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김완일 기자] 중국과 일본의 조선사들이 대규모 합병 및 지분 확대를 통해 '몸집 불리기'에 나서고 있다. 세계적으로 선박 발주량이 감소하며 조선 시장이 조정기에 진입하는 상황에 대응하려는 방안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변화가 국내 조선업계에 위협으로 다가오는 가운데 한국은 기술력 중심의 고부가가치 선박 수주와 미래 시장 선점이 필요하단 분석이 나온다.
7일 외신 및 조선업계에 따르면 중국 최대 조선 기업인 중국선박그룹유한공사(CSSC)의 자회사 합병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CSSC의 핵심 자회사들인 중국선박공업주식유한회사(중국선박)와 중국선박중공주식유한회사(중국중공)의 합병 심사안이 상하이증권거래소의 승인을 통과하면서 매머드급 '조선 공룡'의 탄생이 임박했다.
합병이 완료되면 시가총액 50조원에 육박하고, 자산 규모는 약 75조원에 달하는 글로벌 조선업체가 등장하게 된다. 특히 수주량, 매출, 영업이익 분야에서 모두 세계 1위가 될 전망이다. 두 기업의 지난해 합산 수주량은 전 세계 선박 발주량의 약 17%를 차지할 정도다. 중국 조선업계는 이번 합병으로 '규모의 경제'를 극대화해 선박 가격 경쟁력을 높이고 R&D 분야에서의 효율성도 끌어올린 계획이다.
일본 역시 조선업 재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 최근 일본 현지 보도에 따르면 일본 최대 조선업체인 이마바리 조선은 2위 업체인 재팬마린유나이티드(JMU)의 지분을 기존 30%에서 60%로 확대해 자회사로 편입할 계획이다. 이 인수가 완료되면 두 회사의 연간 총 건조량은 약 500만 총톤(GT)에 달해 한화오션을 넘어 HD현대와 삼성중공업에 근접하는 세계 2~3위권 건조량을 확보하게 된다.
또한 상선 위주이던 이마바리 조선은 JMU의 강점인 군함 및 특수선 분야로 사업 영역도 확장할 수 있어 사업 포트폴리오를 넓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는 2030년까지 자국 선박 건조 능력을 두 배로 확대하고 글로벌 점유율을 20%까지 끌어올리는 공격적인 목표를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 글로벌 발주량 급감, '피크아웃' 우려 대두 = 업계는 중국과 일본의 이같은 공격적 움직임이 세계 조선 시장의 발주량이 점차 줄고 머지않아 슈퍼사이클이 끝날 것을 대비하기 위함이라 분석했다.
영국 조선·해운 시황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 전 세계 선박 발주량은 전년 동기 대비 55% 줄었다. 올해 5월까지의 누적수주량 또한 지난해 같은 기간의 절반 수준에 머물렀다. 특히 올 상반기 세계 조선업 수주량 감소는 중국과 일본에서 두드러졌다. 한국 역시 상반기 수주량이 전년 동기 대비 33.5% 감소한 487만CGT를 기록했으며, 국내 조선 3사는 올해 상반기 수주 목표의 절반조차 채우지 못했다.
HD한국조선해양의 수주량은 지난해 상반기보다 62.8%, 한화오션은 40% 가까이 줄었으며, 삼성중공업은 연간 목표의 26.5%에 그치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조선 호황기 종료를 알리는 '피크아웃' 우려를 키우고 있다. 업계는 이 같은 시장 조정기에 대비하기 위해 중국과 일본이 각각 다른 전략으로 합병 및 재편 움직임을 보인다고 분석했다.
◇ 韓 조선, 기술 초격차와 미래 전략으로 위협 돌파 = 중국과 일본 조선사들의 합병은 한국 조선업계의 가격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시장 입지를 좁힐 수 있다는 위협으로 분석된다. 특히 한국보다 20%가량 저렴한 가격으로 컨테이너선 시장을 장악한 중국이 고부가가치 선박 기술 개발에도 속도를 내면서 한국의 강점 시장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에 국내 조선사들은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해양플랜트, 메탄올 추진선 등 중국과의 기술 격차가 분명한 고부가가치 친환경 선종 중심으로 수주 회복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또한 하반기 미국의 LNG 수출 확대에 따른 LNG 운반선 발주 증가가 기대되며, 2027년까지 40척 이상의 LNG 운반선이 추가로 필요할 것으로 분석된다. HD현대삼호는 최근 1조3963억원 규모의 LNG 운반선 4척을 수주하며 이러한 전략의 성과를 보이기도 했다.
국내 조선사들은 단순한 건조량 경쟁보다는 기술 경쟁력과 수익성을 최우선으로 안정적 성장을 추구하고 있다. 아울러 소형모듈원전(SMR) 추진선 등 새로운 미래 먹거리 개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AI 기반 스마트 야드 및 자동화 조선소 구축 등 미래형 생산 시스템 전환도 적극적으로 추구하며 인력난, 원가 부담, 소재 공급망 안정화 등에도 힘쓰고 있다.
국내 조선사 관계자는 "중국과 일본이 합병을 통해 한국이 우위에 있는 고부가가치 선종을 빠르게 추격하고 있다"고 우려 표했다. 이어 "두 국가의 이번 통합이 당장의 위협은 아닐 수 있으나, 중장기적으로 세계 조선 산업에 큰 변화를 불러옮 수 있는 사안인 만큼 국내 기업은 체계적인 기술 로드맵을 준비하고 정부 차원에서도 이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