하면 이전 수준의 높은 매출이 회복될 것으로 기대돼 경쟁이 치열해졌고, 신라는 최저 수용 금액보다 최대 68%, 신세계는 최대 61% 높은 금액을 써냈다. 이 결과 1~4구역은 신라와 신세계가, 5구역은 현대백화점이 각각 사업권을 확보했다.

문제는 공사가 해당 심사에서 임대료 산정 방식을 '고정 임대료'에서 '여객 수 연동' 방식으로 전환하면서 발생했다. 이는 여객 수가 많을수록 임대료가 높아지는 구조다. 당시 공사는 여행 수요 회복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예상을 깨고 여행객 수는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빠르게 회복됐지만, 매출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국내 면세점 매출 총액은 지난해 기준 14조2200억 원으로, 2019년 24조8600억 원에 비해 거의 절반 가까이 감소했다. 경기 침체와 고환율 등으로 인해 소비자들이 면세점을 찾지 않게 된 영향이다.

공사 발표 자료를 보면 올해 월평균 여객 수는 약 300만 명이며, 신라와 신세계면세점이 제시한 객당 수수료(약 1만 원)를 기준으로 하면 두 업체의 월 임대료는 각각 약 300억 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연간 임대료만 약 3600억 원에 달하는 셈이다. 계약 기간은 2032년까지다.

매출 감소와 임대료 증가는 인천공항 면세점들에게 이중고로 작용했다. 실제로 지난해 신라면세점과 신세계면세점은 각각 697억 원, 359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올해 1분기에도 신라면세점은 50억 원의 영업손실을 내며 적자로 돌아섰고, 신세계면세점 역시 23억 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이에 두 면세점은 임대료가 매출 대비 과도하다고 판단해 법원에 임대료 조정을 신청했다.

반면 공사는 이 같은 요청을 거부했다. 지난 6월 말 열린 첫 조정기일에서 공사와 두 면세점은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공사 측은 △차임 감액 요건 미충족 △입점 사업자 간 형평성 문제 △입찰 공정성 훼손 △향후 입찰 시장에 미칠 부정적 영향 등을 이유로 조정안 수용이 어렵다는 입장을 법원에 제출했다.

인천공항공사 관계자는 "당시 면세점 사업권은 공개 경쟁입찰 방식이었고, 치열한 경쟁 끝에 낙찰된 것이기 때문에 조건을 변경할 경우 다른 입찰자의 반발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며 "면세점 측이 추가 자료를 제출하더라도 조정안을 수용할 의사가 없기 때문에 다음 조정기일에는 불출석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음 조정기일은 오는 8월 14일로 예정돼 있다.

이런 가운데 일각에서는 면세점들이 향후 인천공항에서 철수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롯데면세점은 2023년 당시 입찰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고, 이후 인천공항에서 철수해 시내 면세점과 해외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롯데면세점은 2017년 중국의 사드(THAAD) 보복으로 단체 관광객 방문이 급감하자 인천공항에 세 차례 임대료 조정을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현재 인천공항의 비항공 수익은 전체의 65%를 차지하며, 이 중 면세점 임대료는 약 60%로 핵심 수익원이다. 주요 면세점이 철수할 경우 인천공항의 수익 구조와 글로벌 허브공항으로서의 위상이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해외 주요 공항들이 임대 조건을 유연하게 조정하고 있다는 점도 면세업계가 인천공항공사의 경직된 태도를 비판하는 배경이다. 태국공항공사는 입점 업체와 임대료 재협상을 검토 중이며, 싱가포르 창이공항과 홍콩국제공항은 매출 연동제나 조건 완화를 통해 보다 유연한 임대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중국 면세점 등과의 시장 경쟁력도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익명을 요청한 한 면세점 업계 관계자는 "임대료 조정은 단순히 공항과 면세점 간 계약 조건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공항 산업의 지속 가능성과 경쟁력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며 "작년에도 면세업계에서 대규모 구조조정이 있었고, 현재 업황이 어려운 만큼 공사에서도 현실적인 타협점을 마련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국내 면세점 업계는 현재 중국의 무비자 단체 관광 확대 정책에 기대를 걸고 있다. 신라면세점은 중국 최대 면세기업 CTG와 협력을 강화하며 단체 관광객 유치에 나섰고, 신세계면세점 역시 고부가가치 외국인 단체(MICE) 유치 및 뷰티 관광 연계 프로그램에 집중하고 있다. 다만 이는 중장기적 전략으로, 당장의 임대료 부담 완화와는 별개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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