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산업재해(산재) 사망률 1위다. 이중에서도 최다 사고율을 기록하는 산업군은 단연 건설업이다. 실제 건설현장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근로자 사망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출범 이후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업계를 압박하고 있다. 이에 서울파이낸스는 5회에 걸쳐 정부 기조가 건설산업과 현장에 미칠 영향과 반복되는 산재 사고의 근본적인 원인을 분석하고 주요 건설사들이 시행하는 안전 관리 대책 사례를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서울파이낸스 오세정 기자] 건설 현장이 중대재해 포비아에 휩싸였다. 경기 침체로 업황이 악화한 가운데 이재명 정부가 반복적인 중대재해를 '미필적 고의'로 규정하며 고강도 규제로 전방위 압박에 나서면서다.
대형 건설사의 영업이익률이 3% 안팎에 불과한 상황에서 과징금 등 경제적 처벌이 가중되면 산업 위축을 넘어 몰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건설사들은 사망사고 한 건에도 존폐가 흔들릴 수 있다며 신중한 대응에 나서고 있다.
22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고용노동부는 지난 15일 '사고 없는 일터, 안전 대한민국'을 목표로 관계부처 합동 '노동안전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핵심 내용은 △연간 3명 이상 사망사고 발생 법인에 영업이익 5%(하한 30억원) 이내 과징금 부과 △건설업 영업정지 요건 연간 다수 사망사고로 확대 △3년간 영업정지 2회 처분 후 추가 사고 시 건설업 등록 말소 △공공입찰 참가 제한 기준 강화 등이다.
적정 공사기간 산정 의무화, 소규모 사업장 안전장비 구입 지원 등 제도 개선안도 포함됐으나, 대부분 중대 산재 발생 시 처벌 수위 강화에 초점을 맞췄다. 특히 제재 조항은 산재 사망사고 비중이 높은 건설업을 직접 겨냥한 것으로, 2023년 국내 건설업 사고사망만인율은 OECD 10대국 중 최고 수준인 1.59퍼밀리아드로, 10대국 평균 0.78을 두 배 이상 웃돌았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도 2023년 2분기까지 건설업 사망 근로자는 138명으로 전체의 48%를 차지한다. 올해 현대엔지니어링, 대우건설, GS건설, 포스코이앤씨, 롯데건설, DL건설 등에서 연이어 중대재해가 발생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산재 사망사고 근절을 위해 관련 부처에 강력한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취임 이후 줄곧 강경 입장을 밝혀온 이 대통령은 최근 국무회의에서 "후진적 산재 공화국을 뜯어 고치겠다"고 선언했다. 국토교통부는 중대재해 발생 건설사에 선분양 제한을 강화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현행 선분양 제한은 부실시공 영업정지 기업에 적용되나, 규칙 개정으로 중대재해 발생 기업에도 확대될 전망이다.
건설업계는 산재 근절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과도한 규제로 경영 부담이 커지고 산업 활동 위축 가능성을 우려한다. 인건비와 원자재 가격 상승이 지속된 가운데 과징금까지 부담하면 생존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5년간 국내 종합건설업체 영업이익률은 3.98% 수준이며, 2023~2024년에는 3.14~3.15%에 머문다. 과징금 부과 기준인 영업이익 5%를 적용하면 대우건설은 약 201억원, DL이앤씨 135억원, GS건설 143억원, 포스코이앤씨 31억원의 과징금을 부담해야 한다.
한 대형사 관계자는 "영업이익률이 3%대에 불과한데, 사망사고 단 한 건에 영업이익의 5%를 과징금으로 내라는 것은 기업 존립에 위협"이라며 "정책 취지는 이해하지만 지나친 제재가 건설 현장과 부동산 시장까지 위축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인 근로자 비중 증가도 업계 부담이다. 지난해 국내 건설현장 근로자 156만여 명 중 외국인은 22만9541명(14.7%)이다. 2020년 11.8%에서 3%포인트 증가했으며, 특히 골조 공사의 80%가 외국인 근로자다. 외국인 사망 시 3년간 고용 제한 규정 시행 시 공사 지연 등 현장 혼란이 우려된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내국인 구인난으로 외국인 근로자 비중이 늘고 있는데 외국인 채용 제한은 현장에 큰 타격"이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건설기술진흥법과 건설안전특별법 등 개정으로 발주자에게 적정 공사비 산정 의무를 부여하고, 표준도급계약서에 공사기간 산정 기준을 포함한다. 산업안전보건법도 개정해 폭염 등 기상재해를 공사 기간 연장 사유로 추가할 방침이다.
다른 대형사 관계자는 "패널티 기준은 구체화됐으나 공사비 등 제도 개선은 미흡해, 충분한 기간과 예산 없이는 산재 예방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전문가는 "모든 현장이 리스크로 인식되고 처벌 일변도 정책은 실효성에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