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위기 국면을 넘긴 국내 기업들이 생존을 위해 대미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임금단체협상이 고비를 맞으며 산업계 전반에 노사 갈등이 새로운 불확실성으로 떠올랐다. 주요 산업별 임단협 동향과 노사 갈등을 진단하고, 향후 산업 지형 변화를 전망한다./ 편집자 주
[서울파이낸스 문영재 기자] 북미 투자에 속도를 내고 있는 현대자동차 첫 외국인 대표이사 사장 호세 무뇨스가 국내에서 임단협이라는 중대 고비를 맞았다. 현지 생산 거점 확충을 통해 트럼프발 관세 리스크를 최소화하려는 그의 전략이 노조의 임금 인상 압박과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무뇨스 사장은 최근 타결된 한미 관세 협정을 두고 "한국의 기술·제조 역량과 미국 내 생산 체계 간 협력으로 글로벌 불확실성을 극복해 나가겠다"며 "21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와 10만개 이상의 직간접 일자리 창출을 조속히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를 통해 관세 리스크를 해소하는 동시에 이익 체질을 개선하겠다"고 덧붙였다.
다만, 이러한 북미 중심 전략은 임단협 협상장에서 노조의 강한 반발에 부딪히고 있다. 사측이 이를 명분으로 요구 수용을 거부하고 있어서다.
노조는 올해 △기본급 14만1300원 인상(호봉승급분 제외) △전년도 순이익의 30% 성과급 지급(주식 포함) △상여금 900% 지급 등을 요구하고 나선 상태다. 지난해 회사가 거둔 사상 최대 당기순이익이 주요 근거다.
반면 사측은 올 들어 불거진 관세 부담과 투자 확대라는 현실적 어려움을 외면한 일방적 요구라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특히 경영환경 악화로 인한 대미 수출 급감 등을 이유로 전면 수용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역지사지의 자세가 필요하다"며 "관세 문제는 기업이 제어할 수 없는 영역인 만큼 노사가 공생과 상생을 위해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노조는 국내 생산을 줄이고 미국 공장 물량을 늘려 관세를 회피한 뒤, 이를 수출 부진으로 포장해 임금 인상 억제 명분으로 삼고 있다고 반박했다. 특히 무뇨스 사장의 북미 중심 전략이 장기적으로 국내 산업 공동화를 초래할 수 있다며 공세 수위를 높였다.
결국 양측 입장차는 좁혀지지 못했고, 13일 열린 17차 본교섭에서 사실상 협상 결렬이 공식화됐다. 이날로 예정됐던 추가 교섭도 자동 취소됐다.
문용문 현대차지부장은 조합원 담화문에서 "17차례의 본교섭과 3차례의 실무교섭 동안 사측은 '어렵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제시안을 내놓지 않았다"며 "조합원들의 정당한 요구를 관철할 때까지 물러서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이로써 6년 연속 무분규 타결을 이어오던 현대차 노사 관계는 올해 파업 위기 국면에 진입했다. 노조는 20일 임시대의원대회를 열어 파업 방향을 잡은 뒤 25일께 전체 조합원 대상 파업 찬반투표를 벌일 계획이다.
현대차 측은 "관세 등으로 대내외 경영환경이 어려운 시기에 노조가 협상 결렬을 공식화한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라며 "비록 결렬은 선언됐지만 실무협의는 계속 진행하기로 공감한 만큼 심도 있는 논의를 통해서 합의점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긴장이 높아졌지만 실제 파업 가능성은 낮게 보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양측은 매번 파업 위기 직전에서 합의를 하는 양상을 띠었다"며 "노조도 대내외 여건을 감안하고 있어 파업으로 인한 부담을 최대한 피하려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첫 외국인 사장 체제에서 맞는 이번 임단협은 단순한 연례 교섭이 아니라 현대차 노사 관계와 국내 자동차 산업 구조의 변곡점이 될 수 있다"며 "관세 대응을 위한 대규모 투자 전략과 임금 인상이라는 엇갈린 목표가 대립하는 만큼, 이번 협상 결과가 향후 경영 방향과 산업 지형을 좌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