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 가치' 최우선"···황현식 대표, 차별화된 개성에 집중
[서울파이낸스 이도경 기자] 1996년, 정보통신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통신시장의 본격적인 민간 경쟁 강화를 위해 신규 이동통신 사업자로 LG텔레콤(현 LG유플러스), 한국통신프리텔(KTF), 한솔엠닷컴 등 PCS(개인휴대통신) 3개사를 선정했다. 이 중 KTF와 한솔이 현재의 KT에 합병되며 역사 속으로 사라진 가운데, 묵묵히 자리를 지킨 LG유플러스는 국내 통신시장의 거대한 축이 돼 지금까지도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 'PC통신 시대' 연 데이콤···반도체 빅딜로 LG그룹에= 현재의 LG유플러스는 정부의 PCS 사업자 모집 당시 선정된 LG텔레콤에서 비롯됐지만, 그 전신을 짚어보면 1982년 설립된 대한민국 최초의 부가가치 통신사업자 '한국데이터통신(데이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LG유플러스 역시 지난 2022년 40주년 행사를 진행하는 등 그 뿌리를 데이콤에 두고 있다.
데이콤은 정부의 적극적인 의지와 주도 하에 한국전기통신공사와 삼성, 금성(현 LG), KBS, 연합통신(현 연합뉴스) 등이 출자해 세워졌다. '데이터 통신' 개념이 생소하던 1986년 국내 최초의 데이터 통신 '천리안' 서비스를 시작하며 하이텔, 나우누리 등으로 이어진 'PC 통신 시대'를 개척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후 1991년 국제전화 사업(식별번호 002) 시작과 1996년 시외전화 서비스 개시, 1999년 국내 최초 인터넷 데이터센터(IDC) 건립 등 데이콤의 업적은 국내 통신 역사에 적지 않은 기록을 남겼다.
그러나 1990년대 말 ADSL(비대칭 디지털 가입자 회선) 및 케이블 인터넷의 보급으로 데이콤은 점차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고, 1999년 '반도체 빅딜(대규모 사업교환)'을 계기로 LG그룹에 넘어가게 된다. 외환위기 이후 김대중 정부는 과잉 시설과 중복 투자를 막기 위해 대대적인 재벌 개혁에 나섰는데, 정부의 압박을 못이긴 구본무 LG 회장은 반도체 사업을 포기하고 이를 현대전자(현 SK하이닉스)에 양보하는 대신 데이콤 경영권을 확보받았다.
1996년 LG텔레콤 설립 등 통신 사업에 큰 의지를 보였던 LG였지만, 금성반도체를 시작으로 20년동안 키워온 반도체 사업을 쇠락하는 데이콤과 교환하는 것이 반가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구 회장은 데이콤 인수 후 통신 사업을 전자·화학과 함께 3각 편대로 앞세우며 키워나갔다. 이후 LG데이콤은 2006년 국내 최초 무선 인터넷 전화 서비스 'Wi-Fi폰'과 2007년 기간통신사업자 최초의 가정용 인터넷전화 'myLG070' 등의 성과를 거두게 된다.
◇ '019' LG텔레콤과 3콤 합병···LG유플러스의 탄생= 앞서 LG 이동통신사업부로 출범한 LG텔레콤은 식별번호 '019'와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업계 최초 가입자 20만 명을 돌파하는 등 시장 내 입지를 다지고 있었다. 1998년 세계 최초 CDMA(코드분할다중접속) 방식의 PCS 무선 데이터 서비스와 1999년 국내 최초 무선인터넷 상용서비스 'Ez-i' 개시 등의 업적도 이뤘다.
LG그룹은 데이콤 인수 후 LG텔레콤과 함께 본격적인 통신사업 강화에 나섰다. 그러던 와중 2000년대에 들어 이동통신 5사(SK텔레콤, 신세기통신, KTF, LG텔레콤, 한솔엠닷컴) 중 신세기통신이 SKT에, 한솔이 한국통신(현 KT)에 합병되며 시장 재편이 이뤄졌고, 위기감을 느낀 LG는 2002년 한국전력에서 회선설비 부문이 독립돼 나온 '파워콤' 인수에 나섰다.
