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화학 대산공장 NCC (사진=LG화학)
LG화학 대산공장 NCC (사진=LG화학)

[서울파이낸스 서종열 기자] 정부가 지지부진한 석유화학 산업 구조 개편에 대해 "연말까지가 골든타임"이라며 강도 높은 압박에 나섰다. 그러나 업계는 구체적인 인센티브나 정책 지원 없이 속도만 강조하고 있다며 현실적인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4일 열린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일부 산업단지와 기업의 사업재편이 여전히 지지부진하다"며 "이대로라면 업계의 진정성에 대한 시장의 의구심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업계 스스로 약속한 시한이 얼마 남지 않은 만큼 속도전을 펼쳐달라"며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정부와 채권금융기관도 조력자로만 남기 어렵다"고 경고했다.

정부는 충남 대산산단을 '석유화학 구조개편 1호 모델'로 삼아, 해당 사례를 중심으로 다른 산업단지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겠다는 방침이다. 구 부총리는 "먼저 사업재편을 추진하는 산단과 기업에는 지원이 신속히 이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 "지원책 빠진 채 압박만···현실과 괴리" = 정부가 공개적인 압박에 나섰지만 석유화학업계는 냉담한 반응이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구체적 지원 없이 속도만 재촉한다"는 불만이 나올 정도다.

'1호 모델'로 낙점된 대산산단의 HD현대케미칼과 롯데케미칼도 사업재편 방향성에 대해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기관에 의견을 타진했을 뿐, 최종안을 마련하지 못한 상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가 업계 이견을 조율해줄 인센티브나 세제 혜택 없이 압박만 강화하고 있다"며 "사업재편은 결국 누군가의 희생이 따르는 문제인데, 그 부담을 기업만 지라는 식"이라고 토로했다.

'속도전'이 기대됐던 울산산단도 지지부진하다. SK지오센트릭, 에쓰오일, 대한유화 등 주요 기업이 컨설팅 용역 발주를 예고했지만, 아직 업체 선정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여수산단 역시 LG화학, GS칼텍스 등 참여 기업들이 방향성을 잡지 못한 채 논의만 이어가고 있다.

석유화학사 한 고위 관계자는 "정부가 '재편안을 빨리 내라'고 하지만, 경영진들이 보기에 구체적인 유인책이 없다"면서 "세제 혜택이나 규제 완화 등 실질적 보상이 제시돼야 움직임이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열린 2025년 종합 국정감사에서 발언하는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사진=연합뉴스)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열린 2025년 종합 국정감사에서 발언하는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사진=연합뉴스)

◇ 정부 "대산처럼 속도 내라"···맞춤형 지원 약속 = 정부는 "이번 조치는 단순한 압박이 아닌 경고이자 기회"라는 입장이다. 정부 측 한 관계자는 "금융기관 입장에서 보면 당장 여신을 회수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라며 "그렇게 되기 전에 대산산단처럼 선제적으로 대응하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또한 정부는 업계의 요구를 일부 수용해, 공정거래법·세제 관련 지원책을 검토하고 맞춤형 지원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사업재편을 선제적으로 추진하는 기업에는 세제 혜택과 정책금융 지원을 우선 배정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석유화학 업계는 그러나 "정부가 '속도전'을 강조하기보다 중간 점검을 통해 현실적 조정에 나서는 모습이 필요해 보인다"는 입장이다. 석유화학업체들마다 사업구조와 이해관계가 다른 만큼 중간 점검을 통해 기업들의 애로사항을 들어보고 중재자 역할에 나서야 한다는 것. 한 관계자는 "현재까지의 논의를 바탕으로 정부가 중재자 역할을 한다면 산단별 협의가 탄력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정부와 석유화학 업체들간의 눈치싸움은 연말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정부의 경고가 산업 현장의 변화를 이끌 전환점이 될지, 아니면 정책 피로감만 키울지 주목된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파이낸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