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윤 산업연구원 탄소중립산업전환연구실장은 8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배출권시장협의회 2025년도 정책포럼'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사진=박조아 기자)
이재윤 산업연구원 탄소중립산업전환연구실장은 8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배출권시장협의회 2025년도 정책포럼'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사진=박조아 기자)

[서울파이낸스 박조아 기자] 정부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을 위해 배출권거래제의 유상할당 비중 확대를 추진하자, 산업계에서 부담 가중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다. 장기 침체에 빠진 국내 제조업이 생산 감소, 수익성 악화, 해외 이전 확대 등 구조적 위기에 직면한 상황인 만큼, 무리한 규제 강화보다는 제도적 지원과 실효성 있는 전환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재윤 산업연구원 탄소중립산업전환연구실장은 8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배출권시장협의회 2025년도 정책포럼'에 참석해 "현재 국내 제조업 업황이 2021년부터 내수 부진과 함께 심각한 상황에 놓여 있다"며 "유상할당 비중을 확대하는 제4차 배출권거래제 기본계획은 현재 중국과의 경쟁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기업에 이중고를 유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배출권거래제는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배출허용량을 설정하고, 여유분과 부족분을 기업 간에 거래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다. 2030 온실가스 감축(NDC) 목표 달성을 위해 기업의 자율적인 탄소 감축을 유도하기 위해 도입됐다. 2015년 제1차 계획기간부터 시행돼 현재 제3차 계획기간이 진행 중이다. 이번 제4차 계획은 기업에게 배정되는 배출권 유상할당 비중을 기존 10%에서 대폭 상향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 실장은 현재 한국 경제성장률이 1%를 밑돌 것으로 예상되는 등 제조업 전반이 심각한 침체기를 겪고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철강, 정유, 석유화학 등 다배출 기초 소재 산업은 중국발 공급 과잉과 통상 리스크로 수익성이 2011년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했으며, 설비 폐쇄 및 가동 중단, 가동률 하락이 이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기업들은 해외 생산을 확대하며 글로벌 시장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온실가스 배출량 지표가 개선세를 보이지만 이는 산업 위축에 따른 결과일 뿐, 근본적인 감축 노력의 결과는 아니라고 강조했다. 철강, 비금속, 화학 등 주요 산업의 생산 단위당 탄소 배출량은 거의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어, 실질적인 탄소 배출 감축을 위해서는 제도적 지원과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실장은 "한국 산업이 이미 세계적 수준의 에너지 효율성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탈탄소 전환 과정에서 막대한 비용 부담과 경쟁력 상실의 불확실성에 직면해 있다"며 "특히 배출권거래제(ETS)의 유상 할당 확대는 가장 큰 쟁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4차 계획 기간 동안 산업 부문에 대한 유상 할당을 기존 수준으로 유지해야 한다며, 그 이유로 △현재 주력 산업 및 다배출 산업의 장기 침체 가능성 △해외 생산 확대에 따른 탄소 누출 우려 △2030년까지 혁신 기술 기반 감축 수단의 상용화 불충분 등을 언급했다. 

이 실장은 "과거 유상 할당 시뮬레이션 결과, 철강 산업 영업이익의 5%, 시멘트의 10%에 달하는 비용 발생이 예상될 정도로 강력한 영향이 예상된다"며 "전력 요금 급증 또한 산업계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력 다소비 업종의 경우 이미 생존의 기로에 놓여 있으며, 유럽이 발전 부문 유상 할당에도 불구하고 산업 경쟁력을 위해 에너지 비용 보조 제도를 도입한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실장은 산업 부문의 탄소중립 전환을 위한 정책 제언으로 △그린 투자가 장기적 경쟁력 강화로 이어진다는 명확한 시그널 제공 △정부와 사회의 비용 부담 뒷받침 △다배출 프로젝트 중심의 감축 투자 지원 확대 △간접 배출 제외 로드맵 마련 △저탄소 제품 확산 지원 및 수요처 확보 방안 마련 △수소 등 저탄소 원료의 안정적 공급 및 비용 보조 방안 마련 △장기적인 지원을 위한 법적 기반 마련 △산업 부문 탄소 감축 비용 분담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 등을 제시했다.

그는 "현재 산업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충분히 인지하고, 규제 강화보다는 지원과 육성에 초점을 맞춘 정책이 절실하다"며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 설정 시에도 산업의 수용 가능성과 지원 방안을 함께 고려한 로드맵 제시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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