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여용준 기자] 중국의 '배터리 굴기'가 유럽으로 확장되고 있다. 여기에 미국의 정책 변화 가능성까지 맞물리면서 우리 배터리 기업들의 대외 불확실성도 더 커지고 있다.
5일 업계에 따르면 세계 1위 배터리 기업인 중국 CATL은 헝가리에 유럽 최대 규모의 배터리 공장을 짓고 있다. 총 면적은 221만㎡ 규모로 건설 자금은 총 11조원에 이른다. 중국 정부는 CATL의 자금 조달을 위해 상하이 증시와 홍콩 증시에 이중으로 상장하는 방식을 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CATL과 BYD, EVE에너지 등 중국 배터리 기업들은 최근 유럽에 배터리 공장을 지으며 현지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국 내수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른 만큼 중국 다음으로 전기차 수요가 많은 유럽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당초 유럽은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SK온 등이 누리던 텃밭이었으나 중국 기업의 공세에 밀려 최근 점유율을 내준 것으로 알려졌다. 2023년 한국 배터리 3사의 유럽 점유율 합계는 60.4%에 이르렀으나 지난해에는 37.2%까지 떨어진 것으로 파악됐다. 여기에 현재 짓고 있는 공장들이 완공되면 이 같은 격차는 더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이 가운데 최근 CATL은 우리 기업들의 주무대였던 삼원계 배터리 개발에도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삼원계 배터리는 리튬이온배터리의 일종으로 양극재에 니켈·코발트·망간(NCM), 니켈·코발트·알루미늄(NCA) 등을 조합해 사용한다. 에너지 밀도가 높아 전기차와 같이 장거리 주행이 필요한 제품에 주로 사용된다.
그동안 중국은 에너지 밀도가 낮지만 가격이 저렴한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바탕으로 저가 물량 공세를 펼치며 글로벌 점유율을 빠르게 끌어올렸다. 점유율이 궤도에 오른 가운데 삼원계 배터리로 영역을 확장하는 것은 국내 배터리 업계에 위협이 될 수 있다.
우리 기업들은 유럽에서 LFP 배터리 생산을 확대하는 한편 생산능력도 끌어올려 현지 시장에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정부의 지원을 받은 중국 기업들의 대규모 투자에 비하면 생산능력이 아직 부족한 수준이다. 중국 기업이 현재 짓고 있는 공장들이 모두 가동된다면 생산 능력은 약 500GWh에 이르지만, 한국 기업은 생산능력을 최대한 끌어올려도 200GWh이 되지 않는다.
이 가운데 미국에 진출한 배터리 기업에 지급되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세액공제도 축소·폐지될 가능성이 제기됐다. 지난 3일(현지시간) 미국 하원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대규모 감세법안이 찬성 218표, 반대 214표로 가결됐다. 이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은 독립기념일인 4일에 해당 법안에 서명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발 감세 법안이 통과되면 전기차, 배터리 등에 지급되던 보조금이 조기 폐지되거나 축소된다. 예를 들어 전기차 구매시 최대 7500달러(약 1023만원)까지 지급되던 세액공제는 기존 2032년에서 올해 9월 30일까지로 조정된다. IRA 세액공제를 노리고 현지에 진출한 우리 자동차, 배터리 기업들은 수요 감소가 불가피해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배터리 부품에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의 일몰 기간이 유지돼 우리 배터리 기업에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AMPC에는 중국의 영향력을 배제하기 위한 조항이 추가돼 우리 기업에게는 유리하게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세액공제 불확실성이 어느 정도 해소됐지만, 관세 불확실성은 여전히 남아있는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상호관세에 대해 90일 유예를 발표한 가운데 9일(현지시간) 유예 기간이 만료된다. 유예기간 연장이 없다고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언급한 만큼 배터리 업계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특히 자동차가 관세의 주요 타겟이 된 만큼 자동차 부품으로 탑재되는 배터리에 대한 영향도 불가피하다. 또 현지에 구축된 배터리 공장도 관세 영향으로 소재 수입에 대한 비용이 늘어날 수 있다.
이처럼 우리 배터리 업계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끼어 위기를 겪고 있는 가운데 업계에서는 위기 돌파를 위해 미국 시장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트럼프 정부의 통상 정책은 중국을 견제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배터리에서도 중국의 북미 시장 진입을 차단하는데 초점을 맞춘 만큼 우리 기업에게는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차세대 배터리 시장에서 중국과 경쟁하기 위한 정부의 지원도 절실한 상황이다. 전고체 배터리 시장에서 한국과 중국의 기술 수준은 비슷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중국 기업들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는 만큼 앞으로 격차가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배터리 산업과 관련해 초격차 기술 개발을 위한 연구개발을 강화하고 국내 생산에 대한 세제혜택을 제공하기로 했다. 또 국내 전기차 수요를 끌어올려 내수시장을 활성화하는 공약을 내세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