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22-통신3사 톺아보기②] 신세기와 통합 22주년 맞은 SKT, '혁신의 역사'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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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이동통신 도전과 한국이동통신 인수···신세기 통합 후 3강 체제 기틀
세계 최초 CDMA 상용화 등 업적···ICT 혁신 기업에서 '글로벌 AI 컴퍼니'로
(사진=SK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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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이도경 기자] 2002년 1월, SK텔레콤이 '제2 이동통신사'로 주목받았던 신세기통신 인수를 공식화하며 현재의 '통신 3강' 체제가 완성됐다. 1984년 한국이동통신 시절부터 40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국내 이동통신 시장의 기술 혁신을 선도해온 SKT는 이제 '글로벌 AI(인공지능) 컴퍼니'로서 새로운 흐름을 써내려가고 있다.

◇ 세기말 제2 이동통신 대전···SK텔레콤과 신세기통신의 등장= 1990년 초반, 체신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이동통신 사업을 경쟁 체제로 전환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제2 이동통신사업자 선정에 업계의 관심이 쏠렸다. 1992년 이동전화 시장 신규 사업자 허가를 위한 신청 공고가 진행됐고, 포항제철·코오롱·쌍용·동부·동양·선경(현 SK그룹) 등 6개 그룹의 경합 끝에 선경이 최종 사업자로 선정됐다.

제2 이동통신사로 선정된 선경의 사업은 시작부터 난항이었다. 고(故) 최종현 선경그룹 회장이 당시 노태우 대통령과 사돈지간이라는 이유로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에 휩쌓인 것이다. 선경은 1·2차 심사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얻었고 인척 관계와 상관없이 사업자 선정 자체가 공정하게 이뤄졌다고 밝혔으나, 여론과 정치권의 압박에 끝내 사업자 선정 무산으로 이어졌다.

제2 이동통신사 선정은 문민정부의 몫으로 넘어갔고, 특혜 논란에 휩쌓였던 선경은 제2 이동통신사를 포기하는 대신 1994년 한국통신이 민영화 과정에서 공개매각한 한국이동통신 주식를 매입해 경영권을 인수하는 방안을 선택했다. 선경은 최대주주 지위를 획득한 한국이동통신의 대표로 손길승 선경 부회장을 선임했고, 1997년 사명을 한국이동통신에서 현재의 'SK텔레콤'으로 변경했다.

한편 1994년 2월, 선경이 포기한 제2 이동통신사 타이틀을 두고 각축전을 벌이던 포항제철과 코오롱은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중재와 극적인 합의 끝에 단일 컨소시엄을 구성하기로 결정했다. 이로써 포항제철이 이끄는 신세기통신이 제2 이동통신사로 선정됐으며, 코오롱은 신세기통신의 지분 14%를 확보해 2대 주주에 올랐다. 신세기통신은 같은해 6월 창립기념식을 열고 신임 대표이사로 권혁조 사장을 임명했다.

2001년 6월 25일 SK텔레콤의 SK신세기통신과 합병추진 합의서 조인식 장면 (사진=SKT)

◇ SKT-신세기 합병···이동통신 5사에서 '통신 삼국지'로= 한국이동통신 민영화와 신세기통신의 등장으로 시장 구조를 개편한 정보통신부(체신부)는 1996년 민간 경쟁을 한 층 더 강화하고자 본격적으로 이동통신 시장 개방에 나섰다. 정통부는 LG텔레콤(현 LG유플러스)과 한국통신프리텔(KTF), 한솔PCS 등 3개 사업자를 신규 PCS(개인휴대통신) 사업자로 선정했고, 이들은 기존 한국이동통신, 신세기통신과 함께 '이동통신 5사'라는 이름으로 무한 경쟁을 펼치게 됐다. 

그러던 와중 1998년 대대적인 통신 개방과 함께 국내 통신업체에 대한 해외 사업자의 지분 제한 규제가 완화되자, 영국 보다폰 아이터치(ATI)가 신세기통신의 코오롱 지분을 차지하기 위해 적극적인 움직임을 펼치기 시작했다. 신세기통신 지분 11.4%를 소유하고 있던 ATI가 당시 코오롱 지분 23.7%를 확보할 경우 포항제철(25.5%)을 넘어 신세기통신의 최대주주가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정부가 수년 간 공들여 만든 제2 이동통신사가 해외 사업자의 손에 넘어갈 위기에 놓인 것이다.

