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주재로 1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경제안보전략TF 회의가 열렸다. 정의선 현대차(왼쪽부터), 최태원 SK, 이재용 삼성전자, 구광모 LG 회장이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주재로 1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경제안보전략TF 회의가 열렸다. 정의선 현대차(왼쪽부터), 최태원 SK, 이재용 삼성전자, 구광모 LG 회장이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울파이낸스 여용준 기자] 3월 정기 주주총회 시즌이 마무리된 가운데, 기업들이 올해 대내외 경영 환경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신성장 사업으로 활로를 모색하려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올해 우리 경제계에서는 신성장 사업을 발굴하고 투자하는 움직임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9일 열린 삼성전자 제56기 정기 주주총회에서 한종희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은 "지난 한 해는 글로벌 지정학적 리스크가 지속되고 국내 정치 불확실성이 심화되면서 반도체 경쟁이 격화하고 IT 산업이 급변하는 등 경영이 어려웠다"며 "어려울수록 기본으로 돌아가 인재 경영과 회사 경영 철학에 집중하고, 초격차 기술 리더십을 바탕으로 재도약의 기틀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AI 성장 동력을 확보하고 로봇, 애드테크, 차세대 반도체 분야에서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겠다"고 덧붙였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말 레인보우로보틱스의 최대 주주 지위를 확보하며 로봇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또한, 자체 개발한 생성형 AI인 '삼성 가우스'를 고도화하고 세트 부문 전반에 AI를 적용하고 있다.

삼성전자 주총 이틀 전인 17일에는 계열사 임원들을 대상으로 한 세미나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메시지가 공개되기도 했다. 이 회장은 임원들에게 "삼성은 지금 죽느냐 사느냐 하는 생존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 경영진부터 통렬하게 반성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당장의 이익을 희생하더라도 미래를 위해 투자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위기 자체가 아니라, 위기에 대처하는 자세"라며 임원들에게 '독한 삼성인'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크리스털 패를 제공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지난달 26일 열린 ㈜LG 제63기 정기 주주총회에서 "2024년은 글로벌 통상 마찰 및 지정학적 갈등이 심화되는 가운데, 공급망 불안정, 고물가·고환율이 지속되며 대내외 경영 환경의 불확실성이 한층 더 심화된 해"라고 평가했다.

구 회장은 올해 신성장 동력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내실 있는 투자와 기술 혁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주력 사업의 시장 지배력을 보다 확고히 할 뿐만 아니라 AI, 바이오, 클린테크 등 미래 분야에서 차별적인 가치를 창출하며 사업 포트폴리오의 미래 성장 기반을 견고히 다지겠다"고 말했다.

특히 현재 그룹 내 주력 사업인 배터리를 직접 언급하며 "배터리는 미래의 국가 핵심 산업이자 그룹의 주력 사업으로 반드시 성장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를 위해 시장과 기술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차세대 배터리 및 공정 기술 등에서 혁신 방안을 지속적으로 마련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한국을 초대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SK㈜ 제34기 정기 주주총회에서 장용호 SK㈜ 최고경영자(CEO)는 "SK㈜는 변동성이 높은 대외 여건 속에서도 기업의 생존을 담보하고 지속적인 성장과 주주 가치 상승을 위해 체질을 강화하고 있다"며 "2025년에도 적극적인 리밸런싱과 본원적 경쟁력 강화를 통해 기업 가치를 제고하는 동시에 재무 구조를 빠르게 개선하고 신성장 투자를 위한 기반을 마련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주총에 직접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최태원 SK그룹 회장 역시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자격으로 '불확실성'을 강조했다. 그는 "불확실성이 커지면 기업이 결정을 내리기 어려워지고, 결정을 가능한 한 미루게 된다"며 "'초불확실성의 시대'가 가장 큰 적"이라고 말했다. 최 회장은 이 같은 위기에 대한 대책으로 △새로운 경제 모델 △대한민국의 포지셔닝 재설정 △기업과 정부 간 '원팀' 구축 등의 전략을 제시했다.

현대차의 첫 외국인 CEO인 호세 무뇨스 사장은 글로벌 불확실성 확대에 대해 현지화 전략으로 활로를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제57기 정기 주총에서 "권역별 최적화 전략으로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고 수익성을 제고하겠다"며 "미국 내 현지화 전략을 통해 어떠한 정책 변화에도 유연하게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유럽 및 중동 시장에 대해서도 현지 맞춤형 전략을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유럽에서는 전기차 신모델 출시와 규제 대응 엔진 탑재 등을 통해 환경 규제에 적기 대응할 계획이며,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현지 파트너사와 함께 반조립 부품(CKD) 생산 기지를 구축해 중동 시장을 적극 공략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현지화 전략과 함께 신기술 투자에 집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미국 조지아주 엘라벨에서 열린 '현대자동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준공식에서 향후 투자 계획과 관련해 "부품 및 부품에 사용되는 철판 등에 대한 투자가 이루어질 것이며, 로보틱스와 미래 항공 모빌리티(AAM) 등 신기술에 집중적으로 투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공통된 메시지는 올해 기업들이 체감하는 경제 상황이 예년보다 더욱 암울하다는 점에서 비롯됐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50인 이상 기업 508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 기업 중 96.9%가 올해 경제 위기가 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응답 기업 중 22.8%는 올해 경제 위기가 1997년 IMF 외환위기보다 더 심각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상호 관세 발표로 인해 통상 위기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경제계에서도 정부와 협업해 위기 극복에 총력을 다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기존의 관계 부처 중심 대외 경제 현안 간담회를 기업 총수들이 참여하는 '경제안보전략 TF'로 개편해 가동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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