이후 하나로통신(현 SK브로드밴드) 추가 인수를 통해 경쟁에 균형을 맞추고자 했으나 2007년 SKT가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며 끝내 무산됐다. 다음해 하나로통신이 SKT에 흡수됐고, 같은 해 KT 역시 이동통신사업부인 KTF 합병에 나서며 통합통신사업자로 거듭났다. 이러한 상황을 지켜볼 수만은 없었던 LG는 방송·통신 사업의 시너지 효과를 높이고자 2010년 LG텔레콤, LG데이콤, LG파워콤 등 이른바 LG '3콤'을 합병한 '통합 LG텔레콤'을 출범하고 사명을 현재의 'LG U+(유플러스)'로 변경했다.
LG유플러스는 3콤 통합과 동시에 LTE(Long Term Evolution·4G) 사업에 사활을 걸었다. 2008년 ITU(국제전기통신연합) 표준 규격 발표로 국제 통신 규격이 3G에서 4G로 넘어가고 있었고, 경쟁사와 달리 호환성 문제로 신규 망 설치가 필요했음에도 각고의 노력 끝에 2011년 7월 국내 최초 4G LTE 전파 발사에 성공했다. 이후 2012년 세계 최초로 LTE 전국망 구축을 완료했으며, 2013년에는 세계 최초 100% LTE 상용화와 광대역 LTE 서비스 상용화 등 당시 슬로건인 'LTE의 진리'를 실현하게 됐다.
◇ "차별화된 개성과 고객 접점"···황현식 대표가 보여 줄 미래= 현재에 이르러, LG유플러스는 통신 3사 중 가장 개성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글로벌 패권 경쟁이 이어지고 있는 인공지능(AI)은 물론 콘텐츠, 전기차 충전, 물류 플랫폼 등 독특한 신사업으로 차별화를 꾀하는 것이다. '일상의 편견을 깨는 과감한 생각과 도전'으로 고객 일상의 변화를 이끌겠다는 황현식 대표의 '와이낫' 캠페인과 연결되는 부분이다.
한정된 수익 기반으로 통신 시장이 성장 한계에 다다랐다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황 대표가 경쟁사들과 둔 가장 큰 차별점은 콘텐츠와 플랫폼에 있다. 그는 2021년 취임 후 고객 경험을 최우선 가치로 두고 6대 신사업 중 하나로 '콘텐츠'를 꼽았다. 또 이를 바탕으로 △통합 스포츠 플랫폼 '스포키' △아동용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플랫폼 '아이들나라' △콘텐츠 전문 브랜드 '스튜디오 X+U' △구독 서비스 플랫폼 '유독' 등 관련 서비스의 플랫폼 전환에 힘을 쏟았다. 지난해에는 전기차 충전 서비스 '볼트업(VoltUP)'과 화물 운송 중개 플랫폼 '화물잇고' 등 비통신 신사업을 선보이기도 했다.
통신 본업과 AI 전환에 대한 집중력도 잃지 않고 있다. 2022년 세계최초 PQC(양자내성암호) 기술을 적용한 양자내성암호 전용회선 서비스를 출시했으며 지난해에는 6G 핵심 기술인 RIS(재구성 가능한 지능형 표면)를 세계 최초로 실증했다. 현재는 통계 기준이 변경됐지만, 지난해 2016년 'NB-IoT'를 시작으로 키워온 IoT(사물인터넷) 사업을 통해 KT를 꺾고 이동통신(MNO) 가입자 수 2위(IoT 회선을 포함)를 기록하기도 했다. 향후 AI 데이터센터 등 AI인프라와 AICC, SOHO(소상공인), 모빌리티 등 4대 AI 응용 서비스를 통해 AI 중심의 B2B(기업 간 거래) 시장을 확장할 방침이다.
LG유플러스의 사업 전개는 자칫 중심이 없어 보일 수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두 '고객 가치'를 핵심으로 일상의 변화를 이끈다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아직 모든 사업에 대한 성과를 장담할 순 없지만, LG유플러스를 단순한 3위 사업자가 아닌 개성있고 '재미있는' 통신사로 만들어온 것이 이처럼 과감한 결단과 차별화에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LG유플러스가 '통신 3사' 체제 이후 경직된 통신 시장에 변화의 바람을 이끄는 선봉이 될 수 있을 지 관심이 모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