그러나 위기도 잠시, 1999년 SKT가 신세기통신 인수를 추진하겠다고 나섰다. 손길승 당시 SK그룹 회장은 이동통신 5사의 과열경쟁으로 기업 내실 악화와 소비자 피해가 잇따르던 상황에, 통신사업 구조조정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1위 사업자의 위치를 공고히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PCS 3사는 SKT의 시장 독과점을 우려해 이를 반대했으나, 정통부는 시장 점유율을 가입자 또는 매출액 기준 50% 이하로 낮추는 조건 아래 기업결합을 승인하기로 결정했다.

가까스로 몸집을 줄이며 합산 점유율 50% 이하를 충족한 SKT는 2002년 1월 공식적으로 신세기통신과의 합병을 선언했다. 앞서 외환위기로 내실이 크게 악화된 한솔엠닷컴(한솔PCS)이 2001년 한국통신프리텔에 합병됐고, 이동통신 5사는 현재의 이동통신 3사 체계로 자리잡게 됐다.

SK텔레콤 유영상 CEO가 25일 오전 서울 을지로 SKT본사 T타워에서 타운홀 미팅을 열어 AI 사업 전략과 본원적 경쟁력 강화(OI) 방안을 구성원들에게 공유했다. (사진=SKT)
SK텔레콤 유영상 CEO가 지난 6월 오전 서울 을지로 SKT본사 T타워에서 타운홀 미팅을 열어 AI 사업 전략과 본원적 경쟁력 강화(OI) 방안을 구성원들에게 공유했다. (사진=SKT)

◇ 끝나지 않는 도약···CDMA 상용화부터 글로벌 AI 컴퍼니까지= SKT는 신세기통신 인수 전부터 세계 최초 CDMA(코드 분할 다중 접속·2G) 서비스 상용화와 무선 데이터 서비스 출시 등 이동통신 기술 선도로 통신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 CDMA는 동일 주파수 대역 내 다수 사용자가 서비스에 접속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이다. 당시 세계 기업들이 TDMA(시분할 다중접속)를 두고 기술 경쟁을 벌였으나, 1996년 국내서 최초 상용화한 CDMA 방식이 세계 표준으로 확산됐다.

신세기통신 인수 후 SKT는 새로운 21세기를 혁신으로 물들여갔다. 2002년 유무선통합 인터넷 서비스 '네이트'의 서비스 개시로 모바일 데이터 통신 시대를 열었으며, △2011년 국내 최초 4G LTE 서비스 상용화 △2013년 기존 LTE 대비 두 배 빠른 'LTE-A' 서비스 개시 △2019년 세계 최초 5G 상용화 등의 업적을 통해 한국이동통신 시절부터 40년의 시간이 흐른 현재까지 이동통신 기술 선도기업의 위치를 지켜오고 있다.

SKT의 발걸음은 이동통신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2004년에는 △음악포털 '멜론', △영화포털 '씨즐' △게임포털 'GXG' 등 미디어 콘텐츠 시장 개척에 나섰으며, 2005년 위성 DMB 방송을 시작하며 방송·통신 융합 사업을 제시했다. 이외에도 2006년  2008년 SK브로드밴드(당시 하나로텔레콤), 2012년 SK하이닉스, 2018년 SK쉴더스 등 과감한 M&A(인수 합병)을 통해 사업 영역을 다각도로 확장해왔다.

2020년대에 이르러 SK텔레콤은 '글로벌 AI 컴퍼니'로 도약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초거대 AI 서비스 '에이닷(A.)' 정식 출시와 함께 △AI 인프라 △AI 전환 △AI 서비스 등 3대 영역을 골자로 한 'AI 피라미드 전략'을 공개했으며, 자체 대규모언어모델(LLM) '에이닷엑스(A.X)' 고도화 및 글로벌 사업자와의 협력을 통한 멀티 LLM 전략도 추진 중에 있다. 글로벌 기업들의 AI 패권 경쟁이 격해지는 가운데, 이동통신 시장의 혁신을 이어온 SKT가 이번에도 역사의 흐름에 족적을 남길 수 있을 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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