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그룹이 이달 말께 인사·조직개편을 단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인사의 관전 포인트는 부회장 승진자가 추가로 나올지 여부다. 현재 LG 내에서는 구광모 회장을 보좌할 부회장단으로 권봉석 ㈜LG 부회장과 신학철 LG화학 대표이사 부회장이 있다. 이 때문에 재계에서는 구광모 회장의 경영 행보가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이를 보좌하기 위한 부회장 승진자가 나올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부회장 승진자가 나온다면 올해 성과를 낸 계열사 CEO 가운데서 나올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올해 좋은 성과를 낸 계열사 CEO들을 정리하고 이들의 부회장 승진 가능성을 전망해본다. /편집자주
[서울파이낸스 여용준 기자] LG그룹의 올해 사장단 인사에서 부회장 승진자가 나온다면 1순위는 단연 조주완(63) LG전자 사장이다. 그러나 LG그룹은 예상 밖의 인물을 부회장으로 올리는 파격적인 결정을 할 가능성도 있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LG그룹 내에서는 차기 부회장에 유력한 인물로 정철동(64) LG디스플레이 사장과 문혁수(55) LG이노텍 부사장, 홍범식(57) LG유플러스 사장, 현신균(60) LG CNS 사장 등을 거론하고 있다. 이들은 현재 계열사의 수익성 개선을 주도했거나 그룹의 미래 신사업을 진두지휘하는 중책을 맡은 인물들이다.
◇ 정철동, 위기의 계열사 잇달아 살려낸 성과= 정철동 사장은 1984년 LG반도체에 입사해 LG디스플레이와 LG화학 등에서 근무했다. 이 밖에 대만 TSMC에서도 부장 직급으로 근무한 이력이 있다. 2018년 정기 임원인사를 통해 LG이노텍 대표이사를 맡았으며 2023년에 LG디스플레이 대표이사가 됐다.
정철동 사장은 그룹 내 B2B 사업 계열사를 두루 거치며 전문성을 쌓았다. 이를 바탕으로 LG이노텍 대표이사가 된 이후에는 비상경영체제를 통해 수익성 개선을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실제로 정철동 사장 취임 전인 LG이노텍은 2018년 285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으나 취임 이후 매년 최대 영업이익을 경신하며 2022년에는 1조2718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이 같은 실적 성장세에는 최대 고객사인 애플과 협력 관계를 강화한데 있다. LG이노텍은 아이폰 카메라 모듈의 최대 공급사로 정철동 사장 체제 이후 매출 비중이 큰 폭으로 늘어났다. LG이노텍의 애플향 매출 비중은 2017년 53.6%였으나 2022년 77.2%까지 늘어났다.
이 같은 성과를 바탕으로 정철동 사장은 2023년말 LG디스플레이 대표이사가 됐다. 당시 장기 침체의 늪에 빠진 LG디스플레이의 수익성 개선을 이끌 구원투수로 낙점된 것이다. 2년차에 접어든 정철동 사장은 LG이노텍 시절부터 애플과 쌓아온 협력 관계를 바탕으로 2024년 애플의 첫 OLED 태블릿인 아이패드 프로에 패널을 공급하는 성과를 이끌었다.
또 경영 효율화를 위해 1조3500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추진하는 한편 중국 광저우 LCD 공장을 매각해 2조2000억원 규모의 자금을 확보했다. LG디스플레이는 이 같은 경영 효율화와 수익성 개선 전략을 바탕으로 2024년 4분기와 올해 1분기 2개 분기 연속 흑자를 기록했다. 2분기에 잠시 적자전환을 했으나 3분기에 431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해 4년만에 연간 영업이익 흑자 전환이 기대되는 상황이다.
현재 LG디스플레이는 사업 전반에 AX(AI 전환)를 확산해 생산성 혁신을 추진하고 있다. LG디스플레이는 지난해 AI 도입을 통해 연간 약 2000억원의 수익성 개선 효과를 냈고 100억원 이상의 비용을 절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LG디스플레이는 강화된 AX 도입에 따라 3년내 업무 생산성 30% 향상을 목표로 하고 있다. AX 혁신 가속화를 통해 OLED 중심의 사업구조를 강화하고 원가와 수익성을 개선한다는 전략이다.
◇ '문혁수號' LG이노텍, 아이폰 넘어 반도체·전장·우주까지 확장= 정철동 사장에 이어 LG이노텍 대표이사가 된 문혁수 대표는 LG전선(現 LS엠트론)을 거쳐 2009년부터 LG이노텍에 몸 담았다. 광학솔루션연구소장과 사업부장을 역임하며 LG이노텍의 최대 수입원인 카메라 모듈을 책임지는 역할을 맡았다. 이후 2023년 최고전략책임자(CSO)로 근무하다 지난해 LG이노텍의 대표이사가 됐다. 엄밀히 따지면 부회장 승진 후보가 아닌 사장 승진 후보지만, LG이노텍이 그룹 내 B2B 역량 확대에 중추적인 역할을 맡은 만큼 문혁수 대표의 역할도 앞으로 더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문혁수 대표는 아이폰 카메라 모듈에 집중된 수익 구조에서 벗어나 새로운 먹거리를 확보해야 하는 임무를 맡았다. 이를 위해 LG이노텍은 반도체 기판과 차량용 모듈을 중심으로 신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지난 6일 LG이노텍은 모바일용 고부가 반도체 기판인 '코퍼 코스트(구리기둥)'를 세계 최초로 개발하기도 했다.
