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문영재 기자] 국내 방산기업들에 대한 유럽 국가들의 관심이 더 높아지고 있다.
러시아가 군수산업 중심의 전시경제 체제를 공고히 하면서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이 장기화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돼서다. 전쟁 장기화로 인해 불안감이 커진 유럽연합(EU)이 뒤늦게 국방비 확대를 통한 재무장에 나서고 있지만 무기 생산 능력 한계로 재무장 구상에 제동이 걸리고 있어서다. 특히 역내 방산 역량을 떠받치는 독일마저 내수 중심 기조를 강화하면서 EU 전역의 무기 공급 공백은 갈수록 커지는 추세다.
높아지는 불안감과 한층 더 어려워진 재무장이란 현실 속에서 양산·납기 역량을 갖춘 국내 방산 업체들이 유럽 국가들이 요구하는 실질적인 대체 공급자로 주목받고 있다.
23일 미국전략국제문제연구소에 따르면 러시아는 서방의 강력한 제재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국방비 지출을 바탕으로 군수산업을 중심으로 한 내수시장 안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해 국방예산은 1450억달러로,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이는 우크라이나와의 전쟁 장기화에 대비한 전시경제 체제가 단기 대응을 넘어 장기 전략으로 자리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국방예산 증액은 산업 전반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같은 기간 현지 군수산업 평균임금은 타 산업 대비 60퍼센트(%)가량 높은 수준으로, 인력 유입을 가속화하며 고용 안정과 소득 유지를 견인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군수산업 종사자는 전체 제조업 인력의 약 20%인 450만명 수준으로 증가했고, 실업률도 2.53%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국제관계 전문가들은 러시아의 군수산업을 통한 내수경제 기여도가 커질수록 러시아 정부의 전쟁 지속 의지 또한 강화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EU 역시 마찬가지다. 전시경제 체제는 무기 소비가 지속돼야 유지될 수 있는 구조인 만큼, 결국 새로운 분쟁의 유인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크라이나는 끝이 아니라 서방으로 진출하기 위한 길목일 뿐"이라는 경고가 독일 국방부·정보국,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사무총장 등 유럽 주요 안보 채널에서 반복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문제는 EU가 이 같은 위기상황에도 여전히 실질적인 방산 역량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회원국들은 국방비를 GDP 대비 5%까지 확대하겠다는 계획 아래 재정 투입을 늘리고 있으나, 영국·프랑스·이탈리아 등 주요국조차 방산 자립 기반이 미흡한 실정이다.
사실상 독일만이 군수산업의 명맥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데, 이마저도 급증하는 수요를 감당하기엔 역부족이다. 대표 사례가 독일 방산 업체 KMW(Krauss-Maffei Wegmann)다. 이 업체의 연간 생산 능력은 60여대 수준으로, 스웨덴에 수출하는 레오파르트 전차 44대를 2031년에야 납품 완료할 예정이다.
더욱이 독일은 내수 중심 방산 전략을 본격 강화하는 분위기다. 독일 정부는 지난 3월 헌법 개정을 통해 GDP 대비 1%를 초과하는 국방비를 부채 한도 산정에서 제외하며, 사실상 무제한 지출이 가능한 재정 구조를 마련했다.
현재 950억유로 수준인 국방예산은 2029년까지 1529억유로로 확대될 전망이다. 늘어난 예산은 고스란히 자국 방산 업체에 대한 발주로 이어지는 모습이다. 현지 방산 업체 라인메탈은 1분기 325억유로의 수주 잔고를 확보했는데, 이중 절반 이상이 독일 국방부 발주 물량으로 나타났다. KMW도 수출보다 내수 수요 대응에 주력하는 기조로 전환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독일을 제외한 EU 회원국들은 답답한 상황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가능성에 대비해 자국 역시 재무장에 나서야 하지만, 당장 무기 공급처를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유럽의 복잡한 상황은 국내 방산 업계에 기회로 작용하고 있다. K9자주포, K2전차 등 한국형 무기 체계가 실전 배치를 통해 신뢰성을 입증한 데다, 단기간 내 양산 및 납품이 가능한 점에서 경쟁력을 갖춰서다.
실제로 폴란드·노르웨이·루마니아 등에 이어 체코·슬로바키아·핀란드 등도 한국산 무기 도입을 적극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방산업계 한 관계자는 "유럽은 전시 물량을 빠르게 공급할 수 있는 공급사가 절실한 상황"이라며 "한국은 품질, 납기는 물론 정비체계 등 모든 측면에서 유럽의 요건을 충족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