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 본사 전경 (사진=KAI)
KAI 본사 전경 (사진=KAI)

[서울파이낸스 서종열 기자]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국내 항공우주 산업 신규 사업에서 연이은 실패와 예산 압박으로 전례 없는 재무 위기에 직면했다. 특히 총사업비 약 1조8000억원 규모의 전자전기(EW) 개발 사업에서 대한항공-LIG넥스원 컨소시엄에 패하면서, 향후 더 큰 규모의 후속 양산 사업 선점 기회를 놓쳤다는 점이 업계에 충격을 주고 있다.

21일 방산업계에 따르면 KAI는 올해 항공우주 분야 신규 사업에서 사실상 '연전연패'를 기록했다. 블랙호크(UH/HH-60) 기동헬기 성능개량 사업에서도 대한항공-LIG넥스원 컨소시엄에 밀려 탈락했다. 수리온, 미르온 등 헬기 개발·양산 경험이 있는 KAI로서는 국내 시장에서 선두를 내준 셈이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항공우주 산업에서 KAI의 잇단 패배는 단순한 경쟁 패배가 아니라, 향후 매출 기반과 기술 주도권에도 직격탄"이라고 평가했다.

더 큰 문제는 재무적 부담이다. KAI는 KF-21 한국형 초음속 전투기 개발 사업에서도 인도네시아가 당초 약속한 개발비 1조6000억원 중 대부분을 지불하지 않으면서, 결국 약 5000억원을 떠안게 됐다. 방사청과 KAI가 절반씩 부담을 나누지만, KAI가 부담해야 할 금액이 정부 몫과 거의 맞먹는 수준이다. 한 방산 전문가는 "신규 사업에서 연속 실패한 상황에서 5000억원을 마련하는 것은 사실상 은행 대출 외에는 현실적 방법이 없다"고 지적했다.

KF-21 초도 양산 예산마저 빡빡하게 배정된 점도 KAI 재무 부담을 가중시킨다. 업계에서는 "초도 양산 예산은 보통 사업 초반 충분히 확보하고 뒤로 갈수록 줄이는 관례가 있다"면서 "KF-21은 예외적으로 초도 양산 예산마저 제한적"이라고 전했다. 전자전기·블랙호크 사업에서의 실패와 KF-21 비용 부담이 겹치면서 KAI 내부에서는 "올해는 은행 대출로 버텨야 한다"는 말이 회자될 정도다.

KF-21이 이륙하는 모습 (사진=KAI)
KF-21이 이륙하는 모습 (사진=KAI)

경영진이 부재한 상황도 악재를 더한다. 강구영 전 사장은 임기 석 달을 자진 단축하며 퇴임했고, 이후 두 달 넘게 대표이사 공백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강 전 사장 체제에서 벌어진 전자전기·블랙호크 사업 추락과 KF-21 분담금 부담 문제는 후임 대표가 해결해야 할 핵심 과제로 남았다. 업계에서는 "강 전 사장 퇴임 이후에도 그의 인맥과 정책 기조가 KAI 내외부에 깊이 남아 있어 경영 정상화가 쉽지 않다"고 평가한다.

수출입은행이 KAI 지분 26%를 보유한 대주주이자 사실상 정부의 관할 하에 있어, 차기 대표 선임은 정부 판단에 달려 있다. 전문가들은 "KAI가 직면한 문제는 단순한 사업 실패가 아니라, 재무·사업·조직 전반의 구조적 위기"라며 "첩첩산중 속에서 산불 난 KAI를 구할 구원투수형 CEO를 빨리 임명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종합하면, KAI는 올해 항공우주 분야 신규 사업에서 연전연패, KF-21 개발비 부담, 초도 양산 예산 부족이라는 삼중고에 직면했다. 사업과 재무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가장 시급한 과제는 차기 대표를 통해 책임경영과 자금·사업 관리 정상화를 실행하는 일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발 빠르게 KAI에 적임자를 앉히지 않으면, 국내 항공우주 산업에서 KAI의 주도권은 더욱 흔들릴 수밖에 없다"고 진단한다.

KAI의 한 내부 관계자는 "올해 사업 연패와 재무 압박은 단순한 불운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라며 "대표 공백 상태가 길어질수록 경영·개발 속도 모두 타격을 입는다"고 토로했다. 정부와 대주주는 연내 차기 CEO를 임명해 KAI의 숨통을 틔워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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