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이건희 컬렉션과 가석방
[데스크 칼럼] 이건희 컬렉션과 가석방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국 노스캐롤리나주립미술관. 이곳에 라파엘로·보티첼리·로댕 등 거장의 작품이 있다. 어떻게 우리에겐 생소한 롤리(주도) 같은 동네에 거장의 작품들이 자리할 수 있었을까. 이곳엔 아프리카 작가 중 세계적 지명도를 갖고 있는 아나추이 작품도 있다. 그는 재활용과 재사용으로 유명하고 제국과 식민지의 권력 관계, 대서양의 삼각 무역 문제에 천착한다.

1956년 4월 개관한 이 미술관은 미국에서 국가기금을 사용해 설립된 최초의 미술관이기도 하다. 1947년 주 의회는 주민들을 위해 100만달러어치의 미술품을 구입했다. 당시 세비로 이런 일은 매우 이례적인 일인데 그 돈으로 유럽 및 미국 회화와 조각 139점을 구입했다. 이에 더해 자선사업가 크레스 재단의 후원으로 소장품의 질적·양적 수준을 높였다. 칸토어 재단도 로댕 조각 30점을 주립 미술관에 기증했다.

고 이건희 회장의 소장 작품 2만3000여 점이 조건없이 기증됐다. 이에 국립현대미술관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연일 매진이 될 정도로 인기가 높다. 노스캐롤리나주립미술관 사례와 달리 이건희 미술관은 지자체 반발에도 불구하고 서울에 건립될 예정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3일 오전 풀려났다. 대법원이 원심을 파기하고 이 부회장에게 징역형을 다시 선고했고 이 부회장이 수감된지 7개월여 만의 일이다. '가석방'으로 사면 단계까진 아니지만 취업제한이 풀리는 수순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법무부 장관은 이에 대해 아직 검토 조차 안했다며 선을 그었지만 일각의 비판 때문인지 수위 조절 아니냐는 의구심이 여전히 나온다.

문 대통령은 공약에 ‘5대 중대 부패 범죄(뇌물·알선수재·알선수뢰·배임·횡령)’에 대한 양형 강화와 대통령 사면권 제한 내용을 담은 바 있다. 이 부회장은 뇌물·배임·횡령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거나 재판이 진행 중이다. 현재 1심이 진행 중인 ‘불법승계’ 사건 재판에서 자본시장법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부정거래·시세조종) 등 혐의를 받는 이 부회장은 범행을 부인하고 있다.

재벌의 죄의 역사는 일반인 죄와 다르게 처리되면서 국민적 비판을 받았다. 어느 정권이든 돈과 자본 앞에 약한 것 아니냐는 국민들 실망이다. 이번 이재용 부회장 가석방도 일정 기준을 충족시킨 것으로 당국은 해명하고 있지만 과거 이런 사례는 없었다는 게 비판적 시각이다.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는 상식이 통하지 않기에 국민들은 허탈하다. 이재용 부회장 사례만의 문제가 아닌 재벌의 죄와 관련해 극복하지 못한 사례다. 정권 말기에 있어 자칭 촛불 정부라고 부르는 이 정권도 자본 앞에 소용이 없구나 라는 실망과 탄식이 여기저기 쏟아진다.

삼성 측은 이재용 부회장의 면죄 및 감형을 위해 다방면의 노력을 해왔다. 그중 하나가 이건희 컬렉션이다. 무려 시가로 10조원에 달하는 미술품을 기부했다는 기사가 여기저기 나온다. 대자본으로 축적 가능한 미술품이 일반에 대거 공개돼 국민들이 문화 자산을 공유할 수 있게 한 것은 칭찬할 만한 일이다.

이러한 삼성의 노력 외 국민 경제적 기여 등이 이재용 부회장의 죄를 낮춰줄 필요충분 조건이 형성됐다고 할 수 있을까. 가석방 업무지침에 따르면, 재범 가능성을 비롯해 범죄 동기와 내용, 공범 관계, 건강 상태 등 다각적인 심사가 진행된다.

이전부터 다른 재벌 총수들도 감옥에 안가거나 구속을 면하기 위해 비슷한 노력들을 해왔다. 감옥은 그들에게 기피해야 할 일순위 대상. 참모와 측근들은 묘수를 짜내기 위해 혈안이다.

총수 개인의 기업 지배력 확보를 위해 계열사 임직원들이 한 몸같이 움직여 국가적으로는 수천억의 손실을 가져온 것이 작은 사안인가. 관련 사건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이 삼성에 유리하도록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에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고, 그로 인해 국민연금은 수천억 원 손실을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판결문에 따르면 삼성전자 대외협력 사장,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실장 및 차장이 함께 등장한다.

그래서 가석방 등 실질적으로 죄를 낮춰주는 데 필요한 판단 항목이 진정성이다. 다시 되풀이될 일은 굳이 죄를 사할 일이 없다. 즉 ‘재범’ 가능성이 가장 큰 판단 사안이 돼야 한다.

삼성의 경우 총수 위법 행위를 방어할 준법감시 시스템을 갖추지 못해 재범 위험성이 있다는 주장에 설득력이 있는 이유다. 또 가석방이 마치 경제 기여도 등을 따라 거래하듯이 이뤄진 것도 문제다.

앞서 재판부는 삼성에 뒤늦게 만든 준법감시위는 전문심리위원단 점검 결과 실효성이 미흡한 것으로 평가하고 이 부회장에 집행유예 없이 실형을 선고했다. 재벌에 대한 무차별적인 증오의 발현은 안되지만, 이 부회장 한 사람을 위해 수많은 사람이 이용해야 하는 가석방 등 제도의 공정성도 흔들려선 안된다는 지적을 새겨들어야 하는 이유다.

편집국장


관련기사

이 시간 주요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