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김현경 기자] 은행들이 대출금리 운영 방식을 놓고 고민에 빠졌다. 급증 조짐을 보이고 있는 가계대출을 관리하려면 가산금리를 인상해야 하지만, 이재명 대통령의 '과도한 예대금리차' 지적으로 쉽게 금리 조정에 나서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딜레마에 빠진 은행들이 지난해 하반기 때처럼 각종 대출제한 조치에 돌입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지난 16일 오후 전 은행권 가계대출 담당 부행장을 소집해 최근의 가계대출 증가 현황을 점검했다. 올해 2분기 들어 가계대출이 급증하는 흐름이 이어지고, 최근 서울을 중심으로 집값 상승세가 가팔라져 대출 수요를 더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자 긴급 대응에 나선 것이다.
올해 3월 전 금융권 가계대출 증가폭은 7000억원을 기록했다가 4월 5조3000억원, 5월에는 6조원 늘어나는 등 증가폭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이달 들어서는 지난 12일까지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에서만 1조9980억원 늘었는데, 이 추세대로라면 이달에도 가계대출 증가폭이 상당할 것이란 관측이다.
이 자리에서 당국은 은행권의 월별·분기별 대출 관리가 목표치에 맞춰 적절하게 이뤄지고 있는지 살펴보고, 목표치를 초과한 일부 은행들에 대해서는 서면·현장점검을 예고하는 등 경고성 메시지를 냈다. 특히, 다음달 1일 3단계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 강화를 앞두고 대출 '막차수요'가 몰릴 가능성이 큰 만큼 철저한 총량관리가 필요하다는 게 당국 입장이다.
금융당국이 보다 철저한 대출 관리를 주문했지만 은행권은 운신의 폭이 넓지 않은 상황이다. 대출 수요를 줄이려면 △대출금리 인상 △대출 취급 제한 등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최근 이 대통령이 예대금리차 문제를 정조준하면서 금리 정책을 쓰기 어려운 분위기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앞서 이 대통령은 지난 4일 개최한 비상경제점검 태스크포스(TF) 1차 회의에서 "해외와 비교했을 때 한국의 예대금리차가 벌어져 있는 게 아니냐"며 시장 흐름과 엇박자가 나고 있는 예대금리차에 우려를 표했다. 이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은 지난 11일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업계에 전해졌다.
이 대통령 발언이 알려지기 전인 이달 초 은행권은 줄줄이 주담대 금리를 인상했다. 우리은행은 지난 2일 주담대 가산금리를 0.06%p(포인트) 올렸고, 국민은행도 주요 비대면 주담대 상품 금리를 0.17%p 인상했다. 케이뱅크도 2일 아파트담보대출 가산금리를 0.29%p 올렸고, SC제일은행은 오는 18일부터 주담대 영업점장 우대금리를 0.25%p 축소할 예정이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29일 기준금리를 인하했음에도 은행들은 대출 수요 조절을 이유로 대출금리를 인상한 것이다. 은행 주담대 주기형·혼합형 상품의 금리 산정기준이 되는 지표금리(금융채 5년물)가 오름세로 돌아선 것도 대출금리 상승에 영향을 줬다.
최근 미국 하원을 통과한 트럼프 대통령의 대규모 감세 정책이 재정적자를 악화시킬 것이란 우려로 이어지고 있고, 우리나라의 경우 추경으로 국채 발행량이 증가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면서 미국과 한국 국채금리는 오름세를 기록하고 있다.
글로벌 채권금리의 벤치마크가 되는 미국 국채금리 10년물은 지난 4월 4일 연 3.991%까지 떨어졌지만 이달 16일엔 연 4.454%까지 치솟았다. 한국 국채금리 10년물 역시 4월 25일 연 2.571%를 기록했으나 전일에는 연 2.876%에 거래를 마쳤다.
이런 가운데 예대금리차는 공시 이래 최대 수준으로 벌어졌다. 지난 4월 기준 5대 은행의 가계 예대금리차(정책 서민금융 제외)는 1.35~1.51%p로 집계됐다. 은행들 가운데 신한은행(1.51%p)과 하나은행(1.43%p)은 지난 3월 예대금리차 공시가 시작된 2022년 7월 이후 최대치를 경신하기도 했다. 이달 들어 은행들이 대출금리를 인상하고 예금금리를 낮춘 만큼 예대금리차는 더 벌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은행 예대금리차에 문제가 있다는 이 대통령의 발언이 있었던 만큼 은행들이 총량 관리를 이유로 대출금리를 인상하긴 어려워 보인다. 실제 금융당국도 전일 가계대출 점검 회의에서 은행권에 금리를 제외한 비가격적 조치를 검토해달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해 SC제일은행은 오는 18일부터 주담대 상품 최장 만기를 기존 50년에서 30년으로 축소하기로 했다. 이를 시작으로 은행권에서 △1주택자 수도권 내 대출 취급 중단 △다주택자 추가 주택 구입용 대출 한도 축소 △주담대 모기지보험(MCI·MCG) 중단 △주담대 최장 만기 축소 △신용대출 한도 축소 등 대출 취급을 직접 제한하는 각종 조치들이 대거 부활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대통령의 예대금리차 저격으로 금리 조정은 사실상 어렵게 됐고, 결국 대출 취급을 막는 것 외 다른 방법은 없는 상황"이라며 "작년 하반기 은행별로 우후죽순 대출을 막았다가 실수요자 피해가 크다는 비판이 있었기 때문에 일단 시장 상황을 보다가 적당한 수준에서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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