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뒷짐에 은행권 '가상자산 자율규제' 속도 낸다
정부 뒷짐에 은행권 '가상자산 자율규제' 속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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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신한·우리·하나銀 등 해외송금 제한
심사 강화에 비대면채널 송금 한도 신설
비트코인 (사진=픽사베이)
비트코인 (사진=픽사베이)

[서울파이낸스 이진희 기자] 해외시장에서 구입한 가상자산(가상화폐)을 한국시장에서 파는 환치기(불법 외화 송금) 수법이 급증하자 은행들의 자체 대응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투기성 송금을 막기 위해 심사를 강화하는 한편, 한도를 새로 설정하는 등 해외 송금을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11일 은행권에 따르면 농협은행은 이날부터 비대면 해외송금 거래 시 월 미화 1만달러로 송금한도를 제한하기로 했다. 기존에는 비대면채널 건당 미화 1만달러, 연간 미화 5만달러로 제한해 왔으나, 앞으로는 외국인·비거주자를 대상으로 인터넷뱅킹·스마트뱅킹·올원뱅킹 등을 통한 거래 시 제한된 한도가 적용된다.

대면 해외송금 제한은 기존 건당 5만달러, 연간 5만달러로 유지하되, 심사를 강화했다. 송금 목적이나 자금출처를 확인하고 있는데, 고객이 정보 제공을 거부하는 경우엔 거래를 제한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한 직원 교육도 실시하고 있다.

농협은행 측은 "외국인·비거주자의 암호화폐 구입 등 의심스러운 해외송금 거래방지 차원"이라며 "김치 프리미엄을 노리는 외국 송금 건수가 많은 것으로 보이는 만큼, 취급할 때 신중을 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은행권은 가상화폐 광풍이 불기 시작한 이후 가상자산의 국내외 가격차이인 이른바 '김치 프리미엄'을 악용하는 사례를 막기 위한 조치를 시행 중이다.

앞서 신한은행은 지난달 28일부터 외국인·비거주자가 비대면채널(인터넷뱅킹·쏠앱 등)을 통해 증빙서류 없이 해외로 보낼 수 있는 송금액을 한 달에 최대 1만달러까지만 허용키로 했다. 비대면채널을 통해 월간 누적 1만달러를 초과해 외국인송금을 하게 되면 본점(외환업무지원부) 또는 영업점에 증빙서류 제출해 본인 돈인지 여부를 확인받아야만 거래가 가능하다.

우리은행도 지난달 19일부터 의심스러운 비대면 해외송금 거래 방지를 위해 우리은련퀵송금 중 다이렉트 해외 송금 계좌를 통한 해외송금 한도를 월간 1만달러로 제한했으며, 하나은행 역시 비대면 해외송금을 할 수 있는 하나EZ 한도를 월 1만달러로 낮춘 상황이다.

은행들이 자체적으로 규제에 나선 배경엔 가상화폐와 관련한 명확한 법적 근거나 규정이 없다는 점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된다. 가상화폐의 주무부처 역할을 둘러싼 관계부처간 '핑퐁게임'이 지속되다 보니 거래 투명성이나 피해방지에 대한 대책은 여전히 불확실한 상태로 남아있다.

더 큰 문제는 은행들의 한도 설정·심사 강화에도 가상화폐 차익을 노린 해외송금을 완벽히 차단하기 힘들다는 데 있다. 가상화폐 관련 거래를 자금세탁이나 범죄에 연루돼 있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만큼 당국의 정확한 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크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들이 자체적인 기준으로 의심 사례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조치를 하고 있지만, 차익 거래 목적의 해외송금을 계속 차단하려면 보다 명확한 근거와 규정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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