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22/건설과 혁신上] 말로만 경쟁력···건설 연구개발 투자 '제자리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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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건설사 10곳 중 상반기 연구비 늘린 곳은 6곳
매출 대비 연구비 비중 20년 넘도록 평균 1% 불과
(사진=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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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건설 현장에선 손으로 직접 그린 A0 크기 종이 도면을 보며 공사를 했으나, 현재는 종이 도면을 디지털화한 것을 넘어 AI가 원가와 공정, 품질 등을 분석하고 도면을 수정해 주고 있다. 어느 업계나 똑같지만 혁신 기술 확보는 곧 업계의 생산성과 직결된다. 그러나 높은 원가율에 따른 투자 여력 저하와 낮은 R&D 메리트 등이 건설업계 혁신 의지의 발목을 잡기도 한다. 이에 서울파이낸스는 2회차에 걸쳐 업계에 필요한 혁신 방향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서울파이낸스 박소다 기자] 건설업계가 연일 기술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포부를 보여주는 것과 달리 연구 개발(R&D)비는 우하향하거나 정체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투자 여력이 되는 대형 건설사 중에서도 절반가량이 올해 상반기 연구 개발비를 줄이거나 현상 유지했다. 이에 글로벌 시장 경쟁력 강화를 위해선 더 적극적인 기술 개발이 필요하단 지적이 나온다.

18일 서울파이낸스가 시공능력평가 상위 건설사들의 금융감독원 공시 반기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10위 내 건설사 중 올해 상반기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연구 개발비를 늘린 곳은 △삼성물산 △현대건설 △포스코이앤씨 △롯데건설 △SK에코플랜트 △HDC현대산업개발 총 6곳이었다.

연구비가 가장 많은 곳은 삼성물산이다. 올해 상반기 2594억6100만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14.95% 늘었다.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율도 1.08%에서 1.19%로 상승했다. 다만 삼성물산 연구개발비에는 건설부문 외에도 바이오와 급식사업 연구비도 포함됐다. 이에 대해 삼성물산 건설부문 관계자는 "전체 연구개발비 가운데 건설 부문의 몫은 30%를 약간 넘는 수준"이라며 "구체적 수치 공개는 어려우나 지난해 상반기보다 건설부문 연구비가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현대건설도 올해 상반기 지난해보다 16.6% 증가한 860억500만원의 연구개발 비용을 투입했다. 올해 대표 연구 실적을 보면 '건설현장 Vision AI 기술 개발 1단계', '무인순찰로봇 기반 건설현장 데이터 기록 및 관리 자동화 기술 개발', 'H-모듈러 공동주택 프로토타입 개발' 등이 있다.

상승률 기준으로 보면 HDC현대산업개발이 지난해 상반기 13억2400만원에서 올해 상반기 124억3700만원으로 839% 상승해 가장 상승폭이 크다. 연구를 바탕으로 한 '에너지 사용량 데이터 기반 전기요금 예측 및 절감 시스템'은 올해 5월 기술 특허를 받았고, 초고층 건축물 해체 관련 기술 특허 3개도 지난 7월 출원한 상태다.

이어 △롯데건설 142억9500만원→200억9200만원 (40.55%↑) △포스코이앤씨 160억9500만원→172억2000만원 (6.99%↑) △SK에코플랜트 128억5600만원→129억3300만원 (0.6%↑) 등도 증가했다. 롯데건설은 현장 안전과 품질 확보를 위한 연구 기술용역이 늘었고, 포스코이앤씨는 수소, SMR(소형모듈원자로) 등이 포함된 신성장 분야와 스마트 건설 분야 연구 인력이 늘어났다.

반면 △대우건설 418억2100만원→401억7600만원 (3.93%↓) △GS건설 396억3400만원→346억5600만원 (12.56%↓) △DL이앤씨 380억9300만원→293억1000만원 (23.06%↓) △현대엔지니어링 223억3600만원→184억8000만원 (17.26%↓)은 지난해 상반기보다 연구 개발비가 감소했다. 대우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은 국책 과제 등이 줄면서 비용이 축소됐다고 했다. GS건설 측은 연구 인력의 사업부 배치 과정에서 인건비가 빠져나가며, DL이앤씨는 연구개발비 집계 기준 변경으로 인한 감소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건설업종의 연구개발 비중은 산업계 전반과 비교하면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문다. CEO스코어가 발표한 500대 기업 연구개발 투자 현황을 보면 지난해 기준 매출 대비 연구비 비중 평균은 3.39%로, 1년 전보다 0.32% 올랐다. 반면 선도 건설사 중 매출 대비 연구비 비중이 1%를 넘는 곳은 삼성물산과 현대건설 2곳뿐이며 10위권 평균도 0.6%가 채 안 된다. 이 같은 수치는 20년 넘도록 제자리걸음 중이다.

이에 대해 한 건설사 관계자는 "건설업은 원가율이 높아 수익률이 크지 않기 때문에 R&D에 투자 여력이 다른 업종과 비교해 크지 않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다른 관계자도 "건설사가 하는 연구개발은 건설 현장에 상용화되기까지 까다롭고 오래 걸려 바로 매출로 이어지지 않는 탓에 R&D로는 한계가 있다"며 "자체 연구조직에 투자하는 것보다 스타트업 등과 '오픈 이노베이션' 등을 통해 기술을 확보하는 방식이 확대되는 추세다"라고 부연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투자 관행을 계속하면 수익성 개선과 해외 수주에서 불리한 입지에 계속 머물 것이라는 관측을 한다. 단순 수주에 만족할 뿐 더욱 큰 수익이 남는 원천 기술에 접근하지 못한 채 저가 공세에만 의지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의 시공능력과 가격 경쟁력은 우수한 편이나 상대적으로 설계 경쟁력은 뒤처졌다는 게 업계의 공통 의견이다. 2009년 수주한 UAE 원전 사업에서 시공 전반을 맡은 국내 건설사보다 원전 설계, 기술자문료를 받은 미국 회사가 더 많은 수익을 받은 일화는 유명하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엔지니어링 기술이 고부가가치 사업이긴 하나, 현재 건설사들의 매출 대부분이 주택 사업에서 나오고 사업 구조가 거의 도급 중심이라 고도기술에 투자할 만한 필요성이 생기지 않는 상황"이라며 "주택사업 기술력은 이미 확보했고 그 외 신기술로는 수익 보장이 불가능할뿐더러 단기간 효과를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박철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건설사는 발주사의 발주 내역과 정해진 규격에 맞게 최적화 비용으로 하자 없이 지으면 그만이기에 R&D에 적극 나설 메리트가 없는 수동적 상태"라고 진단했다. 이어 "최근 해외발주국에서 첨단 기술에 대한 수요가 커지면서 해당 역량 확보가 해외시장 점유율의 핵심요소가 될 것"이라며 "미래 전략 차원을 고려해 적극 투자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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