'코퍼 코스트'는 기존 방식 대비 더 많은 회로를 반도체 기판에 배치할 수 있으며, 반도체 패키지의 열 방출에도 효과적인 기술이다. 모바일 제품의 슬림화와 고사양화에 최적화 됐다. 문혁수 대표는 "이 기술은 단순한 부품 공급 목적이 아닌 고객의 성공을 지원하기 위한 깊은 고민에서 나온 것"라고 설명했다.
이 밖에 LG이노텍은 고부가 반도체용 기판인 '플립칩 볼그리드 어레이', '패키지 서브스트레이트', '테이프 서브스트레이트' 등 차세대 제품과 기술로 고객사 확보에 나서고 있다. 이 같은 성과를 바탕으로 LG이노텍의 기판사업은 올해 3분기까지 꾸준한 매출 상승세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전장부품사업도 고부가 차량용 조명 모듈을 중심으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LG이노텍은 전장부품의 라인업을 확장하기 위해 카메라 모듈을 활용한 라이다(LiDAR)와 차량용 디지털 키 솔루션 등을 개발하고 고객사 확보에 나서고 있다. 또 지난 5월 현대차그룹의 로봇 자회사인 보스턴 다이내믹스와 '비전 센싱 시스템' 공동 개발을 위한 협약을 맺었다. '비전 센싱 시스템'은 로봇의 시야 정확도를 높일 수 있는 카메라 솔루션이다.
이 밖에 LG그룹은 이달 예정된 누리호 4차 발사와 내년 6월 누리호 5차 발사에 카메라 모듈과 배터리, 통신 모듈 등을 공급한다. LG그룹이 본격적으로 우주 산업의 문을 두드리기로 한 만큼 우주 환경에 최적화된 카메라·통신 모듈 개발에 LG이노텍도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 현신균·홍범식, AI 대중화의 최전방= 대표이사 취임 1년차를 맞은 홍범식 LG유플러스 사장과 사장 승진 2년차에 접어든 현신균 LG CNS 사장은 엄밀히 따지면 당장 부회장 승진과는 다소 먼 인물이다. 그러나 LG가 그룹 차원에서 AI 역량 고도화를 모색하는 만큼 앞으로 두 경영진의 역할은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취임 이후 그룹의 미래 먹거리로 ABC(AI·바이오·클린테크)를 낙점했다. 이후 2020년 LG경영개발원 산하 AI 연구기관으로 설립된 LG AI 연구원은 AI 연구에 전념해 2022년 엑사원 1.0을 처음 공개했다. 이후 경량화를 거듭한 엑사원은 미국의 GPT-5, 중국의 딥시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 AI TOP3'에 이름을 올렸다.
현재 엑사원은 LG디스플레이와 LG생활건강 등 제조업 계열사에 도입돼 생산성 향상 및 연구개발에 활용되고 있다. 제조업과 달리 통신·IT 서비스업이 중심인 LG유플러스와 LG CNS는 엑사원을 바탕으로 서비스를 만들어 고객에 제공해야 하는 역할을 맡았다. LG AI 대중화의 최전방에 서야 하는 셈이다.
이를 책임져야 하는 현신균 사장과 홍범식 사장은 공교롭게도 '순혈 LG맨'이 아닌 외부영입 인사다. 현신균 사장은 KB국민은행과 딜로이트, AT커니 코리아 등을 거쳐 2010년 LG디스플레이 업무혁신그룹장 전무로 영입됐다. 이후 2017년 LG CNS로 자리를 옮겨 최고기술책임자(CTO)와 DT 이노베이션 사업부장, D&A 사업부장 등을 거쳤다. 이어 2023년 LG CNS 대표이사가 된 뒤 지난해 사장으로 승진했다.
현신균 사장은 IT 전문가로 디지털 전환(DX) 경쟁력 강화를 이끈 전적이 있는 만큼 AX 경쟁력 강화에도 적임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현신균 사장은 올해 초 신년사에서도 AX 리더십 확보를 위해 시스템통합(SI) 역량, 산업·업무 전문성, 클라우드 기술을 AI와 결합하는 '애플리케이션 위드 AI(Application with AI)'를 전사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어 올해 8월에는 기업이 업무 시스템 전반에 AI와 연결할 수 있도록 하는 '에이전틱 AI' 플랫폼인 '에이전틱웍스'와 7종 에이전틱 AI 서비스인 '에이엑스싱크'를 선보였다. 현신균 사장은 "AI는 이제 단순한 도구가 아니다. 기업의 운영 시스템과 유기적으로 연결돼 사고하고 실행해야 한다"며 "기업에 필요한 것은 AI 챗봇 몇 개가 아니라 AI를 업무 전 과정과 연결할 수 있는 체계"라고 말했다.
홍범식 사장은 SK텔레콤과 베인앤컴퍼니에서 근무한 IT 컨설팅 전문가다. 2018년 ㈜LG 경영전략팀장(사장)으로 LG에 입사한 뒤 LG유플러스와 LG헬로비전, LG CNS 등에서 기타비상무이사로 재직하다가 지난해 LG유플러스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LG유플러스는 지난해 11월 처음 선보인 AI 통화 서비스 '익시오'의 대중화에 주력하고 있다. 이를 위해 올해 2월 MWC에서는 처음으로 단독 부스를 내고 익시오의 글로벌 진출 및 구글과 협력 방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어 7월에는 엑사원을 활용한 AI컨택센터(AICC)를 상용화하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