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박영선 기자]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이 가시화되면서 발행 주체를 둘러싼 주도권 싸움이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핀테크 업체들은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업체에 민간기업이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한국은행은 은행권 중심의 발행을 주장하고 있어서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에 대한 기대감에 관련주들이 들썩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카카오페이는 이달 들어 162%대 급등하면서, 연일 상한가를 기록중이다. 스테이블코인 제도화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카카오톡을 기반으로 지급·결제 영역의 강자로 꼽히는 카카오페이가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의 유력한 주체로 꼽혔기 때문이다. 스테이블코인은 다른 가상자산과 달리 달러화, 미국 국채, 금 등 특정 자산과 가치를 연동해 안정성과 함께 가상자산 결제의 편리성을 추구할 수 있다.
카카오페이는 시장 기대감이 상승하자 지난 17일 6종류(PKRW, KKRW, KRWP, KPKRW, KRWKP, KRWK)의 이름으로 구성된 18건의 상표를 출원했다. 상품 분류로는 △암호화폐 금융거래업 △암호화폐 중개업 △암호화폐 채굴업 △블록체인 기술에 사용된 거래 관리용 소프트웨어가 있다.
카카오 계열사인 카카오뱅크도 이날 특허청에 BKRW, KRWB, KKBKRW, KRWKKB 등 4개의 상표를 출원했다. 상품 분류는 △암호화폐 소프트웨어(9류) △암호화폐 금융거래 업무(36류) △암호화폐 채굴업(42류)로 나눠져 총 12건이다.
카카오뱅크 관계자는 "시장 흐름에 따라 선제 대응 차원에서 상표권을 출원한 것"이라며 "계열사인 만큼 카카오페이와 추후 시너지를 기대해 볼 수 있겠지만, 현재 논의중인 사안은 없다"고 말했다.
카카오페이 뿐만 아니라 네이버페이와 토스 등 지급결제 핀테크사들도 원화 스테이블코인에 기대감이 집중된 분위기다. 네이버페이의 모회사인 네이버는 이달 들어(6월 2일~6월 24일 기준) 주가가 55.7%(18만7600원→29만500원) 뛰었다.
이달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디지털자산기본법'을 발의한 이후 핀테크 업체들은 원화 스테이블 발행이 민간 주도하에 이뤄져야 한다고 제언하고 있다. 법안에 따르면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요건은 자기자본금 5억원 이상을 보유한 국내 법인으로 제한됐다. 기존에 언급된 자기자본 요건인 50억원과 비교해 진입장벽이 크게 낮아진 셈이다.
이후 무분별한 민간기업 참여가 시장에 혼란을 줄 수 있다는 한국은행의 우려가 제기되자, 한국핀테크업계는 정무위원회 소속 강준현·유동수·이정문·이강일 의원과 함께 '디지털자산 혁신 법안 공개 설명회'를 개최했다. 혁신법에는 자기자본 요건을 10억원으로 상향하고, 매달 1회 이상 자체 감사보고서와 매년 1회 외부감사보고서를 공시해야 한다는 규제가 담겼다. 또한 한국은행이 필요 시 금융위원회에 원화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한국은행은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우려를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한은은 이날 발표한 '2025년 상반기 금융안정보고서'를 통해 스테이블코인의 가치 안정성과 준비자산에 관한 신뢰가 훼손될 경우 디페깅(스테이블코인 가치가 연동 자산의 가치와 괴리되는 현상)과 대규모 상환 요구가 발생할 경우 '코인런'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언급했다.
더불어 스테이블코인의 경우 예금보험이나 중앙은행의 최종대부자 기능과 같이 코인런 발생을 방지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미흡해 시장 신뢰 하락에 더 취약하다는 설명이다.
특히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민간기업 발행에는 보다 뚜렷한 입장을 내놨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18일 기자간담회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에 반대하지 않는다"며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 자체는 인정하나, 민간기업이 발행권을 갖는 데 회의적이라는 입장을 비쳤다.
지난 24일 유상대 한국은행 부총재도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 하락과 통화정책'을 주제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금융시장 혼란, 소비자 피해 발생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은행권에 먼저 도입해 안전판을 마련하자는 것"이라며 "은행에서 시행 경험을 기반으로 비은행 부문으로 확대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영향권이 없는 민간기업으로 확대되면 정책 유효성이 약화되고, 스테이블코인이 국채시장 내에서 영향력이 커질수록 한은의 관리 체계에 혼란이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시중은행도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주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국내 8개 은행(KB국민·NH농협·수협·신한·우리은행·IBK기업·IM뱅크·케이뱅크)은 '오픈블록체인·DID협회'에 참여해 스테이블코인 발행 기술 구축 및 정책 대응을 공동으로 모색하는 방안을 계획중에 있다.
황수욱 키움증권 연구원은 "시장 조성자와 수요자, 공급자 모두에게 참여 유인이 있다는 것은 스테이블코인이 단순 테마에 그치지 않고 '산업화'가 빠르게 이루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한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수요자 입장에서 참여 유인인 △결제 시스템의 진화와 공급자 입장에서의 참여 유인인 △은행 시뇨리지 효과(중앙은행이나 정부가 화폐 발행 시 얻는 이익) 분산 가능성으로 금융시스템 지각 변동을 유발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해외 각국은 스테이블코인 시장이 확대됨에 따라 발행 주체를 민간 기업으로 확대하는 추세다. 지난달 통과된 미국 상원을 통과한 스테이블코인 관련 법안인 지니어스 액트(GENIUS Act)의 경우, 은행 자회사나 통화감독청(OCC) 인허가 비은행, 주인증 소규모 발행자에 유연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지니어스 액트가 상원을 통과한 이후 비자, 마스터카드 등의 결제 시스템 기업들은 스테이블 코인 업계와 협력 방안을 발표했고, 월마트와 아마존 등의 기업들과 뱅크오브아메리카, 시티 등의 미국 시중은행들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싱가포르도 통화청(MAS)의 규제 요건을 충족한 비은행 기업에 한해 스테이블 코인 발행을 허용하고 있다.
업계는 디지털자산법과 관련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조속한 시일 내에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포지티브 규제'(법률·정책에 허용 사항을 나열하고 나머지는 허용하지 않는 방식)가 아닌 '네거티브 규제'(법률·정책서 금지한 행위가 아니면 모두 허용) 적용을 주장하는데, 이를 보장해야지만 혁신성 등이 담보될 수 있어서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핀테크사들은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과 더불어 해외 스테이블코인 업체와 제휴하는 등 사업을 확장할 수 있는 범위가 넓다"면서 "다만 현재 금융위 존치 여부 등 혼란한 점이 많아 인력이나 조직체계 정비도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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