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오세정 기자] 정부가 좌초됐던 건설근로자 적정임금제를 다시 추진한다. 건설 인력 고령화와 임금 체불 문제를 개선해 건설업 경쟁력을 키우겠다는 취지다. 다만 건설경기 침체와 중대재해 이슈로 긴장감이 높아진 업계의 반발이 재연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업계에서는 적정임금제 도입 시 공사비 상승에 따라 고용이 위축되는 한편, 기업 부담 가중으로 부실화할 가능성을 우려한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최근 ‘건설근로자 적정임금제 제도화 방안 연구’ 용역을 사전 공고했다.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진행해 직종별 적정 임금을 산출하고, 이를 토대로 제도화까지 이어간다는 구상이다.
국토부는 이번 용역 연구의 제안요청서를 통해 "다단계 생산구조의 가격 경쟁으로 인해 건설 근로자 임금이 하락했고, 이로 인해 청년 유입·내국인 숙련 인력 등이 감소해 건설업 경쟁력이 떨어졌다"며 제도 취지를 밝혔다.
용역 연구는 전자대금시스템과 전자카드제 연계사업을 통해 건설근로자공제회에서 수집되는 실제 임금 정보를 기반으로 직종별 적정 임금을 산정한다. 시행되지 않은 경우와 비교해 임금 수준과 내국인 고용 등 성과를 분석하도록 했다. 또 실제 지급되는 임금이 적정 임금 이상인지 확인할 수 있도록 전자카드시스템과 임금직접지급시스템 연계 고도화도 살핀다.
적정임금제는 발주처가 정한 일정 수준 이상의 임금을 건설근로자에게 지급하도록 하는 제도로, 다단계 구조 속에서 임금이 삭감되는 문제를 막기 위한 장치다. 해당 제도는 문재인 정부 시절 국정과제의 하나로 추진됐다. 당시 정부는 2017년 말 도입 방향을 발표하고 국가·지자체 발주 300억원 이상 공사에 시범 사업을 거쳐 2023년 1월 시행을 예고했다. 그러나 건설업계의 반발과 정권 교체 이후 추진 동력 상실로 무산됐다가 이번에 재추진되는 것이다.
취임 이후 지속해서 노동자 권익 보호를 강조해 온 이재명 대통령도 지난 2022년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시절부터 공공 부문의 적정임금제 시행 의지를 드러내며 "자발적으로 도입하는 민간 부문은 포상·인증, 세금 감면, 보조금 지급 등 지원 정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국회에는 적정임금제를 민간으로 확대하는 내용의 법안도 발의된 상태다. 지난해 11월 복기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외국인 등 비숙련 노동자가 급증하고 건설 품질 저하 및 부실시공이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적정임금제를 통해 양질의 건설 인력을 양성하는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며 적정임금제를 일정 규모 이상의 민간 공사까지 확대하는 '건설산업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이 가운데 건설업계는 해당 제도가 근로자 임금이 숙련도·경력과 같은 시장원리에 따라 결정되는 시장경제 질서와 정면 배치된다고 비판한다. 전 산업에 최저임금을 적용하면서 건설업만 적정임금이라는 명목으로 평균임금 이상으로 지급을 강제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주장도 있다.
특히 가뜩이나 원자잿값 상승과 고금리·분양 침체로 업황이 위축된 데다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비용도 늘고 있는 가운데 인건비 상승으로 부담이 막대해질 것을 우려한다. 적정임금제 도입으로 인한 공사비 상승과 인건비 상승분에 대한 부담은 고스란히 시공사가 떠안게 돼 기업 부실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건설 기업의 부실화가 진행되면 오히려 일자리가 줄어들어 고용 불안정이 초래될 것이라는 게 업계 의견이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최저임금보다 위에 바텀 라인을 또 만드는 것인데 이렇게 인위적으로 정할 경우 그 부담은 고스란히 시공사가 떠안게 된다"며 "공공이든 조합이든 발주처에선 상승분을 반영하지 않을 것이고 시공사들은 현재도 남는 게 없는 상황에서 인건비까지 오르면 생산성을 고려해 선별수주로 사업 자체를 줄여 오히려 고용도 축소되는 풍선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